성명서

[공동성명-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처벌과 차별을 멈추고 홈리스의 인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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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 당한 홈리스, 죄가 되지 않는 살인

2023년 5월 1일, 뉴욕 지하철에서 조던 닐리(Jordan Neely)가 사망했다. 그는 타임스퀘어에서 마이클 잭슨을 흉내내며 공연하는 사람이었고, 홈리스였다. 약물(drug), 우울증, 조현병으로 정신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교도소와 홈리스 시설을 오가며 생활하였다. 닐리는 어머니가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2007년부터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닐리는 지하철 차량에 들어가 ‘음식과 물이 없고, 감옥으로 돌아가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같은 장소에 있던 다니엘 페니(Daniel Penny)는 닐리의 목을 6분 동안 조르고, 닐리가 움직임을 멈춘 후에도 목을 압박했다. 해병대에서 4년을 복무한 것으로 알려진 페니는 시민을 위협하는 닐리를 제압하려고 했을 뿐 살인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건 이후 검찰은 2급 살인혐의를 적용했지만 배심원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던 중, 맨해튼 형사 법원(Manhattan Criminal Courthouse) 재판부는 12월 6일 2급 살인 혐의를 기각하고, 형사상 과실 치사를 적용하였다. 결국 12월 9일, 12명의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무죄를 판결하였다. 죽인 자, 죽임 당한 자가 명백한데 죽인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는 누군가는 그렇게 죽어도 된다는 사법 체계가 부여한 살인 허가, 살인 면죄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홈리스에 대한 혐오를 확산하는 정치

한 흑인 홈리스가 피살당한 이 끔찍한 사건을 두고 뉴욕 시장(Eric Adams)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하였다. 이로 드러나듯, 이 사건의 배경에는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공모하고 실행한 행정이 존재한다.  

미국 인권사회단체들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뉴욕은 홈리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다루는 대신, 홈리스들을 낙인찍고 위험에 처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뉴욕 시장은 임기 이래 홈리스를 표적 삼아 지하철 내 형사 사법 체계와 비자발적 투옥을 강화하였다. 뉴욕 주지사(Kathy Hochul)는 뉴욕 지하철에 주방위군을 배치하고, 취약계층의 대중교통 이용을 금지했다. 처벌과 규제에 능숙한 이들은 정작 뉴욕 시민의 안전을 위한 자원 배치, 영구 주거 제공과 같은 정책에는 실패하였다. 이것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시장, 주지사를 맡고 있는 뉴욕의 현실이다. 

내년에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홈리스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선거 유세를 통해 약물 중독자와 정신 질환자에 대한 혐오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모든 도구와 수단, 권한을 동원하여 홈리스들을 거리에서 내몰겠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트럼프의 집권이 시작되면 노숙 금지, 정신병원 입원, 이른바 ‘텐트 도시’로의 강제 이주와 같은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게 분명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보수 양당은 주거 우선, 정신 질환 및 중독 질환자에 대한 위해 감소 접근과 같은 홈리스 문제의 근본적이고 인권적인 해결책에 무관심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처벌 말고 복지, 차별 말고 인권

뉴욕주와 트럼트 당선인의 행보 외에도 미국 사회에서는 홈리스 문제를 처벌로 다스리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연방 대법원은 ‘Johnson v. Grants Pass’ 재판을 통해, 다른 주거 대안이 없어 ‘노숙’하는 경우에도 체포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해당 판결 이후, 노숙을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 제정되었고, 68개가 계류 중이라고 한다. 최근의 미 홈리스 실태조사(2023 Annual Homelessness Assessment Report, AHAR)에 따르면 미국 내 홈리스는 653,104명으로 나타났다(PIT방식 집계 결과). 자료가 공개된 2007년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그 중 거리 홈리스는 256,610명으로 전년 보다 약 10%나 증가하였다. 또한,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individual) 홈리스의 약 3분의 1(31%)인 143,105명이 만성 홈리스로, 2007년 이래 가장 큰 수치임과 동시에 이 또한 최근 몇 년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내 사회단체들이 제기하듯, 닐리의 사망은 양육 체계, 정신 건강 체계, 홈리스 지원 체계, 사법 체계의 균열을 의미한다. 뉴욕시 홈리스 지원 부서는 닐리를 지원 우선 순위 대상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 거처는 교도소, 정신병원, 홈리스 시설이 전부였을 뿐, 그에게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망 직후 경찰에 의해 발견된 닐리의 소지품은 ‘머핀’ 한 개가 전부였다고 한다.  홈리스 상태는 높은 주거비, 시장화된 의료, 전 지구적 불평등에 따른 이주민의 증가 등과 같은 현상의 극단에서 탄생한다. 노동 착취와 이윤을 위한 생산을 존재 이유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언제나 인구의 일정 부분을 홈리스 상태로 내몰아왔다. 잘못된 체제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체제가 만든 피해자를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야만일 뿐이다. 미 정부는 야만스런 부자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다면, 홈리스에 대한 처벌과 차별을 버리고 복지와 인권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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