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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안전할까, 성폭력 피해와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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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야 할 침묵: 학교 성폭력과 부실한 대응 –

 

최보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23년 5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동급생 간 교내 성폭력이 2년간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교사가 있다. 교사는 이를 학교에 알렸고, 해결을 위해 싸우다 2024년 9월 해임을 당했다. 정년 2년을 남겨두고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은 학생들의 피해 신고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 안에서 남학생들에게 외설적인 말, 행동,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평가, 동의하지 않은 신체접촉까지 당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학생의 3분의 2가 학교 내에서 동급생 간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에게 알리기도 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해결 과정에서 학교의 부주의한 대처로 피해 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되었고, 2차 가해로 이어졌다. 교사는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해 전문가 긴급대책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교육지원청과 서울시교육청에도 도움을 청했으나, 시스템의 허점은 교사를 부당전보와 파면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은 교내 성폭력 피해에 대처하는 학교와 교육시스템의 구조적 결함과 책임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는 교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하여 유의미한 시사점을 주는 한 연구가 출판되었다(☞논문 바로가기: 중등학교 성희롱 예방과 대응). 이 연구가 진행된 스코틀랜드에서도 학교 내 성희롱은 흔하지만 비교적 최근에서야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 내 성희롱과 그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시스템 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한 연구진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이해하는 시스템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과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학교 시스템이 성희롱을 드러내고, 신고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지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학교 문화, 정책, 절차가 성희롱 예방과 대응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준다.

 

연구 결과, 학교 내 성희롱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은 학생들의 성희롱 관련 교육의 부족과 신고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었다. 학생들이 성희롱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이 부족하면 무엇이 성희롱인지 인식하기 어렵고, 이는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교직원들의 젠더기반 폭력에 대한 교육 수준과도 연결되는데, 연구 결과 실제 학생들의 11.2%만이 성희롱이 큰 문제라고 답한 반면, 교직원 중에서는 1.6%만이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학생들의 신고를 가로막는 요인은 신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부족이었다. 설문에 따르면 성희롱을 경험했지만 이를 어른에게 보고한 학생은 불과 8.2%에 그쳤다. 학생들은 신고 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 사건 통제권을 잃는 두려움, 피해자로 낙인찍힐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더 나아가, 과거에 성희롱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거나 2차 가해가 발생한 사례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성희롱을 신고할 용기는 더욱 사라졌다.

 

이 연구는 학교가 성희롱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성희롱을 학교의 핵심 과제로 다루면 교직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젠더기반 폭력 예방 교육이 교과과정에 자연스럽게 통합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는 성희롱 예방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학교 내 성폭력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잘못이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학교 문화와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책임 있는 시스템, 성평등과 인권을 중심으로 한 교육, 그리고 피해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명확한 신고 시스템과 학생 보호 절차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시스템 개선은 학생들이 안심하고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난 5월, 학교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한 학생이 해고된 교사에게 “선생님, 1년 전에 들은 성희롱이 아직도 안 잊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희롱과 성폭력의 경험은 단순히 그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1년,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피해자의 삶을 짓누르는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이는 피해자의 심리적, 정서적 건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인간관계, 학업 및 직업적 성취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성희롱과 성폭력은 철저히 예방되어야 하며, 학교는 이를 위해 교육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해고된 교사의 복직은 단순히 한 개인의 노동권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학교와 학생들에게 ‘괜찮다, 성폭력은 신고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와 용기를 심어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믿음이 학교 시스템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학교가 학생 보호와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고, 책임감 있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하여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가 안전하게 드러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학교, 성평등과 인권이 존중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서지 정보

Blake, Carolyn, et al. (2024). Prevention of, and response to, sexual harassment at secondary school: A system map. Social Science & Medicine, 358, 11709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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