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3.11.06 (바로가기)
대한민국은 항상 깨어 있다. 발전소나 병원만 24시간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나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이나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도 24시간 돌아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늘 피곤하다. 이른 아침 지하철은 거대한 수면실이고, 각종 피로회복제 등이 날개 돋힌 듯 팔린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 결과는 현대 사회의 수면이 과연 적절한가를 다루는 것이다. 수면 문제를 주로 탐구해왔던 윌리암스 영국 워익대 교수팀은 올해 간행된 <사회과학과 의학> ‘수면 특집호’에 한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의료화인가, 맞춤화인가? 365일 24시간 깨어있는 사회에서의 수면, 기업, 고양’인데, 일터에서의 낮잠을 허용하는 것과 각성제 확대라는 두 사례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사실 잠을 조절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오래된 것이지만, 오늘날의 양상은 매우 특별하다. 잠을 건강, 위험, 생활양식과 연계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밤이 되었으니 잔다’거나 ‘졸려서 잔다’는 단순함은 사라지고, ‘잠 문제’는 해결해야 할 건강, 안전, 생산성의 이슈가 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어떻게 하면 생산적으로 잠을 조절할 수 있는지, 즉 덜 자고도 어떻게 숙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안내하는 책들이 인기다. 학계에서는 일터에서 잠깐 낮잠을 자는 것이 인지기능과 각성을 유지시키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논문들이 속속 나온다. 이 때문에 근무 중 낮잠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일터가 늘어나고 있다. 또 교대근무 일정 배치 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전문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잠을 둘러싼 개인적 시간과 공적 시간, 가정과 일터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팀은 일터에서의 낮잠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단순한 행동이라기보다 ‘유연한’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 및 공간 조절행동으로 변하고 있다고 봤다.
한편 수면조절과 관련된 ‘의학적 치료’는 한동안 수면무호흡증후군, 불면증, 기면증 등 비교적 분명한 ‘질병’에 집중됐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질병과 건강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한 예로 아무 때나 잠을 자는 기면증의 치료에 쓰이는 각성제의 한 종류는 건강한 사람들에서도 각성을 증진시키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로 활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당연히 약의 유해성을 둘러싼 의학적 논쟁도 첨예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물학적인 몸의 제약에서 벗어나, 이제는 언제 깨어있고 언제 잠들어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과 성장만이 최고 가치인 현대 사회는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라면 우리의 잠을 더 현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이번 연구에서 이런 현상은 ‘잠의 의료화’ 정도로 표현하는 것은 부족하고, ‘수면의 맞춤화’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또 수면 조절은 우리 몸과 시간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가라는 점에서 ‘삶 정치’ 혹은 ‘통치’의 이슈라는 점도 제기했다.
이 논문의 관점에서 보면 교대 근무 노동자에게 휴식과 수면을 보장해야 한다는 ‘안전보건론’, 중고등학생들이 충분히 잘 수 있게 하자는 ‘건강담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잠은 고요한 꿈나라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최후의 격전장이자 정치적 공간이다. 왜 우리는 잠을 조절해야 하는가? 누가 우리의 생물학적 시계를 멋대로 돌려놓고 있는가? 한국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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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Williams SJ, Coveney CM, Gabe J. Medicalisation or customisation? Sleep, enterprise and enhancement in the 24/7 society. Social Science & Medicine 2013;79:4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