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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안의 식민지: 팔레스타인인의 건강을 파괴하는 이스라엘의 구조적‧인종주의적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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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한 세기 이상 식량난, 점령과 박탈, 학살의 재앙을 견디고 있다. 최근 중재국이 제안한 향후 5년간 휴전안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인류애와 인도주의는 보편적 가치라고 불리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선택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곳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점령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PCI: Palestinian Citizens of Israel) 역시 정착민 식민주의와 구조적 인종주의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시오니즘 정착 식민주의 운동은 이스라엘을 건국하며 토착 주민들을 축출하거나 대체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폭력을 피해 탈출했고, 이후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당시 약 15만 명 정도만 이 지역에 남게 되었는데, 이들과 그 후손은 오늘날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150만 명 이상)를 차지하는 상당한 규모의 사회적 소수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1948년부터 1966년까지 군사적 통치, 이동의 자유 제한, 토지 몰수 등의 시련을 겪었다. 이러한 정착 식민주의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인의 건강에도 깊은 불평등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의 건강은, 점령 지역 내 팔레스타인인 및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 외에 거주 중인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타노우 연구팀은 기존 연구를 종합해, 이스라엘 거주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들을 분석한 리뷰 논문을 ‘국제공중보건’ 학술지에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구조적 인종주의와 이스라엘 거주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건강).

 

연구팀은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의 건강 형평성 문제 등을 살펴볼 때도, 그 근본적 원인인 구조적 인종주의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 점을 비판한다. 이때, 구조적 인종주의란, 사회가 인종적 차별을 조장하는 모든 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주택, 교육, 고용, 의료, 형사 사법 등 여러 불평등한 제도들을 통해 인종차별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로 인해 차별적인 가치관과 자원 분배가 다시 굳어지도록 한다. 이스라엘은 ‘시민권’과 ‘국적’을 구분하여, 이 과정에서 정착민(유대인)을 ‘자연스럽고 정통한 시민’으로, 토착민(팔레스타인인)은 ‘외국인’이자 ‘손님’으로 구별하면서, 인종에 따라 위계화되고 배타적인 시민권을 부여하는 체계를 수립했다.

 

이러한 구조적 인종차별은 필연적으로 건강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고용·교육 기회의 차별과 같이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서 심각한 불이익으로 이어졌다. 특히 팔레스타인인의 법적 권리를 제약하는 배타적인 시민권 체계는 토지와 주택 접근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토지를 대규모로 몰수하고, 토지 권리를 부정했으며, 이들이 살고 있던 주택을 대규모로 철거하는 등 주택 접근권도 철저히 차단해왔다. 현재 이스라엘 전체 토지의 93%가 국가 또는 준국가기관의 통제 하에 있는데, 이 중 80% 이상은 팔레스타인인이 구매하거나 임대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90% 이상이 완전히 분리된 지역에 거주하는 극단적인 공간 격리를 초래했다.

 

분리된 지역들에서는 의료 인프라와 상하수도, 전기, 도로 등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가 부족하며, 인구 과밀, 빈곤, 높은 범죄율과 불안 수준, 기대수명 단축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들은 유대계 이스라엘인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3~4년 짧으며, 이 격차는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전체 사망률이 가장 높은 상위 10개 도시 중 9개, 심장병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 10개는 모두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이다. 또, 이들은 유대인에 비해 교통사고 사망률 2.96배, 호흡기 질환 사망률 2.69배, 당뇨병 사망률 2.25배, 고혈압 사망률은 1.85배 더 높다. 신생아 사망률은 2.56배 높으며, 심장마비를 더 어린 나이에 겪고 그 후 생존기간도 짧고, 살인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유대계 이스라엘인보다 무려 5.5배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의 연령 보정 사망률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 대비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건강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나 지역 인프라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인종차별과 인종화된 억압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건강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소수 민족의 소득 향상이나 인프라 개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착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국가 체계 속에 공식화한 법과 정책을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착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는 이스라엘처럼 명백하게 아파르트헤이트 범죄를 저지르는 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는 눈에 잘 보이는 식민주의뿐 아니라 은폐된 구조적 차별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멈추고, 탈식민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류 전체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길을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지 정보

Tanous, O., Asi, Y., Hammoudeh, W., Mills, D., & Wispelwey, B. (2023). Structural racism and the health of Palestinian citizens of Israel. Global Public Health, 18(1), 221460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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