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시민건강논평

테헤란으로의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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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은 이제 발효됐다. 위반하지 마라!” (관련기사)

 

일방적 침공과 이란 군 장성과 핵과학자들에 대한 표적암살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 전쟁. 국제법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판단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서방 강대국이나 중동 국가들의 외교적 개입에 의해서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호통”이 잠시 전쟁을 멈춰 세웠다.

 

한때 한국인들에게 ‘열사(熱砂)의 땅’으로 불렸던 중동 일대는 장거리 미사일과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초고성능 신무기의 위력을 시험하는 전장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집과 생활시설들이 파괴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중동전쟁으로의 확전까지 거론되는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국내에선 새 대통령 선출 이후 행정부의 진용이나 정책방향이 다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기대감’ 만으로 주가지수나 소비자심리지수가 크게 상승했다(관련기사). 하지만 시민들의 큰 지지를 얻고 있는 정부가 여기에 만족하고, “경제적 국익”을 당면한 국제분쟁의 유일한 대응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실용에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전세계적 불평등과 위기 서사에 맞서는 탈국가중심적 관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시민건강논평 바로가기).

 

또한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에 새겨지는 삶의 불평등과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문제화하는 사람중심관점을 강조해 왔다. 사람중심관점은 권리를 억압당하고 박탈당한 사람들의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국제관계에서 어떤 정치집단이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이나 식민주의적 통치로 인해 탄압받고 있다면 이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압력도 사람중심관점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사람중심관점은 반드시 국민국가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도 아니고, 특정 국가와 지배집단의 규범이나 이해관계와 다를 수도 있다. 우리가 중동지역의 정세를 서구 기독교와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과 고통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 정치로 하여금 저들의 차별과 배제를 강화하는 국가주의적 개입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것이 사람중심관점이 지향하는 바다. 이것은 정치학자 아사드 하이더(Asad Haider)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가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자유를 요구하는 정치의 적극적인 행위자로서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이다(<오인된 정체성>, 두 번째 테제>).

 

지난 화요일(6/24)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이란을 적대하도록 훈련된 세계” 라는 주제로 긴급포럼을 열었다(관련 영상). 이란 정치학자 시아바시 사파리(Siavash Saffari) 서울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주로 서구 정치와 언론의 관점이 인용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란 침공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될 몇 가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 몇몇 서구 국가들은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위협하기 때문에 양국의 이스라엘 공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정기적으로 위협하고 공격해왔고 이번 공격도 국제법을 위반한 명백한 침략행위이다. 이스라엘의 주장과 달리,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찰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이란은 국제법상 비군사적 핵프로그램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자국에 대한 방위권을 가진다.

 

둘. 반면 이스라엘은 1960년대 후반 핵무기를 획득하였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체결하지도 않았고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사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로 남기 위해 국제규범을 위반하면서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인접국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방해하고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역에서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를 강행하고, 이란과 주변국들을 약화시키는 전쟁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셋. 이스라엘과 미국은 시오니스트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라 중동 정치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외부에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비난하고 이슬람혐오로 자신들의 이란 침공을 정당화하는 서사를 작동시킨다. 일례로 헤즈볼라, 하마스, 이라크 민병대, 시리아 아사드 정권, 후티 반군을 ‘악의 축’ 또는 이란의 ‘대리세력(proxy)’이라고 폄하하고 이스라엘의 공격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정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독립 조직으로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헤게모니에 저항하여 전략적 동맹을 맺고 이슬람 혐오세력에 맞서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 된 것이다. 저항의 축은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유기적인 저항과 해방운동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역사적 관계와 구체적 행위들에서 본다면,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 공모와 학살의 피해자인 이란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놓인 제국주의적 지배와 이슬람 혐오라는 ‘억압의 매트릭스(matrix of oppression)’(Collins, 2000) 구조를 더욱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와 무관한 전쟁은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2011년 이후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으로 전환하면서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하여 미군 병력이 철수하기 전에 중동 전역에서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패권을 갖게 하려는 과정으로 현재 일어나는 중동분쟁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긴장을 높인다면, 미국의 상대인 중국과 러시아를 인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국가들과 우방인 북한을 마주하는 한국은 직접 병참기지화 될 수 있다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북한은 러시아 전쟁에 병력과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며칠 전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개입 의사를 밝혔다(관련기사). 미국이 이란에 핵무기 보유 ‘가능성’만으로도 불법적인 공격을 했듯이, 트럼프가 북한과 원하는 협상에 이르지 못한다면 언제든 파괴적인 개입에 나설 수 있다.

 

타국의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핑계로 주권 국가에 대한 무력 침략을 정당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본질은 사실상 비인간화된 폭력과 약탈적 점령에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구호품을 기다리는 비무장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표적사격을 가해 169명을 살해했다(관련기사). 나치 독일이 샤워를 시켜준다면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안내했다면, 이스라엘은 밀가루를 주겠다며 굶주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짜 배급소’의 표적으로 밀어넣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의 쌓여가는 죽음은 그 자체로 비참하지만, 이 집단학살의 전쟁범죄가 뉴스조차 되지 않는 시대는 더욱 비참하다. 하지만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군사주의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저 사람들과 나의 해방은 그리 멀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절멸의 프로젝트를 멈춰 세우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해방의 정치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사파리 교수는 폭탄과 미사일은 ‘해방’과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없다고 역설하며, 연대하는 한국 시민들에게 부탁을 남겼다. 먼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중단을 요구하고, 이란 시민사회 조직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며 중동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의 식민지배와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지지해 달라는 것. 또 하나는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사국으로 이스라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 사찰을 요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한국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촉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나면 이란을 꼭 한번 방문해 달라고 했다. 이란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고, 아름다운 테헤란의 사진을 찍어 여러 사람들과 널리 공유해 달라고 했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국에 소개된 훌륭한 이란의 문학작품과 영화들을 통해 이란 사회에 다가갈 수 있다. 변화를 희망하며 더 나은 삶을 향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 한국정부에 더 강력하게 이스라엘과의 무기거래 중단을 요구하고 세계시민들의 연대 투쟁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전쟁과 지배보다 평화와 공존을 바라는 세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자.

(북테헤란 스카이라인.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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