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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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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폭염이 우리 사회를 엄습했다. 서울 기준이긴 하나 7월 상순 기온으로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하니 “살면서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때이른 폭염이 휘두른 폭력으로 벌써 많은 사람이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잃었다. 7월 11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온열질환 누적환자 수(1,475명)는 약 2.9배, 사망자(9명)는 3배 증가하였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또 4천5백명의 온열질환자와 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일일 온열질환자 발생이 2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한동안 계속될 이번 폭염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될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폭염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건강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앗아간다. 열사병을 비롯한 각종 온열질환 외에도 기저질환을 악화시켜 급성 심근경색, 뇌졸중, 급성 신부전 등의 위험을 키우고, 우울과 불안 등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장시간 고온에 노출될 경우 집중력 저하에 따른 산재 발생의 위험을 높여 간접 건강피해를 야기하기도 한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집단 가축 폐사와 같이 폭염은 비인간 동물에게도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매년 심화되는 폭염은 더이상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기후 재난이 되었다.

 

한편 폭염은 그 특성상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를 발생시키지만,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 직사광선 피하기와 적절한 냉방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만 잘 지켜도 극단적 건강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우나 폭설 등 다른 자연재해들보다 더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즉, 각 개인이 안전 수칙을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보장하는 사회적 폭염 대비·대응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한 체계를 갖추는 데 소홀해왔다. 단적인 예로,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규칙 개정안(‘폭염 작업 의무 휴식’ 조항)이 올해 6월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규제개혁위원회의 문턱에 걸려 시행이 무산되지 않았던가. 늦게나마 지난주 다시 열린 심의에서 통과돼 이번주부터 시행하게 되었지만(☞관련기사: 바로가기), 꼭 이렇게 피해자가 속출해야만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폭염 재난의 한 가운데 있는 지금으로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특단의 노력이 시급하다. 대통령 지시처럼 정부는 말 그대로 “가용한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당장에 모든 일터에서 휴식 의무화 규칙이 준수될 수 있도록 철저히 지도·감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무더위쉼터 확대 운영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방문 건강관리와 냉방비·냉방용품 지원 등 이미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긴급 폭염대책으로 발표한 여러 조치들을 신속하고 포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통상적인 폭염대책이 가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주목해야 한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폐지를 수집하는 분들과 같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비공식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폭염 기간에 한해 실내에서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저강도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한 지자체 사례(☞관련기사: 바로가기)와 같이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촘촘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질병관리체계의 허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겠다. 현재 매일 집계돼 발표되는 온열질환 사망자 통계에는 전국 의료기관 응급실에서 신고된 사례만 포함된다. 그런 탓에 응급실이 아닌 곳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판정을 받는 경우 통계에서 누락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전수조사 목적이 아니라 경향성을 보기 위한 표본감시”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를 과소추정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향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폭염으로부터 사회 구성원 모두를 더욱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기적 보호 조치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 일례로 최근 ‘주7일 배송’을 도입하면서 그만큼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노동자 부담을 가중시킨 택배 기업들의 과도한 영리 추구 행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금처럼 배달노동자들이 ‘폭염 속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단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해야만 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노동자를 착취하며 억압하는 구조적 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 역시 우리 사회를 ‘폭염 위험 사회’로 만들고 있다. 기존 연구 결과를 보면 가난한 이들의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폭염 취약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즉, 폭염이 강력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닌 것이다. 폭염의 폭력성은 사회적 불평등을 타고 흐르며 차별적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폭염 살인’(2024)의 저자 제프 구델은 “폭염은 힘없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약육강식의 현장”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마치 “온도격리정책이라도 시행되는 듯”이 누군가는 “시원한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오싹 한기를 느끼는” 반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익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며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추운’ 실내 공간에 장시간 머물 수밖에 없어 냉방병 환자가 되기도 한다. 즉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자신에게 쾌적한 수준으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자유와 역량, 권력이야말로 ‘기후계급’을 나누는 잣대인 것이다.

 

여기에는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억압도 포함된다. 지난 7일, 한 공사현장에서 베트남 국적 20대 청년 노동자가 앉은 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되는데, 이날 내국인 노동자들은 모두 오후 1시에 퇴근한 것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4시까지 남아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과거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더위에 강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는 노예제와 잔혹한 노동조건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더운 지역 출신 사람이 추운 지역 출신보다 더위를 더 잘 견딘다는 생각은, 각 사람의 신체 적응력의 차이를 간과하면서 인종차별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이날 어떤 이유로 장시간 폭염에 노출되어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가 그 안타까운 죽음의 한 배경이지 않았을까 싶다.

 

폭염을 피할 권리(피서권), 폭염 휴식권, 폭염시 작업 중지권, 폭염 안전권 등 뭐라 부르던 간에 오늘날 일상화된 폭염 재난 속에서 우리 모두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기본 권리를 가진다고 믿는다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보다 근본적인 폭염 대책일 것이다.

 

 

한편 폭염 재난과 관련해 우리가 반드시 다뤄야 할 주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열악한 노동 조건과 ‘취약계층’의 구조적 원인인 사회적 불평등 문제,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다. 하지만 둘 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분리될 수 없는 한 과제로 볼 수 있다. 두 과제가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발맞춰 추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 정의로운 체제전환을 위해 진행 중에 있는 ‘공공재생에너지 입법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것 역시 폭염 재난에 맞서는 중요한 실천 중 하나일 것이다(☞청원 바로가기).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에 균열을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전통적 보건의료 패러다임에서 ‘지속가능성’은 경제적 지속가능성만을 의미했지만, 기후위기는 보건의료의 지속가능성 범주를 확장시키고 있다. 아직 국내 사정은 여기에 못 미치지만, 2010년 중반부터 보건의료 영역에서 막대한 탄소와 각종 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건의료의 환경적 지속성 평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관련연구: 바로가기). 비영리적, 반자본적 방향으로 보건의료의 ‘녹색화’에 힘쓰는 것도 폭염 대책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지난 2022년, 스페인 도시 세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폭염에 “조이(Zoe)”라는 이름을 붙이며  폭염 명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폭염에 더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안전 수칙을 잘 따르도록 만드려는 의도였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폭염 이름을 기억한 사람일수록 폭염 안전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연구: 바로가기). 하지만 세계기상기구는 특정한 폭염에 이름을 붙이면 누가 위험에 처했고, 어떻게 폭염에 대응해야 하는지 등 가장 중요한 메시지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멀어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폭염 명명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도 폭염 위험과 대처법을 신속히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폭염 재난의 근본 원인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 과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번 폭염도 머지않아 물러갈 것이고 우리 관심에서도 멀어지겠지만, 곧 더 뜨겁게 다가올 폭염 재난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열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총체적 관점에서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비극적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해 폭염은 ‘불평등’이 만든 무거운 열기에 주저앉고 만 그 이름, ‘응오 두이 롱’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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