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4년 1월 1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 (바로가기)
지난달 중순 정부는 의료기관이 영리법인 자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대책이 결코 ‘의료 민영화’나 의료서비스의 ‘영리화’ 방안은 아니라고 밝혔다. 정부의 말을 믿고 싶으나, 이전 연구 결과들을 볼 때 정부의 설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 남긴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지난해 <국제보건의료재정경제지>에 나온 것으로, 경제적 인센티브가 의사들의 진료행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엡스타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팀은 미국의 암등록 자료와 약제비 청구 자료를 이용해, 1992~2002년 전이된 유방암을 진단받은 65살 이상 환자 4503명에 대한 항암제 처방 결과를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의약품의 처방과 투약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의사가 처방에서 얻는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 그런데 항암제는 예외다. 의사가 제약사 등에서 약을 도매가로 산 뒤, 이를 환자들에게 직접 처방 및 투약을 하고 나중에 이를 보험에 청구해 받는다. 의사의 항암제 선택에 따라 경제적인 이익이 생기므로 처방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1997~2004년 미국의 공보험인 메디케어의 전체 약제비가 47% 증가한 데 견줘, 항암제 비용은 267%나 늘었다.
분석 결과 또 약값 마진이 큰 항암제일수록 의사의 선택 경향이 뚜렷해졌다. 약값 마진이 10% 증가할 때마다 최저 11%에서 최대 177%까지 특정 항암제에 대한 선택이 많아졌다. 대신 특허 만료로 약값이 떨어져 의사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줄면 처방이 39% 감소했다. 물론 학술적 근거가 풍부하거나 미국 식약청이 승인한 항암제에 대한 선택 경향도 뚜렷했다. 의사의 항암제 선택에는 임상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하지만, 경제적인 인센티브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의사는 과학적 판단뿐 아니라 경제적 이해에 따라 행동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이번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우리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한국의 의사들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윤리적 초인임에 틀림없다. 의사는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지만 절대로 불필요한 건강보조식품이나 의료보조기구를 환자에게 권하지 않을 것이다. 식당, 장례식장을 통해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의사의 ‘양심’을 걸고 ‘착한 가게’로 운영할 것이며, 여기에서 생긴 수익은 한 푼도 남김없이 진료서비스 개선에 재투자할 것이다. 만일 영리법인 자회사를 통해 열성적으로 돈벌이에 몰두하는 병원이나 의사가 있다면, 이는 이들의 특별한 탐욕 탓이니 정부는 이런 비양심적인 의사들을 색출해 혼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논문에서 보여주듯, 의사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인센티브는 한참 진행된 암에서의 항암제 처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덜 위중하거나 비필수적인 진료서비스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전 연구들이 반복해서 지적했듯, 의사들은 초인이 아니라 시민들 심지어 투자활성화 대책을 만든 관료와도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다. 이 때문에 의사가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양심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전문가의 자존감을 버리면서 돈벌이 경쟁에 나서고 환자들은 의사를 불신하며 미심쩍은 추가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정부가 왜 만들어내는지 한심하다는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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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Epstein AJ, Johnson SJ. Physician response to financial incentives when choosing drugs to treat breast cancer. Int J Health Care Finance Econ. 2012;12(4):285-302 (바로가기)
일본의 사례: Iizuka T. Experts’ agency problems: evidence from the prescription drug market in Japan. Rand J Econ. 2007;38(3):844-62.(바로가기)
대만의 사례: Liu YM, Yang YH, Hsieh CR. Financial incentives and physicians’ prescription decisions on the choice between brand-name and generic drugs: evidence from Taiwan. J Health Econ. 2009;28(2):341-9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