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2014년을 맞으며 – 민주와 복지, 공공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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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을 말하는 사람과 듣는(들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매번 다르다. 오늘은 말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우리’라는 것을 전제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이고 인민이며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다. 그러니 이번 논평은 새해 다짐이라고 해도 좋다.

 

지난 주 2014년의 마지막 논평은 조금 어두웠다는 평들이 꽤 많았다(논평 바로가기 , 프레시안 바로가기). 철도파업의 우울한 분위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분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새해 첫 번 논평이기도 한 만큼 희망을 말하는 것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위기는 위험이지만 동시에 기회다. 2013년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징후는 새로운 기회의 씨앗을 스스로 품고 있다. 2014년은 위험을 기회로 바꾸어 내는 그런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기회는 저절로 어떤 성취를 보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본래의 말뜻대로 기회는 하나의 조건 이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 스스로 힘을 만들고 모으지 않으면 기회는 아무런 성취 없이 역사로만 남을 뿐이다.

 

건강과 보건, 그리고 좀 더 넓히면 복지라는 맥락에서 새해 희망을 점검해 보자. 그러하지만 밖으로는 그 범위를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1.

민주주의를 실천할 힘과 공간이 더욱 커질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권력의 횡포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꼭 비관할 것만은 아니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움틀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유행처럼 번진 ‘안녕들하십니까’나 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학생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단적인 예다. 단순한 에피소드나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다. 배제와 축출, 억압이 커질수록 참여의 욕구와 동력은 커지는 것이 아닐까. 자유를 향한 인류의 도저한 역사가 말해주는 바다.

 

그러니 새해는 민주주의를 새로 생각하고 작동시키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단순히 옛 것을 부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맥락과 조건 속에서 민주주의는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여야 한다.

 

형식만 그럴싸한 ‘얕은’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니, 자칫 또 다시 대의제라는 형식과 투표, 제도 정당만으로 쪼그라들기 쉽다. 벌써부터 누가 도지사니 시장이니 하는 바람몰이가 걱정이다.

 

이를 이기는 몇 가지 열쇠는 ‘참여’와 ‘숙의(또는 심의)’, 그리고 ‘지역’이 아닐까 싶다. 작년 진주의료원 사태에서도 그랬지만, 참여와 숙의를 바탕으로 한 ‘깊은’ 민주주의는 척박한 토양에다 아직 씨조차 제대로 뿌리지 못한 상태다.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도 제대로 논의되고 민주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밀양의 송전탑 사태나 KTX 자회사 설립 문제를 보라. 민주적 참여의 가장 가까운 현장인 지역과 직장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빈약한 역설!

 

그래도 6월 지방선거는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니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지역에 밀착해서 건강과 보건정책, 지역복지를 점검하고 예산 쓰는 것도 따져봐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의논하며 그것을 제도로 굳히는 첫 걸음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식과 비공식을 가릴 것도 없다. 문제(예를 들어 지역의 건강문제나 이에 대한 사업)를 찾고 사회적으로 제기하며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2.

복지국가 논의가 새롭게 진전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 역시 한두 해 전과 똑 같은 모양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모자랄 듯싶다. 올해는 복지국가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드는 ‘물리적’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울만 남은 공약, 다시 배신당하지 않을 힘을 길러야 한다. 필요한 일을 한두 가지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힘의 바탕은 말(言)일 수도 있고 조직일 수도 있다. 여론도 토대가 될 수 있고 선거와 투표도 중요하다. 더 정확한 진단과 더 좋은 이론도 힘을 보탤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변화를 강제할 실제적인 힘을 갖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복지국가의 구조가 결국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이해(利害), 그리고 그 직접적 결과로서의 권력관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시 한 번 중요한 계기가 될 만한 것이 6월 지방선거다. 복지국가의 지향과 내용을 강제하는 힘을 만들고 발휘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투표 한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며 현실의 정치로 밀어 넣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앞서 말한 민주주의의 과제와 톱니처럼 맞물린다.

 

2003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10년을 거친 논란 끝에 최근 시립병원을 착공한 성남시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시립병원이 있고 없고는 다음 문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했고 집단적으로 학습했으며 어떻게든 정치를 변화시켰다는 그 과정이 더 소중하다.

 

3.

지난 주 논평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딜레마 때문에도 민영화와 영리화를 밀고 가는 동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은 다양하겠으나, 자본의 새로운 돈벌이를 방해하는 모든 구속을 없애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민영화와 영리화의 정치사회적 기반은 ‘충분히’ 허약하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았던 것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의료의 영리화에 맞서는 여론은 이보다 더 강하다. 이것이 현실이자 토대, 그리고 힘이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엉성한 논리는 둘째 치고라도, 그동안 저절로 드러난 부도덕과 편향은 오히려 공공성 강화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교육과 보건의료와 같은 공적 가치에는 더욱 더 그렇다.

 

반대와 부정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으나, 민영화·영리화에 반대하는 힘은 이미 그 속에 반(反)으로서의 공공성 강화라는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민영화와 공공성 강화가 사실상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새해에는 민영화·영리화를 둘러싼 분석과 진단, 대응 논리가 더욱 튼튼해졌으면 한다. 나아가 대안으로서의 공공성 논리와 구체적 대안을 더욱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안이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 문제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민영화와 영리화는 지금 맞는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근본적 딜레마 내지 모순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성 강화는 이 시대의 모순과 가장 날카롭게 맞선,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과제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말한 세 가지 새해 ‘희망’의 징조는 저절로 성취로 바뀌지 않는다. 희망을 나침반이라 한다면 우연이 아닌 실천을 보태야 전진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은 주체로서 ‘우리’(시민이고 인민이며 민주공화국의 국민)가 감당해야 할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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