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oi.org/10.23419/CHES.2026.06.30.06
정백근
(시민건강연구소 소장)
『비판건강연구』 제2권 2호를 발간한다. 흔히 비판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일로 이해된다. 물론 그것 역시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비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과 제도, 정책과 상식을 다시 묻는 일이다. 무엇이 문제로 정의되는지, 누구의 경험이 사회적 지식으로 인정되는지, 어떤 현실은 통계가 되고 어떤 현실은 끝내 측정되지 않는지를 질문하는 일이다. 『비판건강연구』가 지향하는 비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건강은 이러한 질문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건강은 질병과 의료서비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노동과 젠더, 지역과 기술, 국가와 자본의 관계 속에서 건강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건강 불평등 또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따라서 건강을 비판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정책을 가능하게 만든 지식과 권력의 구조를 성찰하는 작업이다.
이번 호는 ‘선거와 민주주의’라는 특집 아래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사회적 장면에서 풀어내고자 하였다. 특집의 첫 번째 글 「왜 어떤 고통은 세상을 바꾸는 지식이 되지 못하는가」는 섬과 농촌 주민들의 의료 공백이 왜 정책 의제로 전환되지 못하는지를 묻는다. 이 글은 그 답을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진실을 생산하는 절차와 권력의 문제에서 찾는다. 누가 측정하고, 무엇을 측정하며, 누가 그 결과를 인증하는가의 문제가 곧 무엇이 현실로 존재하는가를 결정한다.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진료를 포기한 사람은 통계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용되지 않은 의료는 수요가 없는 것으로 처리되고, 수요가 없으니 병원도 필요 없다는 자기완결적 논리가 순환한다. 이 글은 그 순환을 끊기 위해 주민의 관점에서 측정틀을 재구성하고 주민들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지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어지는 「지역보건의료의 정책운동을 넘어, 정치운동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확장한다. 주민의 삶이 전문가의 정책 언어로 대체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지역의 경험과 주민의 지식이 의제를 형성하는 정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정책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무엇을 사회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누구에게 문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를 둘러싼 정치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초점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넓은 사회 구조 속에서 확장한다. 「강남역 사건 이후 10년, 여성은 얼마나 안전해졌을까」는 젠더 폭력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다시 읽으며, 「누구를 위한 반도체 붐인가」는 국가 성장의 화려한 서사 뒤에 가려진 노동과 희생을 드러낸다. 「’이윤보다 생명’을 위해 투쟁한 이를 기억하며」는 우석균 선생의 삶을 통해 건강권 운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글들은 모두 사회가 무엇을 보게 만들고 무엇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가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기고에 실린 세 편의 글은 이 호의 문제의식을 이론과 현실 양 방향에서 심화한다. 「비판건강이론 또는 비판건강연구에서 ‘비판’이란 무엇인가」는 비판이 단순한 정책평가가 아니라 지식과 권력 자체를 성찰하는 작업임을 제시하며 이번 호 전체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디지털 자본주의와 정신건강」은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정신건강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생산하는지를 분석하고, 「여성농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농어촌 보건의료의 현실」은 농촌 여성의 노동과 건강이 왜 오랫동안 주변부의 문제로 남아 있었는지를 당사자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비판은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현실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읽어내는 작업임을 이들 글은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호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주민과 당사자의 지식이다. 지금까지 보건의료정책은 전문가와 국가가 생산한 지식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주민들이 살아온 경험, 노동자가 몸으로 체득한 위험, 여성이 일상에서 감내하는 불안, 농민이 축적해 온 삶의 지혜는 결코 주변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지식이며, 기존 질서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비판의 출발점이다. 건강과 건강 불평등은 누가 현실을 정의하는가의 문제이며, 누구의 경험이 사회적 지식으로 승인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판건강연구』는 비판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이해하지 않는다. 비판은 현실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 전제와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다른 사회를 상상하는 실천이다. 따라서 비판은 학문적 작업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실천이며, 건강을 권리로 다시 세우기 위한 사회적 과정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건강을 둘러싼 지배적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주민의 경험과 노동자의 삶, 여성의 일상과 지역의 현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목소리를 새로운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비판건강연구』가 이러한 비판적 성찰과 집단적 실천을 이어가는 공론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