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건강연구 (ISSN: 3092-3859)

[비판건강연구 2권2호] 비판건강이론 또는 비판건강연구에서 ‘비판’이란 무엇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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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oi.org/10.23419/CHES.2026.06.30.30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 이사장)

 

우리에게 익숙한 비판 개념은 예를 들어 “A 사업은 방법이 잘못되었다”든지 “B 정책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비판이란 적합하다,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과학적이다 등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런 내용과 실질을 문제 삼는 실천을 가리킨다.

푸코적 의미의 비판은 이와 달리 어떤 실천이 그 자체로 옳다 그르다 하는 행위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실천이 토대로 삼고 있는 가정, 담론, 상식, 규범과 윤리, 가치 판단, 신념, 직관 등을 검토하는 작업을 뜻한다(Foucault, 2000:456). 예를 들어, 이런 의미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을 비판한다는 것은, 정책/사업 내용이나 체계 구성, 접근 방법과 수단 등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한국에서 지역사회는 존재하는지, 왜 ‘지역사회’ 접근인지, 왜 ‘통합’을 내세우는지, 누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접근을 ‘진리화’ 하는지 등을 검토하는 작업이다.

 

I. 비판 대상으로서의 지식

 

푸코의 비판 개념의 핵심 대상은 지식과 권력이다(푸코, 2016:67).

 

그 어떤 지식도 소통, 기록, 축적, 이전의 체계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데, 이 체계는 그 자체로 권력의 한 형식이며, 그 체계의 실존과 기능 속에서 다른 권력 형식과 연결된다. 반면 그 어떤 권력도 지식의 추출과 점유 그리고 분배, 혹은 지식의 압류 없이는 행사될 수 없다….한편에 인식이 있고 다른 한편에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혹은 한편에 학문이 있고 다른 한편에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식권력의 근본적 형식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만고불변’의 지식이 있을 수 없고,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진리’는 달라질 수 있으며, 과학과 과학적 지식 또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건강정책에 관한 지식도 마찬가지다. 건강 수준과 건강의 결정요인, 좋은 돌봄, 노인의 보건의료 필요와 요구, 의사 인력 부족의 원인 등의 지식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어떤 권력관계 안에서 만들어지고 확산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지식은 대체로 서양 현대의학의 관점을 따르고, 사회적, 구조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이며, 계급, 젠더, 국가와 경제, 도시-농촌, 전문성-비전문성 등 기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기초하기 쉽다.

지식을 적용하거나 활용하는 맥락도 중요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의료전달체계와 거점 의료기관이라는 요소를 국가보건의료체계의 ‘진리’처럼 간주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지식은 환자의 편의보다는 국가 수준에서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식 권력을 획득했다고 해야 한다.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장과 조세 기반의 건강보장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두고, 과학적 지식의 옳고 그름이 판단기준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II. 지식 노동의 아비투스와 성찰성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개념을 빌리면, 우리 대다수의 사고와 실천은 ‘아비투스’에 갇혀 있다. 지식과 지식노동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보건의료 지식노동자 대부분은 의사면허 관리 주체를 국가로부터 지방정부로 옮길 수 있다고 상상하지 못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 관한 사고가 하나의 아비투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비투스는 사고와 행동, 실천을 규정하고 규율하는, 말하자면 주체에게 관철된 ‘내면화된’ 객관성이다(이상길, 2015:532-3).

사회적인 것은 개인 안에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속적인 성향이자 구조화된 기질의 형식 아래 침전된다(“외재성의 내면화”). 이렇게 형성된 아비투스는 개인의 모든 경험을 통합하면서 매 순간 지각, 평가, 행동의 매트릭스로서 기능한다….개인은 이전의 실천과 경험에서 획득된 도식을 비슷한 상황에 전이시킴으로써 무한히 다른 상황과 과제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내면성의 외재화”). 아비투스는 새로운 맥락에 대한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대응을 낳는다. 그런데 거기에는 언제나 모호성, 유동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실천의 원동력인 아비투스는 동시에 실천에 일정한 한계를 부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면화한 과거의 객관적 조건들이 현재 시점의 조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비투스와 구조 사이에는 일종의 변증법적 대결이 존재한다. 이는 아비투스가 드러내는 나름의 자율성과 제한점을 설명한다.

 

이런 아비투스는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공간으로서 일정한 장(field)을 전제할 때 아비투스는 “행위자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 생성의 원리이자…지속적이고 전이 기능한 성향 체계로서, 과거의 경험을 통합하면서 매 순간 지각, 평가, 행위의 매트릭스로 기능하며, 한없이 다양한 과업의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부르디외와 바캉, 2015:63). 우리의 일상인 지식노동의 아비투스도 다르지 않다.

이런 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대체로 느린 위기의 형태로 다가오며 이에 대한 반응과 적응도 일상화한다. 이는, 체계와 개인 수준에서 아비투스와 습관이 여러 기술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데 간여하기 때문이다(Akram & Hogan, 2015). 대부분 사람에게 노동과 소외,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은 ‘루틴’이 되고, 위기를 맞지 않는 한 이를 포함한 기존 아비투스가 그런 루틴을 강화하는 효과를 생산한다.

아비투스는 일반적으로 완고하게 현실에 고착되는데, 부르디외의 이 이론이 ‘구조결정론’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받을 정도다. 이런 특성의 아비투스를 갱신 또는 수정해야 하는 대표적 조건이 자신의 ‘장’에서 위기를 맞을 때이다. ‘장’이 변동하면 흔히 기존 아비투스는 위기에 처하고 새로운 장에 맞는 새로운 아비투스를 구성해야 한다. 지식노동의 경우에는 대학 또는 대학 내의 단과대학이나 학과, 연구소, 학회, 자신이 속한 학계 등이 ‘장’이 될 수 있다. 민간 회사에서 일하다가 공공기관으로 옮기면 지식노동의 목표와 과정, 방식을 다 바꿀 수밖에 없다.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면 언어, 문화, 생활양식 등 모든 측면에서 기존 아비투스가 위기를 맞는다. 이러한 새로운 아비투스는 사실상 강요받는 것으로, 대부분 사람에게 일상적인 사태는 아니다.

비판건강정책의 비판은 이런 지식노동의 (완고한) 아비투스를 벗어나는 문제, 그리고 그 가능성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 사회이론은 행위 주체의 실천은 성찰성(reflexivity)에 좌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비판을 지식노동의 아비투스와 관련되었다고 이해하면, 이 또한 성찰성이라는 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성찰성을 아비투스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아비투스로서의 비판 또는 ‘무비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특히 지식노동의 아비투스에 대해서는 부르디외가 말하는 지식과 성찰성의 관련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식을 다루는 시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편향을 말하면서 “개별 연구자의 사회적 출신 성분과 좌표(계급, 젠더, 민족 등)”와 연구자가 “광범위한 사회구조 내에서가 아니라, 학문장이라는 소우주, 더 나아가 권력 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관련”된다고 지적했다(부르디외와 바캉, 2015:93). 전자는 설명을 보탤 필요가 없을 터이고, 후자는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권위자’로 인정받는 미국 학자가 한국 문제를 연구할 때 어떤 관점으로 접근할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편향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어떤 점에서는 비교적 자주 성찰성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과 비교해, “대상의 구성 행위 속에서 끊임없이 탐문되고 중화되어야만 하는… 이론, 문제, 그리고 학술적 판단의 (특히 국가적인) 범주들에 내재하는 집단적인 과학적 무의식”은 “사유의 사유되지 않은 범주들”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탐구하기가 쉽지 않다(부르디외와 바캉, 2015:95). 도시 중산층 출신 연구자가 건강의 지역 불평등에 큰 관심이 없다면 이는 전자와 관련된 편향이다. 한국의 건강정책 연구에서 실증주의적 방법과 서구 중심적 이론이 지배적 지위에 있는 것, 그 때문에 이런 방법과 이론들이 진리에 부합한다는 집단적 무의식은 후자의 편향을 유발한다고 할 수 있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성찰성은 후자에 속하는 편향적 지식에 대해 더 중요하다. 그는 성찰성이란 개인이나 개별 연구자가 아니라 “분석 도구와 절차에 내재된 사회적이며 지적인 무의식”이며, 개인 “혼자만의 짐이기보다는 집단적 기획”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부르디외와 바캉, 2015:90). 또 한 가지, 그가 이런 성찰(성)은 교육하고 학습할 수 있고, 실천의 여러 층위에서 의식적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하는 점도 중요하다(Schirato & Webb, 2002). 이런 맥락에서 부르디외의 성찰성 이론은 인식 주체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실천을 통해 “사회적이며 지적인 무의식”을 드러내고 또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연구자들이 주관주의나 상대주의로 빠지지 않고 ‘복수의 관점’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시점(시각)의 공간‘과 함께 작업해야 한다고 촉구”한다(Kenway & McLeod. 2004).

비판이라는 방법(론)은 아비투스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아비투스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구조에 의존하고 완고하게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지식노동의 아비투스가 비판적 접근에 방해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지식장에서 분야에 따라 또는 주류 경향을 중심으로 강고한 아비투스가 형성되어 있고, 이를 벗어나 비판적 관점을 내면화하고 또 다른 아비투스로 전환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정적이지만, 나는 성찰성 자체가 아비투스가 되어야 지식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Sweetman, 2003). 각 개인에게 성찰성이 “특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속적인 성향이자 구조화된…형식”이 되어야, 역설적으로 새로운 아비투스로 이동할 수 있다. 이에 부르디외가 말한 하나의 집단적 기획, 예를 들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지식노동의 여러 층위에서 의식적으로 비판적 접근이 작동하도록 구조화하는 것이 실천의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III. 탈학습

 

지식노동의 아비투스, 그리고 성찰적 아비투스에는 제도적인 학습 과정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의료에서 구체적인 정책, 제도, 사업, 프로그램, 환경 변화를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사람 대부분은 제도적 학습, 그리고 이로부터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개인의 경험은 개념을 통해, 주로 지식이라는 형식으로 ‘사회적인 것’과 연결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보건의료체계 개념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어떻게 우리 개인의 경험과 연결하고 이해하는 틀로 채택하게 되었을까 등의 질문이 이에 관한 것이다. 또, 보건소가 의료서비스를 중단하고 보건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공유 지식은 어떤가?

지식과 개념을 학습하는 것은 혁신 기술의 확산처럼 사회변화에 정(+) 방향으로도 작동하지만, 학습된 지식과 개념은 때로 부(-)의 방향으로, 예를 들어 무의미한 의료 기술이 계속 쓰이는 것처럼 현상 유지에 이바지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어쩌면 우리 개인에게 매우 익숙한 체계 개념과 지식이 현재 형태로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찰적 아비투스에는 기존 학습 과정과 내용을 거스르는 ‘탈학습(unlearning)’이라는 실천이 포함되어야 한다(Rushmer & Davies, 2004).

탈학습이 가능한지 또 어떻게 가능한지는 상당 부분 지식의 권력관계에 달려있다. 즉, 권력이 크고 지배적 지식일수록, 예를 들어 제도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일수록 탈학습은 어렵다. 양적 방법론이 다른 방법론보다 훨씬 권력이 강하고, 그만큼 탈학습, 즉 질적 방법론과 같은 다른 방법을 상상하고 실천하기는 힘들다. 이는 탈학습이 개인적 실천의 영역이라기보다 상당 부분 구조에 대해, 그리고 집단적,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보건의료 영역의 탈학습 대상으로는 보건의료체계에 관한 지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거의 전적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국가) 보건의료체계 개념을 받아들여 활용하는 것이 현재의 상태다. 이는 하나의 국민국가를 대상으로 보건의료체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유용하지만, 어떤 관점과 목표로 체계를 인식하려 하는지에 따라 단점과 한계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지식과 실천 전반에 미치는 이 지식의 지배력은 다른 체계 이론을 압도한다.

이 지식이 최근의 전공의 이탈이 보건의료 전반에 미친 영향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탈학습, 성찰성, 아비투스 등과 연결된다. 기존 보건의료체계 이론보다는 ‘복잡적응시스템’ 이론이나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이 더 설명력이 높을 수도 있다. 물론, 여러 지식은 특정한 사회적 요구와 맥락이 반영되어야 장점과 단점, 효용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건강정책, 그리고 그 맥락과 조건, 환경으로서 ‘보건의료체계’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면, 이 주류 지식 또는 지식 헤게모니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며, 익숙한 기존 지식으로부터 ‘탈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문헌

김창엽. 2025. “방법(론)으로서의 비판”. 비판건강정책학회 연수교육 자료. 2025년 4월 8일.

부르디외, 피에르, 로이 바캉. 부르디외, 피에르, 로이 바캉.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그린비.

이상길. 2015. “부르디외 사회학의 주요 개념”. 부르디외, 피에르, 로이 바캉.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그린비.

푸코, 미셸. 2016. 『비판이란 무엇인가?』. 동녘.

Akram, Sadiya, and Anthony Hogan. 2015, On reflexivity and the conduct of the self in everyday life.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66: 605-625. p.612. https://doi.org/10.1111/1468-4446.12150.

Foucault, Michel. 2000. Power. Essential Works of Foucault 1954-1984. New Press. p.456

Kenway, Jane & Julie McLeod. 2004. “Bourdieu’s reflexive sociology and ‘spaces of points of view’: whose reflexivity, which perspectiv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of Education, 25(4), 525–544. https://doi.org/10.1080/0142569042000236998

Rushmer R, Davies HT. 2004. Unlearning in health care. BMJ Quality & Safety, 13:ii10-ii15. https://doi.org/10.1136/qshc.2003.009506

Schirato, Tony, & Jen Webb, 2002. “Bourdieu’s Notion of Reflexive Knowledge”. Social Semiotics, 12(3), 255–268. https://doi.org/10.1080/10350330216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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