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사회학(STS)은 현대사회의 과학화와 기술화가 오히려 시민을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에서 소외시키는 역설에 주목해왔다. ‘전문성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원리를 위배하는 이 현상에 맞서, 시민들은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을 직접 수행하며 전문가주의로부터의 체계적 배제를 줄여왔다.
보건의료와 환경 부문의 건강사회운동 또는 시민과학운동에서 환자와 피해자는 당사자 정체성으로 자신들의 몸을 증거로 삼고, 지역 주민은 현장에서만 가능한 일상적 관찰과 기록을 근거로 새로운 인과관계를 입증해왔다. 특히 생태환경 영역에서 정부측이 실험실 연구 혹은 단기적∙부분적 조사에 그치는 것과 달리, 지역 주민과 시민과학자들은 방대한 자료와 경험 지식(lay knowledge)을 축적하고 있어서 이들이 제기하는 반론과 대안은 반박하기 어렵다. 시민과학운동은 구체성과 충분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의 지식을 넓히며 시민의 권리를 지켜왔다.
대규모 국책개발사업에서 정부는 공청회, 간담회, 토론회 등의 절차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거버넌스를 갖추고 정책 합리성을 추구하는 ‘모양새’를 보이려고 한다. 그래도 이러한 절차는 최소한이나마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생활세계의 지식이 관료나 외지 전문가들의 탁상행정이 가진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정책 현장에서 확인되는 것은 그런 형식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부 실패다. 객관적 검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의 자료가 부실하거나, 사후적으로 명분을 덧붙이고, 부처가 명문화했던 보호구역 보존결정조차 따르지 않는다.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인 100년 숲, 5천년 갯벌을 파괴하면서 탄소감축을 장담하는 자가당착까지. 이재명정부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선언한 이후, 환경부의 역할은 사실상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 용수와 부지를 대는 게 환경정책의 몫이 됐다.
무더위의 끝자락이던 8월 마지막 토요일, 청와대 앞 도로에서 “생명의 편에 선 사람들” 집회가 열렸다(관련기사). 청양 지천댐,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 설악산·지리산·황령산 케이블카, 가덕도·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4대강 보 해체와 산청 지하수 보존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몇 사례만 보자. 지천댐은 윤석열정부에서 기후위기 대응댐으로 선정되었다가 주민반대로 유예됐으나 2026년 8월 27일에 충청권 메가프로젝트 공업용수 공급을 위한 다목적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4대강 재자연화는 이재명 정부의 ‘환경 제1호 공약’이자 국정과제였지만 1년이 지나도록 16개보 처리방안이 확정되지 않았고, 그사이 올해도 낙동강은 녹조경보가 발령되었다. 황령산 케이블카는 대법원까지 사법부가 잇따라 위법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착공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새만금신공항은 2025년 9월 조류충돌 위험 축소와 이익형량 하자를 이유로 1심 기본계획 취소판결이 났으나, 정부는 즉각 항소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절차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상의 사례는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정부가 뜻대로 개발사업을 강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근거가 결정보다 늦게 만들어지거나(지천댐), 정부가 정한 약속 이행이 미뤄지거나(4대강 재자연화), 법원의 판결이 나오고도 항소와 강행으로 판결이 무의미해지거나(황령산, 새만금) 마찬가지 결과였다. 그러면서 과장된 수요예측∙경제성 미충족∙지역사회 부담이라는 타당한 문제제기에 대해 매몰비용이나 행정의 연속성,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일관된 명분을 들어 추진한다. 이재명정부는 국운이 걸렸다는 메가 프로젝트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를 견제해야 할 국가기구를 무력화하며 강행할 태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과학과 합리성, 민주주의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정부의 과도한 자기확신은 또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메가프로젝트 연구자 벤트 플루비야(Bent Flyvbjerg)는 대형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세력이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사업지연 요인으로 여기며, 낙관 편향과 전략적 오인에 따라 사업비와 수요예측을 왜곡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지연된 시점에 정보공개청구, 공론화, 행정소송 같은 제도적 수단들로 개입하게 되지만,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한 곳에서 개발사업을 막아내더라도, 정부는 다른 부지로 옮겨가 같은 방식을 반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한 곳에서의 승리가 자리를 옮겨서도 힘을 가지려면 절차와 제도를 보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각자의 싸움에서 밝혀진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통치 방식에 대해, 난개발과 생태학살로 공동의 터전을 위태롭게 하지 말라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민들의 지역적 지식과 필요를 반영하는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올 여름도 우리는 국내외에서 폭염과 가뭄, 극한 호우와 홍수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일순간 멈춰 세우는 것을 지켜봤다. 기후재난이 스펙터클로만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가뭄에 애타는 농민과 네팔 대홍수에서 간절히 가족의 생환을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공감에서 멈추지 말고, 사랑하는 존재들과 정든 공간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지금 정부에 요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