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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서 보는 ‘영리추구 의료’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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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2014.04.09 (바로가기)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정책 과제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 인력과 기관의 분포, 정책당국의 리더십, 이해당사자 및 주민들의 적극적 호응, 충분한 수준의 재정 등과 같은 요인들이 제대로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셈법도 성과 달성을 어렵게 한다. 때로는 정책이 아무런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수도, 애초와는 정반대로 나올 수도 있다. 다시 되돌리기 힘든 우리의 생명 및 건강 문제와 관련된 만큼,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 설정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보건의료 정책은 원격의료 및 병원의 영리 자회사 허용이다. 이는 정부의 규제완화 움직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정책의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어 이보다는 그 결과를 간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다른 나라의 비슷한 경험을 소개한다. 세페리 캐나다 매니토바대 교수가 <국제 보건의료서비스> 최근호에 발표한 연구로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립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베트남의 보건의료 정책을 분석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2002년과 2006년에 공립병원을 포함한 공공부문에 재정운용의 자율성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공립병원들은 중앙 및 지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재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또 의사 등 의료 인력의 급여체계에 상여금과 병원 수입을 연계하고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도입해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정책의 애초 목적은 공공서비스의 효율과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우려한 바와 같다. 병원은 수익 증대라는 목적을 향해 치달았다. 고가의 상급 병실을 마련하고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초음파 기계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환자들에게는 주차비, 세탁료를 추가 부담시켰다. 어떤 병원들은 부서별 환자 수 및 진단검사 할당량을 지정해 줬다. 늘어난 병원 수입은 주로 일반 기업들과의 합작을 통해 의료시설 및 기기 고급화에 쓰이거나 환자들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상급 병실을 만드는 데 쓰였다.

 

베트남의 700여개 공립병원을 조사한 결과, 환자들이 내는 돈이 병원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26.5%에서 이듬해 59.4%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베트남 전체의 1인당 보건의료 지출액은 2003~2008년 새 한해 평균 31% 증가했다. 1998~2002년의 증가율 6%보다 월등히 높았다. 소득에 따라 보건의료 이용에도 차이가 생겼는데, 공립과 사립 병원 모두에서 소득 상위층은 하위층보다 의료 이용이 더 많았으며 심지어 그 차이는 상급 공립병원에서 가장 컸다.

 

베트남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건 해당 정책이 충분한 사전조사와 연구에 의해 준비되지 않았고, 보건부가 아닌 경제부처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베트남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자신할 수 있을까?

 

고한수 시민건강증진연구소 (http://health.re.k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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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Sepehri A (2014). Does autonomization of public hospitals and exposure to market pressure complement or debilitate social health insurance systems? evidence from a low-income country.  Int J Health Services 44(1):73-92.

 

* 기획재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 드라이브 관련 뉴스;

의협신문(2014.04.09). “정부, 브레이크 없는 질주… “영리자회사 더 빨리”.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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