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성형수술 ‘소비’의 경제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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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마친 고3 여학생이 성형수술을 받은 뒤 뇌사상태가 되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솔직히 여기까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진작부터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한 사고 이유가 밝혀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나서 대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사정이 나쁜지 성형외과 의사들이 나선 것도 눈에 띈다. ‘성형외과의사회’란 의사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썩은 살’을 도려내겠다며 사과했다.

의사회가 밝힌 성형수술의 실태는 그동안 쉬쉬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사고를 낸 병원은 상담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대리 수술을 했고 환자가 모르게 하려고 과잉 마취를 했다는 것이다. 마취제니 의사 운용이니 하는 자세한 사정은 더 한심하다. 여론이 나빠질 만하다.

그러나 이 역시 아주 놀랄 일인가 싶다. 사정에 어두운 사람들도 별 편법과 희한한 불법이 있으리라 짐작한 바다. 더구나 성형수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이야기가 상식처럼 떠돌지 않았던가.

 

‘예고된 참사’라는 표현이 이상할 것이 없다. 더 정확하게는 ‘예고된’이 아니라 ‘숨겨진’이었다. 오래 된 실상이 우연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비난 받는 당사자는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강하고 온갖 방법이 거론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이라고 무슨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성형외과의 불법을 엄벌하고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무슨 ‘대책’이나 될까.

 

개인 탓을 하면서 사회 풍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더 공허하다. 성형수술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처방은 각자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라는 도덕론을 넘지 못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꼼꼼한 감독과 자율적 규제야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리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불행한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책이 반복되지 않을까.

 

비관적인 이유는 현상의 근본 원인이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구조가 아닌 한국 사회에 깊고 넓게 뿌리 내린 거대하고 완강한 것. 성형수술은 그냥 의학이나 의료, 의사의 일이 아닌지 오래다. 진작부터 완전히 ‘시장화’되었고 상품으로서의 위상은 이미 공고하다.

 

간단하게 봐도 그렇다. 산업으로서의 성형수술은 규모가 엄청나다. 또, 이것의 수요와 공급은 시장과 경제에 거의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수술을 ‘소비’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시장의 논리와 법칙이 철저하게 관철된다.

성형수술의 산업 규모를 다시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만 확인은 하고 넘어 가자. 작년 12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를 참고하는 것이 손쉽다 (바로가기). 2011년 현재 한국의 미용성형 수술 총량은 인구 1천 명당 13.5건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전체 건수는 65만 건으로 7위지만 인구 대비로는 단연 일등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조차 현실을 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참고한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ISAPS)의 통계는 의사들에게 질문지를 보내 물어본 것이다 (그것도 영어로) (바로가기). 한국 의사들이 얼마나 참여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답을 했어도 실제보다 줄여서 말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게다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면서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통계에서 빠졌다고 봐야 맞다.

 

어쨌든 한국은 부인할 수 없는 성형수술의 세계적인 메카이자 허브다. 괜한 표현이 아니다. 벌써 10년도 전에 출판된 센더 L. 길먼의 책, <성형수술의 문화사> (이소출판사 펴냄)에는 중동의 이스라엘, 남미의 브라질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의 성형수술 중심지로 되어 있다. 원래 책은 1999년에 나왔으니, 벌써 15년 전부터 한국의 위상은 확고했던 셈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성형 산업은 앞으로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성형 대국은 어떤 이에게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경쟁력이자 성장 동력 아니던가. 성형외과를 내세워 의료관광과 특구를 노리는 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특구는 제주, 인천, 부산, 대구를 누비더니 드디어 기초지자체까지 나섰다. 바로 지난 달, 중소기업청이 서울 중구를 ‘해피 메디컬 투어리즘 특구’로 지정했다. 경제 살리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성형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의지 하나는 확실하다.

 

모두가 나서는 만큼 세계 1위의 성형 수술은 더 성장할 수밖에 없다. 산업 정책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소비’를 촉진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실제 소비자로 나설 것이다. 시장과 부가가치, 관련 산업과 일자리는 더 확대되고 (비록 숫자에 지나지 않지만) 소득은 증가한다 (그리고 ‘부수적 피해’ 역시!). 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의료산업 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경제이자 시장, 그리고 산업으로 성형 수술을 이해하는 맥락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공공성과 인도주의, 윤리가 중심이 된 의료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쉽게 현상을 바꿀 수 없는 이유다.

의료 사고에 흥분하고 대리 수술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따지고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다른 산업이 다 그렇지 않은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시장의 논리이자, 심각하게 봐도 ‘부수적 피해’일 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부수적 피해와 그리 다를 것도 없다).

내친 김에 한발 더 나가면, 성형수술은 의료 영리화의 ‘척후병’에 지나지 않는다. 건강검진이나 고가, 고급의 시설, 첨단 장비는 하루가 다르게 성형수술의 ‘모범’을 뒤따른다. 어차피 비즈니스가 의료의 영토를 점점 더 잠식하던 참이다.

 

물론 조금은 차이가 있다. 성형 산업의 소비 창출이 훨씬 더 노골적이라는 점(물론 이 조차 곧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 논리에 훨씬 더 강하게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성형수술의 동기는 이제 더 이상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왜곡된 미의 기준”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점점 더 불가피한 사회적 필요(니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취업 면접 때문에 성형을 고민하는 청년이 어디 한둘인가. 시장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필요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다음에야 소비는 단순한 충동 구매나 허위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만들어진’ 외모는, 이제 그것 없이는 살기 어려운, 하나의 새로운 삶의 조건이 된 것이다. 충족되지 않은 이런 소비를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근대화된 빈곤’, 또는 현대판 가난이라고 해야 할까.

 

성형수술이 이처럼 사회경제 구조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것이라면, ‘부수적 피해’를 조금 줄이는 것조차 그리 쉽지 않다. 감독과 처벌, 전문가 윤리 강화라는 오래된 처방은 결코 충분치 못하다. 주체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전체 사회를 비판하는 것도 공허하다.

지루하고 괴롭지만 다시 한국 의료의 구조,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의 틀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시장과 영리를 좇는 의료, 그리고 의료 서비스가 성장 동력이라는 정부. 성형수술은 거기다가 더 어려운 한 가지를 보태야 한다. 인간과 인간 노동의 극단적인 상품화.

 

분노하기는 쉽지만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당장은 패배가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근본과 근본주의로 환원해 말과 마음을 맡기는 것은 또 다른 패배다.

다시 곳곳에서 작으나마 ‘틈’을 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과 노동의 상품화에 저항하고, 의료의 영리화를 막아서는 작은 노력들. 인간에서 멀어진 인간적 활동 – 성형수술의 다른 쪽에서 봐야 할 희망이다.

 

늦었지만 여러 의미에서 ‘피해자’인 그 학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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