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한국의 역사가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 모르겠다. 다른 무엇보다, 시민들이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를 의심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에 서울 지하철 사고까지 보태졌다. 이번에는 큰 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거듭되었다. 이 또한 세월호와 크게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가슴이 철렁한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이 그냥 우연일까. 입 밖에 내놓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가 짐작한다. 이 불행한 사건들 모두 ‘사고 공화국’의 한 단면임을.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부스러지기 쉬운 우리의 삶.
며칠 증거 한 가지가 한 신문에 실렸다. 2008년부터 5년간 약 6천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바로가기). 그 가운데 약 2천명은 익사, 타살, 추락, 화재, 중독 등의 사고사다. 또 다른 2천명은 교통사고, 그리고 1천 8백명은 자살.
어린이와 청소년에 주목한 것이지만, 나이가 달라진다고 큰 차이가 날 리 없다. 그 악명 높은 산재 사망을 보라. 한겨레의 신기섭 기자가 꼼꼼하게 찾고 분석한 통계를 보자. 2008년 현재 한국의 수준은 10만 명당 18명,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바로가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세월호- 서울 지하철 – 어린이와 청소년 사고 – 산재로 이어지는 연속성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고 분통이 나지만, ‘사고 공화국’ 소리가 절로 나게 된 데에는 공통의 ‘구조’가 있다는 것을 아프게 확인한다.
이 와중에 벌써 ‘대책’을 꺼내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분노와 기억이 질겨야 진정한 대책도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사고들을 해석하는 데서 대책은 이미 출발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대책들이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또한 너른 의미에서 정치 속에 있다.
이미 진단에서 ‘구조’가 있다고 했으니 대책이 여기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가진 기본 패러다임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권력이 야합하고 의도하더라도, 희생양 찾기와 개인에게 책임 묻기는 답이 아니다.
각각의 재난과 사고에는 마땅히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거듭 주장하지만, 구조를 같이 손대지 않으면 또 다른 모습의 불행을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진짜 ‘사과’까지 미루고 국정이 최고 책임자가 정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니 당분간 기대를 걸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 역시, 구조를 그냥 두고는 머지않아 잊히고 무력해질 것이라는 점을 미리 지적해 둔다.
다시 특별 조직을 만들고 관료의 기강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뉴얼의 대대적 정비도 작은 시작일 뿐이다. ‘안전생활실천 범국민운동본부’ 같은 것을 만들 생각, 제2, 제3의 새마을 운동 같은 발상은 아예 하지도 말라. 벌써부터 정신주의의 분위기가 짙은 ‘국가 개조’를 말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
구조의 관점에서 공중보건의 시각을 보탤까 한다. 물론, 사고 공화국을 벗어나는 데에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할 일들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공중보건으로부터도 배울 거리가 있지 않을까.
공중보건이라고 하면 조금 낯설지 모르니 약간의 소개가 필요하겠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말할 때는 공중보건은 그냥 ‘보건’과 같다. 의학이나 의료와 달리 (공중) 보건은 각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 구조에 초점을 두고 사고를 이해하는 것과 연결되는 곳이다.
이제 본론이다. 공중보건 관점에서 사고를 보는 첫째 원칙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고에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나 오류가 영향을 미친다.
세월호의 선장과 지하철 전동차의 기관사, 나아가 산재를 당한 노동자조차. 그것이 어떤 것이든 최종적인 단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 심지어 이런 것까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조심하지 그랬어?” “정신 좀 차리지”
그 오류나 실수는 그들의 도덕, 습관, 의식, 집안 문제, 어제 밤의 술에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잘잘못은 (별 사람이 다 있다는 말처럼) 아주 좋고 아주 나쁜 양쪽 사이에 고르게 퍼져 있다.
그런 분포가 어디에나 있지만, 실제 위치는 조건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24시간을 일하고도 멀쩡한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러나 집단 전체로는 사고의 분포가 나쁜 쪽으로 이동한다.
해결과 개선 역시 집단을 봐야 한다. 개인의 ‘개과천선’이 아니라 집단과 환경의 변화에서 답을 찾는다. 개발도상국에서 어린이 설사(와 그로 인한 죽음)를 줄이는 방법에 빗대볼 수 있다. 설사가 난 후 약을 줘서 고치는 것, 개인에게 물을 끓여 먹으라고 하는 방법, 그리고 지역에 샘이나 펌프를 만드는 것과 비교해 보라.
둘째 원칙은 다른 분야에서도 늘 말하는 것이다.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터, 사고에서도 예방이 더 중요하다. 어떤 대책을 마련하든 초점을 여기에 맞추어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 보인 정부의 무력함과 무능함에 수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는 사정이 오히려 걱정스럽다. 재난시 구조 능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시설과 인력, 장비 이야기만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니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행정 논리로 “이제 선진국 수준의 해상 재난 구조 태세를 갖추었다”로 끝나면 곤란하다. 정말 실력은 예방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다.
보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예방은 흔히 관심과 힘을 받기 어렵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다 예방은 구조를 문제로 삼기 때문에 다들 껄끄러워 한다. 잘해 봐야 긁어 부스럼이 되기 쉽다. 이제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원론적으로는 이조차 뻔하다. 먼저,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해야 할 진짜 자기 역할이다. 그러나 이 형편에 저절로 될 리 없다. 그것을 압박하는 시민과 대중의 관심과 목소리, 참여가 계속 필요하다.
사고에 보탬이 될 만한 공중보건의 세 번째 원리. 결과(사고와 질병)를 만들어 내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며 따라서 해결 방법도 그렇다. “구조에 집중해야 하지만 단순화하지 말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문제의 원인을 ‘사회적 결정요인’으로까지 넓힌 공중보건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결핵은 결핵균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난과 집, 먹는 것의 조건이 합쳐서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관련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1 바로가기2). 사고에서도 사회적 결정요인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것이 더 넓게 보일 것이다.
이것 말고도 감시체계를 비롯한 몇 가지가 남았으나 더 기술적인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하겠다. 다만,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사고(와 그 결과)를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에 자주 인용되는 열 가지 원칙은 빼놓기 어렵다. 1973년에 해든이라는 손상 전문 학자가 제시한 이후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말하자면 기본 원리 같은 것이다.
여기서는 원론적 수준에서 항목만 열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앞으로 하려는 일에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 특히 대책의 기본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는 빠진 것이 없나 하는 점에서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1. 위험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것
2. 위험의 양을 줄일 것
3. 이미 있는 위험이면 분출(노출)되는 것을 예방할 것
4. 위험의 빈도와 공간적 분포를 바꿀 것
5.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위험과 보호 대상을 분리할 것
6. 위험과 보호대상을 물리적 수단으로 분리할 것
7. 위험의 기본적 성질을 바꿀 것
8. 위험의 피해에 대한 보호대상의 저항력을 키울 것
9. 이미 발생한 피해는 대응을 시작할 것
10. 피해의 대상을 안정화하고 회복시키며 재활시킬 것.
원문은 다음을 참고할 것.
Haddon, William, Jr. (1973). “Energy Damage and the Ten Countermeasure Strategies.” Journal of Trauma13(4): 321-331.(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