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4년 5월 21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 (바로가기)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장성한 자녀들과 60대 모친이 생을 함께 마감할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그리고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복지 제도는 도대체 무슨 구실을 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 사건 뒤 정치인들은 ‘세 모녀법’을 거론하며 취약계층의 복지 확대를 앞다투어 약속했다. 하지만 이달 초 통과된 기초연금법을 보면, 과연 이 정부에 복지를 확대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는 모든 노인이었다가 소득 하위 70%로 축소됐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가입기간이 길면 기초연금을 줄이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복지 정책이 이렇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최저소득보장 수준이 국가별 건강 수준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가 나라 밖에서 발표돼 관심을 끈다. 넬슨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교수팀은 <사회과학과 의학> 최근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개국의 최저소득보장 정도와 사망 수준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해보니, 최저소득보장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 전체의 사망률은 낮고 평균 수명이 길었다. 건강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는 다른 요인들, 예컨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나 흡연과 음주 같은 행태 요인, 공공의료지출 비중, 빈곤율, 보건의료인력 수 등을 모두 고려해 분석해 봐도 최저소득보장 수준이 높을수록 국민 전체의 사망률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하자면, 경제 수준이나 보건의료 인프라, 건강 행태 등이 서로 비슷할지라도 빈곤층의 소득을 더 후하게 보장하는 나라일수록 건강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사회가 보장해 주는 최저소득이 높을수록 가난한 이들이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거나 더 나은 주거환경에서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자신의 건강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시민 건강 수준을 평균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건강 수준이 높지 않고, 국가의 복지 지출이 많을수록 시민들의 건강 수준이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넬슨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들에 견줘, 기초소득보장이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정책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토했다는 점에서 실천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복지 정책은 이 연구가 주는 구체적인 교훈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정연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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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소개된 논문의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Nelson K, Fritzell J. Welfare states and population health: the role of minimum income benefits for mortality. Social Science & Medicine 2014;112:6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