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누구를 뽑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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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을 새로 뽑는다. 전과 달리 이번 주 금요일30일)과 토요일(31일)에 사전 투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투표 참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1991년에 처음으로 지방선거가 있었으니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성년이 되었으니 자리를 잡을 법도 하건만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오죽했으면 기초자치체의 정당 공천 문제가 불거졌을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굳이 말하자면 자치가 ‘짝퉁’ 신세여서다. 한국의 지방자치를 흔히 ‘반쪽’ 또는 ‘2할 자치’라고도 부른다. 특히 ‘2할 자치’라는 말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가져왔다. 일본의 ‘3할 자치’는 과거 지방자치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용어로 유명하다.

2할이니 3할이니 하는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는 그대로다.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70퍼센트나 80퍼센트를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재정이 이 지경인데 업무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감투만 늘려 놓은 채 그냥 말잔치로 그칠 수밖에.

그러나 지방 재정 문제는 이 정도로 해둔다. 워낙 해묵은 논란인데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이해가 엇갈려 풀기가 쉽지 않다. 꼭 선거가 아니라도 두고두고 논의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점만 확인해 놓자.

 

지방자치에 심드렁한 또 다른 이유는 ‘효과’를 확신하지 못해서다. 20년 넘게 계속해 온 이 제도가 과연 지역 주민의 삶을 더 좋게 만들었는가? 어떤 면에서도 후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 지역 토호만 살찌운다는 비판이 내내 매서웠다.

이렇게 된 이유 또한 한두 가지로 줄이기는 어렵겠지만, 선거가 코앞이니 관계된 것 한 가지만 짚는다. 다름 아니라 ‘참여’ 없는 지방 자치가 문제다. 그런 점에서 2할 자치는 재정과 업무가 아니라 차라리 20퍼센트 참여를 뜻한다.

주민 대표인 단체장과 의원을 선출하는 투표를 앞두고 또 참여를 말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 모두 대의 민주제는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다. 주민의 직접 참여는 대의민주제를 견제하고 또한 강화한다. 대의제의 선거와 직접 참여를 같이 논의하는 이유다.

 

주민 참여라고 뭉뚱그리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도 많다. 민원을 내거나 군청이나 시청 홈 페이지에 불만을 한 줄 쓰는 것도 참여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주민소환처럼 아주 적극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민원, 홈페이지, 주민소환, 그 어느 쪽도 흡족하지 않다. 수준이나 방식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얼마나 권력을 행사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제도화’ 되어 있는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권한을 가지게 되는지 제도로 만들어져 있지 않는 한, 변덕과 임시변통을 면하기 어렵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결정에 그마저 실질적 권한도 없으면, 기껏해야 정당화를 위한 동원에 그친다.

지금까지 주민의 참여란 대개 이랬고, 그동안의 자치는 ‘2할’도 과분하다(‘할’이란 표현을 피하고 싶지만 관용어처럼 되어 있어 그대로 쓴다). 참여는 일부가 독점했고 대의제를 핑계 삼아 오히려 참여를 가로막는 구실을 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진주의료원 폐원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도청과 도의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지역과 주민은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어떤 제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원론을 확인한다. 참여는 단지 여론이나 투표로 해당 주민의 의견을 묻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참여는 곧 민주주의의 실천 방식이고, 이는 당연히 ‘숙의’(심의나 숙고로 불러도 좋다)를 전제로 한다.

주민들이 충분히 알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공공의 가치 실현을 위해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합의는 실질적 ‘권력’을 가져야 마땅하다. 뒷받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의 참여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 이해관계와 갈등을 봉합하는 도구 이상을 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런 데에는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 실천 경험이 짧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배우고 실천하는 경험이 없는데 저절로 성숙한 민주주의는 없다. 동네 반상회 정도가 최고의 경험이라면 주민의 직접 참여는 더 많은 학습과 시도, 경험이 쌓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생명을 위한 과제 – 건강과 보건, 안전 – 는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고 또 가능한 좋은 조건을 갖춘 대표적 실험장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촉발된 안전 문제를 보라. 모든 전문가가 한 목소리로 지역 중심의 대책을 말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맞춤한 교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특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일을 주목하자.

 

첫째, 지자체의 예산 편성. 모두 아는 대로 이미 주민 참여예산제가 운영 중이다. 이 정도라도 중요한 시도지만,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다(예를 들어 서울시의 참여예산: 내용 바로가기).

한 걸음 진전된 주민의 직접 참여가 필요하다. 비록 2할 자치지만, 그래도 지방재정은 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의견을 내며 감시하자.

예산 배분(곧 자원의 배분이다)을 기회로 삼아 지역의 민주주의는 더 튼튼하게 커 나갈 수 있다. 지금 모두가 안전을 말하지만, 정말 그런지 두 눈 부릅떠야 한다. 예산이 판단의 좋은 잣대다.

 

둘째, 공공병원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운영을 주민이 직접 감독해야 한다. 진주의료원과 같은 지방의료원은 광역자치단체가 관장한다. 찾아보면 안전을 담당하는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이들이 도대체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공식적으로 지방의료원의 운영을 결정하는 이사회에는 누가 참여할까. 또 이들은 어떻게 뽑을까. 무슨 논의를 하고, 여기에 주민들의 시각과 의견은 반영될 수 있을까.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도 실천되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세 번째는 각 시군구의 공공조직(예를 들어 보건소)을 더 높은 정도로 ‘통제’하는 일. 행정기관에도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크다. 예를 들어 ‘지역보건법’에는 아예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시장·군수·구청장(자치구의 구청장에 한한다)은 지역주민, 보건의료관련기관·단체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당해 시·군·구의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한 후 당해 시·군·구의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앞에서 쓴 말로 하자면, 주민 참여가 제도로 보장된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실제 참여도 형식적이고 부분적이다. 지역의 계획이 주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

 

당장 할 일은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간접 효과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다름 아니라 후보자들이 약속을 하게 만드는 것. 어느 쪽이든 앞서 말한 목록 정도라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목록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선거는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기회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투표 기준 가운데 한 가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제도화된 주민 참여’를 약속하는 사람. 만약 명시적이지 않으면 차선이라도 좋다. 그에 가깝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개인과 정치 세력.

물론 이것이 유일한 기준일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는 단지 건강이나 안전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한 필요 아니던가. 남은 기간이라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직접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요구해야 한다.

최근 나온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이것이 ‘국가를 되찾’는 한 가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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