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영리병원에서 월드컵까지 – 민주주의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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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의료법인의 부대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영리 자법인의 설립을 허용하는 조치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본 계획을 발표한 것이 작년 말이다. 후속 조치는 지난 6월 10일 나왔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자법인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이다 (문창극씨를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과 같은 날이다).

당연히(!) 거의 모든 당사자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나 약사회와 같은 의료인 단체, 환자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가 한 목소리다. 한 군데, 병원협회만 묵묵부답인 것으로 봐서 그 생각을 알 만하다(물론 그 이해관계도).

 

우리는 정부가 당초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이런 형태의 영리병원 추진을 일관되게 반대했다(2013년 12월 16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몇몇 의료자본은 살찌우겠지만 서민에게는 고통과 불평등을 안긴다는 것이 핵심 이유다. 한 마디로 부도덕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정책이다.

그 때 이후로 무엇이 왜 문제인지는 바뀐 것이 없다. 정부가 여러 말로 얼버무리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판단을 바꿀 만한 아무런 상황 변화가 없으니 달리 설명을 보탤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든 영리병원 문제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에 맞닿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선 본질적인 의문 한 가지. 이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가? 정책 결정과 집행의 민주주의를 묻는다.

 

국민투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다수 의견은 분명하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의료인이나 전문가들처럼 비교적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반대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행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행정이 하루 이틀 일이던가. 게다가 공무원 스스로도 자조할 정도로 권위주의가 압도하는 정책 환경이다.

이 정부 들어서는 사정이 더 나빠졌다. 관료주의에다 이 정부의 시대착오적 권위주의까지 더해졌다. 모두 위만 쳐다보는데다 최소한의 민주적 과정조차 작동하지 않는다 (하루 아침에 해경을 해체하는 것을 보라).

문제의 원인이 구조적이라는 것이 더욱 고민스럽다. 5년에 한번 선거로 모든 책임이 끝나고 (그나마 어설프게), 공무원은 그 정도 책임과도 무관하다. 냉정하게 보면, 관료 조직이 보통 사람들의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압력이 전혀 없다.

 

다음으로, 민주주의는 단지 행정부를 넘어 ‘국가’ 체제의 문제다. 이번 영리병원의 경우, 행정부는 시행규칙을 고치고 가이드라인으로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정부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국회에 갈 것이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복잡한 법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건 문제가 많다. 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을 바꾸는 데에 입법부는 끼어들지 말라? 적어도 민주주의의 원칙은 아니다.

법이 아니라 ‘행정명령’에 의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장 미시적으로는 행정비용을 줄이려는 기술이다. 보통 숱한 경험을 한 행정 관료가 일을 쉽게 추진하느라 이런 꾀를 낸다.

 

정치적 의미는 이보다 좀 더 심각하다. 입법부를 통한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껍데기로 만들려는 의도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탈정치화’하겠다는 것이고, 그만큼 민주주의를 우습게 안다는 한 가지 증거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보기에 따라서는 법 규범을 우회하려는 이번 시도가 갖는 의미가 자못 심각하다. 조르주 아감벤이 <예외상태>에서 말하는 법 규범의 무력화는 곧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하나다.

행정명령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법 규범(이번 경우는 의료법)은 ‘예외상태’를 허용하고 무력화된다. 이제 부대사업의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영리 자법인 허용은 의료법인의 범위를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외상태는 조만간 더 이상 예외적 조치가 아닌 것으로 바뀐다. 이른바 예외 상태의 규칙화. 그리고 새로운 ‘법의 발명’. 그 이후에는 배제 메커니즘을 주목해야 한다.

“예외 상태의 규칙화란 바로 집행 권력이 기존의 법질서를 중지시키고, 정치체제에 통합시킬 수 없는 시민, 비시민을 ‘법의 힘’을 지닌 정부 명령에 의해 법질서 외부로 배제하는 통치 형태”를 말한다 (사토 요시유키, <신자유주의와 권력>, 김상운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104쪽).

 

또 다른 과제는 이런 체제와 ‘통치성’에 대항하는 사회적 힘을 기르는 문제다. 개별적으로 행정을 비판하고 정치를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리 의료의 흐름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일은 어쩔 것인가.

차원은 다르지만 이 또한 민주주의와 밀접하다. 참여가 여전히 소극적 차원이라면, 통제와 ‘주체화’야말로 신자유주의의 통치(각 사람에게 내면화된 것까지)에 맞서는 핵심 원리가 아닐까. 영리화의 시도가 겉모양만 바꾸면서 거듭될 것이라면, 이를 빼고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

 

조금 뜬금없지만, 여기서 월드컵을 불러낼 만하다. 바로 포르투 알레그리라는 도시 때문이다. 오늘(23일) 새벽,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알제리의 경기를 보느라 이 낯선 도시의 이름을 몇 번이나 들었을 터.

월드컵 개최는 이번이지만, 사실 이곳은 그동안 여러 번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한 도시로 유명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즉 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모임이라는 사실까지 떠올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유명한 것으로 치면 또 한 가지. 이 도시는 브라질 참여 민주주의의 발원지라 해야 마땅하다. 한국에서도 시도하는 참여예산제가 최초로 시행된 곳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열린 데다 가장 여러 차례 개최된 것, 그리고 인권 도시로 선정된 것,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다.

참여예산제 만큼은 아니지만 자매 제도라 할 ‘민중건강평의회’도 빠지지 않는다 (2012년 12월 27일 서리풀 논평 참조). 이 구조를 통해 시민들은 지역의 건강과 보건을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상당 부분 스스로 결정한다. 처음에는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브라질 전체에서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실천 방식이다.

 

월드컵에서 영리병원까지, 민주주의는 이렇게 이어진다. 만약 우리에게 포르투 알레그리나 브라질과 같은 제도나 구조, 경험이 있었다면, 건강평의회와 같은 민주적 제도가 있다면, 오늘 영리병원 논의는 어떻게 될까.

물론 그들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와 맥락도 많이 다르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점에서는 좀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참여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줄이고 삶을 좋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무심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국적 맥락에서 그리고 행정과 정치의 기능 ‘부전’ 속에서 민중건강평의회라는 모델은 새로운 상상을 자극한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우리에게 묻는다. 특히 길게 이어질 ‘장기 지속(longue duree)’의 구조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논평을 작성하는 이 시각은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이니 한국과 알제리 경기의 승패를 알 수 없다. 혹 결과가 어떤가에 따라 이 도시가 한국인이 오래 기억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포르투 알레그리를 위한 한 가지 부탁. 이제 축구와 월드컵에 보태서 영리병원과 신자유주의, 민주주의를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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