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군(軍)과 건강은 관련이 깊다. 우리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성(현재는 후생노동성이다)이 육군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군대와 건강의 관련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938년 일본 육군은 건강한 장병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건민건병정책(健民健兵政策)’을 시작했고 이를 위해 새로 후생성을 만들었다. 제국주의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강조한 이유를 이만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예도 드물다.
군대가 장병의 건강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은 전쟁 때에 더하다. 그들의 건강은 전투력과 직결되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전쟁이 장병의 건강과 질병에 따라 결과가 바뀌었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유명해진 고엽제 피해나 이라크와 아프칸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겪는다는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는 누구나 아는 증거들이다.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군대가 발진티푸스와 참호열로 수많은 군인을 잃은 것도 유명하다.
지금 여러 나라의 군대와 전쟁에서 건강 문제를 이끌어내는 사정이 자못 착잡하다. 6월 21일 동부전선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 이야기를 해야 해서다. 세월호 참사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이의 꽃다운 목숨이 하릴없이 스러졌다.
지금 다들 대책과 앞으로의 과제를 말한다. 문제의 심각성이나 구조를 볼 때 정치적, 사회적 측면을 포함하여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세한 진단과 분석은 이 논평이 다룰 범위를 넘는다.
다만 한 가지, 원인과 처방을 개인과 예외에서 찾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든 이번 총기 사건이든, 몇몇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행동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건강과 의료 문제를 중심으로 특별히 두 가지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응급의료가 그 중 하나이고, 장병들의 건강관리가 또 다른 한 가지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사병들과 그 가족들이 믿고 안심하기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 바탕을 이루는 체계가 아주 부실하다.
먼저 응급의료부터 보자. 부상자들이 아직 치료 중이고 수사도 늦어지고 있으니 모든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벌써부터 유가족 대책위를 중심으로 응급치료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과다 출혈 등 다른 원인(피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유족들이 제기한 의문을 터무니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6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회의에서 공개된 믿기 어려운 사실이 이런 판단의 근거다. 이번에 태백산맥을 넘어가는데 필요한 헬기를 지원받느라 4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의무장교나 의무병 등의 인력이나 대처 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고가 난 곳이 특수한 지역이라니 사정은 더 나빴을 것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해 수행된 군 의료관리체계 연구의 보고서에 쓰인 한 대목을 보자.
“육군 전방 OO사단 GOP 대대와 병사들이 아플 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OO사단 의무대까지의 이동거리는 56km이고, 이동시간은 120분이다. 게다가 겨울에 도로가 얼거나 눈이 많이 오게 되면 차량 운행이 제한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군 의료관리체계에 대한 인권상황 실태조사. xvii쪽)
그나마 이 보고서는 평상시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이번 상황에서 응급 처치를 위해 누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당초 이런 상황에 대비해 작동할 만한 어떤 체계가 준비되어 있었을까.
다음으로 병사들의 건강관리 체계와 방식, 그리고 실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여기서 ‘관리’란 문제의 예방과 발견, 대응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이번 사건이 사건인지라 사병들의 심리적 문제가 유난히 강조되었지만, 건강 문제는 당연히 심리적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심신의 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조건과도 떨어질 수 없다.
몇 가지 드러난 일만 하더라도 병사들의 건강 조건, 그리고 건강 관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번에 특히 관심을 끈 이른바 ‘관심사병’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아마도 심리와 행동의 위험(리스크)을 가진 대상자를 선별, 관리하는 기준이자 방식인 모양이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 기준이고 그렇게 하면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그 과학적 ‘근거’를 잘 모른다. 나름 고육지책인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국회 보고에서 국방부 장관은 전군의 관심병사 비율이 대략 20퍼센트에 이른다고 말했다. 어떤 집단이든 ‘따로’ 관리해야 할 구성원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기준이나 내용은 둘째 치고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무슨 관리가 되기나 할까. 이제 선별 기준이나 그 이후의 부작용, 해당자들을 관리하는 방식 등이 또 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벌써부터 관심사병을 판별하는 인성검사와 기준을 보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검토해야 할 일은 그 이상이다. 현재의 징병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때, 기준을 바꾸고 대상자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심신의 건강 모두와 그 관리 방식, 그를 위한 새로운 체계를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응급의료와 건강 관리를 말했지만, 두 가지를 관통하는 과제는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단편적인 프로그램을 임기응변으로 바꾼다고 달라질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그것도 군 스스로 비슷한 계획과 제안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비교적 최근의 일만 하더라도 두세 차례나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 응급의료나 건강관리가 빠질 리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국방부는 ‘군 의무발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군 의무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민군 의료협력체계를 구성하고 국군중앙의료원을 설립하며 군의 의무장비와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 등이 포함되었다.
2013년까지 약 1조 3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예상했지만 이후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비공식적으로 떠돌았던 이야기로, 그리고 그 다음에 다시 비슷한 계획이 세워졌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2011년 ‘군의료체계 보강을 위한 개선과제’에 이어 2013년 국방부는 다시 새로운 종합계획을 세웠다(관련 기사). 이에 작용한 동력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1년 육군훈련소 훈련병 사망사건을 계기로 군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진 결과다.
‘2013~2017 군 보건의료발전계획’은 포함된 열 가지 과제만 보면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이번 총기사건과 관계된 것만 하더라도 그렇다. 국군 중상외상센터 건립, 의료인력 확충 및 운영개선, 의무후송체계 발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의 결과를 따지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총기 사고를 계기로 다시 비슷한 문제 제기와 대책이 요란하다. 이번에는 작년에 만든 계획도 있으니 당장 어떤 대책을 새로 내놓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고가 생기면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발표하고 이후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이미 세워놓은 계획이라면 이번 사건을 포함한 새로운 요구(새로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발견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를 반영해야 한다. 계획도 계획이지만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그 어떤 이유와 구실도 앞설 수 없다.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이 땅의 젊은이, 국가는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계획을 위한 계획으로 그리고 임시방편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냥 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는 질문과 실천적 모색이 더욱 절실해졌다. 과거로부터 배운 일을 반성하면 더욱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