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에볼라 의료진 파견을 환영한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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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 시에라리온의 최고 에볼라 전문가 세이크 우마르 칸이 맞서 싸우던 병에 희생당했다. 겨우 서른아홉의 나이였던 그가 백 명 넘게 에볼라 환자를 치료한 후였다. 전문가니 만큼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그 자신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는 막지 못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의료진이 겪는 위험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0월 17일까지 라이베리아에서만 200명의 보건의료인력이 감염되었고 96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어디 그 나라에만 그럴까. 훨씬 더 많이 보도된 대로, 미국과 스페인의 의사, 간호사, 신부에까지 번졌다.

이제 우리도 비슷한 문제를 고민해야 하게 생겼다. 대통령이 아셈 정상회의에 참석해 에볼라가 유행하는 나라에 의료진을 파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에이즈, 사스, 조류독감 치료를 둘러싸고 비슷한 사정이 있었지만 이번에 차원이 다르다. 한국 안의 일이 아니고, 제대로 아는 것은 더 적으며, 위험은 훨씬 크다.

 

우리는 약 2개월 전 <서리풀 논평>을 통해 한국 사회가 에볼라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 협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국내 전파를 막는 것뿐 아니라 국제적 활동까지 에볼라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주장에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큰 원칙에 찬성하고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그대로 동의하기 어려운 일 때문에 걱정이 많다.

 

우선 국제 차원의 노력에 동참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국제 협력의 필요성은 지난 <서리풀 논평>에서 충분히 제시했다. 국지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과제이고 협력의 필요성은 그때와 비교해도 더 커졌다.

현대 국가가 흔히 겪는 국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어떤 지역의 재해복구를 지원하고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누구도 시혜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국가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구성원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받아들인다.

국경을 넘어 범위를 넓혀도 기본 원칙은 비슷하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번성시키는 것은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과 국가의 공통 의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책임을 나누고 같이 져야 한다. 거리가 멀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군대와 비교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으나, 그동안 유엔평화유지군에 참여한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유엔이 이미 ‘보건유지군’을 만들겠다고 했으니 그리 다른 일도 아닐지 모른다).

20년 이상 소말리아, 앙골라, 동티모르 등의 나라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속으로는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국익, 경제적 이익, 과거에 대한 보답, 군의 경험 축적과 같은 명분만 앞세울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져야 할 의무, 즉 평화 유지를 위해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 기반이다.

이번 의료인력 파견도 이유, 명분, 근거가 다르지 않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수행하는 일이다. 따라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거나, 전염병 관리의 경험을 축적한다거나, 또는 경제적 이익이 뒤따를 것이라든가, 이런 이유는 제발 말하지 말자.

 

참여가 의무임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다음 일이다. 우선 확인 할 것 한 가지. 여러 나라가 협력해서 해결하는 일을 책임지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가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자원자를 중심으로 파견 인력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기사 바로가기). 정부의 방침은 20일 결정하기로 했다니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바로가기), 앞서 나온 그런 소식이 오보이길 바란다. 이건 자원 봉사와 선의, 자발성의 문제가 아니다.

민간에 있는 인력이 참여하고 지원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보완이고 협조일 뿐이다. 어떤 민간협회나 비영리기구(NGO)가 하는 일이 될 수 없다. 판단 기준은 수가 많고 적고가 아니며, 실력과 경험이 있고 없음도 아니다. 의무 주체가 국가이며, 마땅히 국가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안은 군의관을 비롯한 정부 소속의 의료 인력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주체라는 점에서 그렇지만, 준비와 훈련, 잘 조정된 현지 활동과 관리, 여러 가지 사후 조치 등에서도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다만, 국가 인력의 범위 안에서는 지원을 받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해서 다른 민간 인력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면, 이들도 국가 인력과 같은 신분과 조치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국제 협력에 참여하는 것의 당위성,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국가의 책임을 주장했다. 그런데 인력 파견을 결정하기 전에 검토해야 할 것 한 가지가 빠졌다. 마땅히 참여와 협력의 의무를 다하고자 할 때, 인력 파견이라는 방법이 최선인가?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은 현지에 파견될 인력의 감염을 걱정한다. 만에 하나 불행하게도 한국 의료진이 감염되었을 때 한국으로 안전하게 후송할 수 있을까. 금방 생각해도, 에어 앰뷸런스와 같은 기초적인 대비도 없으니 장담할 수 없다. 혹 귀국 후 방역과 치료가 필요하면 그럴 역량은 되는가. 당사자의 안위도 걱정이지만, 오히려 에볼라를 국내에 들여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인력 파견에 반대하는 현실적 이유다.

 

이건 내부 관점이고, 국제 협력의 관점에서는 더 중요한 검토 사항이 있다. 어느 정도나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가치와 의의를 묻는 일이다. 그냥 해보는 것이 아니면 한국의 노력 그 어떤 것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우선 크기의 문제.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의 계획은 의료인력을 열 명쯤 파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9월에 서아프카에 3천 명 이상의 군인을 파견하기로 했고, 쿠바와 중국은 시에라리온에 각각 165명과 174명의 의사를 보냈다고 한다(월스트리트저널 기사 바로가기). 이런 상황에서 단지 열 명 규모로 보낸다면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혹 상징적이거나 명목상 효과라도 충분한 것인가.

여러 나라가 같이 하는 일에서 흔히 나타나는 ‘원조 부조화’도 유념해야 한다. 부조화란 각 나라가 따로따로 일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전체 효과를 확 줄인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 미국과 영국, 쿠바가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은 어떤 고유한 역할을 하려는 것인가? 유엔과 세계보건기구와는 어떤 협력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력과 역량은 어떤가. 말과 지리, 현지 사정은 그렇다 치자. 한국의 의료진은 에볼라 환자를 다루어 본 경험이 없다. 누구를 뽑아 어떤 준비를 얼마나 오래 한 다음에 현지에 보낼 것인가? 현지에는 무슨 일을 어디에서 누구와 같이 할 수 있는가? 장비와 물자는 충분한가? 감염이 유행하는 현지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느 것을 보더라도 자칫 의욕만 가지고는 ‘민폐’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서아프리카 나라와 그곳의 활동을 지원해서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그 원칙에 맞추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원과 협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은 지금 당장은 찬동하기 어렵다. 어떤 준비가 어떻게 갖추어졌는지를 보고 그때 비로소 판단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가 안 된다면 끝까지 반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얼마나 시간이 허락될지 모르지만(그렇다고 몇 달씩 늦추어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상한 의도로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유엔이 에볼라 바이러스 대처 기금으로 10억 달러(약 1조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모인 돈은 목표액의 ‘1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경향신문 기사 바로가기 ).

한국 정부는 초기에 60만 달러를 지원했고 추가로 500만 달러를 내놓기로 약속했다. 이것이 얼마나 많고 충분한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간접적으로 비교할 거리는 있다. 일본은 4천만 달러, 노르웨이는 3천 9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한다. 베네수엘라 같은 곳도 500만 달러를 내놓았고, 빌 게이트 재단이 지원하는 금액만 5천만 달러에 이른다.

 

인류가 직면한 위협과 도전에 같이 대처하는 것은 모든 나라의 마땅한 의무임을 다시 확인한다. 그 의무는 흔히 정치적이지만, 또한 도덕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논의를 통해 한국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를 분명히 정립하면 좋겠다.

의무를 다하는 데에는 실력과 조건이 필요하지만 상황은 낙관할 수 없다. 당장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한편, 지금부터라도 길게 보고 역량과 기반을 갖추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 길에 이번 ‘사태’가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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