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년 간, 중국 의사의 폭력 피해 문제를 다룬 글들이 국제적 의학 학술지에 잇따라 실렸다. <랜싯> 같은 학술지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논설을 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여러 편의 글들을 종합해보면 상황은 충격적이다. 2000년 이래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매년 11%씩 증가했다고 한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사를 칼로 찌르고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얼굴에 강산을 퍼붓는 등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병원에 불을 질러 한꺼번에 다섯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친 사건도 있었다. 올해 2월에만 해도, 수술결과에 불만인 환자가 담당 이비인후과 의사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내리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던 일반 외과 의사의 목을 칼로 난도질한 사건이 일어났다. 3월에는 남성 두 명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맞아 의사가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사례들의 목록은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물론 의사만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의료진에 대한 공격도 잇따르고 있다. 2012년에 실시된, 30개 지역 316개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8천 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가 언어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약 40%는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심각하게 전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의료인들의 집회가 열리고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지면서, 중국 정부는 의료기관에서 벌어진 폭력을 엄벌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필요한 조치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사실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의료진들은 폭력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시간을 다투거나 갈등 상황이 일어나기 쉬운 응급실은 폭력 피해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의사 살해라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른 경우는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연구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환자-의사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환자들이 의사를 신뢰하지 않다보니, 치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를 모두 의료진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여러 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그 이면에는 급속한 의료상업화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놓여 있다. 1980년과 1993년 이래 농촌과 도시에서 이루어진 중국 의료개혁의 본질은 상업화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병원을 정부가 직접 운영하지만 공적 투자는 매우 취약하고, 오히려 수익을 병원 평가의 중요한 잣대로 삼고 있다. 당연히 의사들은 실적압박에 시달린다. 시간 당 진료해야 하는 환자 수도 늘어나고, 불필요한 검사나 의약품 처방도 늘어난다. 의사들의 기본 급여가 낮다보니 성과급에 연연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심지어 뇌물 유혹에도 쉽게 넘어간다.
반면 의료보장 제도는 매우 취약하다. 공공의료보험이 있지만 외래 진료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70~90%나 된다. 입원의 경우,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까지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아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도 많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1인 당 총 의료비는 360위안에서 1,490위안으로 늘어났고 본인 부담금도 세 배나 급증했다. 끔찍한 의사 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별다른 범죄 기록이 없는 가난한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큰돈을 들여 치료를 받았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자 그런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이나 치료 경과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절대 부족하다. 여기에 의료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제도도 미흡하다. 모든 책임은 병원이나 의료진이 져야 하며, 정식 절차를 밟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길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의 불만은 눈앞의 의료진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를 악용하여 병원과 의료진을 협박해 보상금을 약탈하는 ‘Yi Nao’라는 전문 폭력배까지 급성장 중이다. 잘못된 의학상식에, 의료사고에 대한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부적절한 행태 또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중국의 문제점들은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한국에도 모두 낯익은 것들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의사들’에 대한 반감은 한국에서도 공공연하다. 그렇다고 조만간 한국에서도 이렇게 심각한 의사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각성은 덜하다 할지라도, 환자-의사 관계의 악화가 가져올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한국의 의사 사회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상황은 급속한 의료상업화와 불충분한 공적 투자, 사회보장이 어떤 파국적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국가가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병원이 돈벌이에 몰두할 때, 시민들로부터 비난 받으며 심지어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은 일선의 의료진이다.
의료서비스 상업화에서 이득을 얻는 집단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로부터 비롯된 시민들의 불신과 뒤틀어진 환자-의사 관계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한국의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서비스 영리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할 이유이다.
상임연구원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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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활용된 참고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 Yao S, Zeng Q, Peng M, et al. Stop violence against medical workers in China. J Thorac Dis 2014;6(6):E141-E145
- editorial. Violence against doctors: Why China? Why now? What next? Lancet 2014;383:1013
- Violence against doctors in China (letter) Lancet 2014;384:744-745 – ① Zhao L, Zhang X-Y, Bai G-Y, Wang Y-G. ② Jiang Y, Ying X, Kane S, Mukhopadhyay M, Qian X ③ Xu W ④ Yueju L.
- Hesketh T, Wu D, Mao L, Ma N. Violence against doctors in China. BMJ 2012;345:e5730
- Wang X-Q, Wang X-T, Zheng J-J. How to end violence against doctors in China. Lancet 2012;380:647
- editorial. Ending violence against doctors in china. Lancet 2012;379:1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