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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세상읽기] 비정규 노동의 반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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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바로가기

소문난 영화 <카트>를 아직 못 봤다. 다들 아는 대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당해고를 다룬 영화다. 몇 번이나 별렀지만 볼 수 있는 데가 워낙 드물다. 어디든 하루 한두 번밖에 기회가 없는데다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다.처음 생각보다는 관객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상영관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영화가 주변이고 소수란 뜻이 아닌가. 대통령 공약에 포함될 정도면 뜨겁고 민감한 주제인데도 그렇다. 이제라도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으면 싶다.보란 듯이 역진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더욱 마음이 상한다. 이 영화가 비정규 노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지만 그뿐이다. 대통령과 고용노동부까지 나서서 정규직 보호가 지나치다고 새로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는 부인했지만 이름도 이상한 중규직이니 뭐니 해서 전쟁이라도 치를 참인가.내게는 꼭 이 영화가 아니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제법 오랜 동안 건강 불평등에 관심을 둔다고 해온 터라 핑계를 만들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불평등 현상이 아닌가. 신체와 정신 건강 모두를 해치는 사회적 원인이라는 것, 그리고 정규직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의 건강이 왜 더 나쁜지 궁금해한다. 알 듯 말 듯 하다는 것이다. 첫째는 삶의 조건이 험한 탓이 크다. 임금이 적고 생활 조건이 열악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서는 정규직과의 차이가 더 크다. 먹는 것, 주거, 노동 강도와 환경, 잠, 인간관계 따위가 모두 작용한다.또 중요한 원인으로는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다. 고용 불안정으로 인한 불안, 차별, 사용자와의 심리적 갈등, 불공정과 부정의에 대한 분노, 무력감, 낮은 자존감. 이토록 건조한 표현이 민망하지만 스트레스의 원인이자 결국 건강을 해치는 이유다.연구가 충분치 않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다. 그래도 요즘 들어 비정규직의 스트레스를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은 큰 진전이라 생각한다. 임금과 물질적 조건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해답을 얻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정규 노동자가 건강을 잃지 않으려면 두 가지 모두 괜찮아야 한다는 뜻이다.내친김에 말하면 이런 ‘리스크’들은 건강에 영향을 줘야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에 따르는 차별, 불안정과 불안,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절망, 무력감과 자기 비하는 어떤가. 그 결과에 무관하게 삶의 본질적 가치와 관련된 것들이다. 건강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원인이 이럴진대 경제와 물질에 갇혀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이 자연스럽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오랜 약속조차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이유다. 노동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노동하는 사람의 보람, 희망, 자긍심과 자기 긍정의 원천은 따로 있지 않았던가. 결국 비정규 노동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건강의 관점에서, 그리고 노동하는 삶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주장한다. 자발적인 경우를 빼고는 비정규 노동을 줄여야 한다. 정규직 보호를 풀겠다는 정책도 지금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사회통합과 삶의 질을 말하면서도 그런다면 염치없는 짓이다.<카트>를 봤다는 동료에게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우울하다는 한마디로 입을 막았다. 같이 있던 또 한 사람은 그 때문에 일부러 보고 싶지는 않다고 거든다. 비정규 노동의 반인간성이 이렇게 가까운가 싶다. 정면으로 보기 위해서도 오는 주말에는 시간을 맞추어야 하겠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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