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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세상읽기]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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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 익숙한 제목은 전우익 선생이 쓴 책에서 따왔다. 새해 첫날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텐데 채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다. 아직 지난해의 아픔과 무력감에 붙들려 있는 것이 크다. 선생의 힘을 빌리려 한다.

그의 말대로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고 생각하면 조금 쉬워진다. 나는 올해 우리 사회가 좀더 안전하고 누구나 건강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가난과 불평등이 줄고 모두의 보람과 긍지가 고루 커지기를 희망한다. 그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작은 결심 한 가지는 몸을 더 움직이자는 것이다. 몸이 노동과 운동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해마다 다시 시도했지만 늘 모자랐다. 이번에는 꼭 다르리라 마음을 만든다. 한 정거장 미리 내려 걸을까, 가까운 헬스장이라도 찾아볼까, 이리저리 궁리하는 중이다.그러나 고백하건대 아직 자신이 없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요 며칠만큼 많이 쓰일 때가 있을까. 어떤 통계로는 건강한 습관을 들이자고 계획해 봐야 절반이 삼일을 못 채운다고 한다. 이번에도 흐지부지될까 걱정이다.절반의 실패를 예상하라니 벌써 맥이 빠진다. 그래도, 혹시 약속을 깨더라도 자책하지 않을 작정이다. 평균이 ‘정상으로’ 실패하는 것이면 오히려 남 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건강의 개인주의에 저항할 참이다.

벌써부터 비슷하게 고민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습관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못하기까지는 여건과 환경의 책임도 무겁다. 적당한 장소나 시설도 없는데 근면과 성실만으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긴 노동시간과 강도는 그대론데 꼬박꼬박 때를 맞추라면 비현실적이고 가혹하다.개인만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 숨쉬고 먹고 일하는 가운데 숨은 위험만 해도 그렇다. 암을 피하려면 검진뿐 아니라 발암물질을 통제해야 한다. 금주와 금연에다 담배와 알코올 규제를 추가해야 맞다.위험과 변화 모두를 혼자 어찌할 수 없다면 새해 계획도 나를 넘는 것이 당연한 일. 일터에서 더 조심하자는 덕담으로는 모자란다. 더 안전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고 위험을 없애자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는 ‘사회적’ 각오도 덧붙여야 한다. 나도 새해에는 집 가까이 걸을 만한 산책로라도 만들자고 요구해야 하나 싶다.

위험과 실천을 확장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에게 배우기로는, 이렇게 하면 원인을 문제삼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과관계의 앞뒤 가운데 원인은 무시하고 결과만 ‘통치’한다고 지적했다.건강의 결과는 온전히 혼자의 몫이지만 원인에는 사회가 분담할 것이 많다. 그렇지만 체제는 개인을 점검하고 닦달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듯하다. 그러면 원인도 전부 내 안에 있는 것으로 바뀐다. 오늘날 오로지 흡연자를 책망하고 절주의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다.

어디 건강만 그럴까. 토익 점수부터 부자 되기에 이르기까지 새해는 오롯이 나의 노고와 갱신을 다짐받는 때다. 모든 결과를 개인 탓으로 돌리고 내면화시키는 시대. 원인에 눈을 감고 각오와 자학을 되풀이하는 것은 허망하다. 오늘 아침 첫걸음으로 새롭고 넓은 다짐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실패를 줄이는 결심이다.전우익 선생의 말로 다시 위안과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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