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낙하산 기업의 노동자가 더 많이 죽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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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정경 유착과 노동자 사망률

 

유원섭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비상임연구원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선임됐던 김용준 전직 헌법재판소장과 안대희 전직 대법관이 인사 청문회를 거치며 결국 낙마했었다.

인사 청문회에서 크게 문제되었던 내용은 공통적으로 공직 퇴임 후 법률사무소 취업 및 그와 관련된 전관예우 특혜 문제 등이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하정우 회장은 “대법관이 변호사 전관예우의 핵심”이라며 퇴임한 전직 대법관에게 변호사 개업 신고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여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헌법재판소장이나 대법관 이외 다른 공무원의 경우에도 ‘공직자윤리법’은 일정 기준 이상의 고위 공무원으로 하여금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하였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일정 범위의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공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 관련 기관에 취업하게 되면 해당 기관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익에 배치되는 부정적 영향(또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로써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기업의 관점에서는 규제가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기업 활동의 보장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기업 활동과 가장 갈등의 소지가 많은 것을 꼽으라면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 환경일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 극대화가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충돌했던 경험은 우리 사회에 이미 충분히 많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속에서도 높은 경제 성장과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거듭하며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이러한 중국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정치적 유착(정치적 연관, political connection)’ 여부가 노동자의 더 높은 사망률과 연관성이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레이먼드 피스먼과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왕(Yongxiang Wang)은 중국 상장 기업 276개소(석탄 광업, 원유 및 천연가스 채굴업, 철광업, 비철 금속 광역, 건설업, 원유 정제 처리업, 철강 제련·압형 제조업, 비철 금속 제련·압형 제조업 기업)를 대상으로 2008년에서 2011년까지의 재해사고, 노동자 사망률 자료와 해당 기업의 ‘정치적 유착’ 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2013년에 발표하였다.

저자들은 기업의 ‘정치적 유착’이 안전하지 않은 작업 환경을 초래(또는 방치)하고 이것이 사업장 재해와 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하였으며 실증적인 근거를 통해 이러한 기전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기업의 ‘정치적 유착’ 여부는 “해당 기업의 대표 또는 고위 임원 중 한 명 이상이 기초자치단체의 시장 또는 부시장 재임 경력이 있거나 직할시·성 및 중앙 정부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 경험이 있는 경우”로 정의하였으며, 조사 대상 기업의 재해사고, 노동자 사망 관련 자료 조사를 위해 공식적인 통계 자료 이외 기업이 발행하는 각종 보고서 자료도 수집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근로자 사망률은 ‘정치적 유착’이 있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무려 평균 5배 더 높았고, 사망률을 분석한 첫 해인 2008년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률 차이는 대체로 더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 정치적 유착(정치적 연관) 여부에 따른 안전 보건 규제 적용 산업의 노동자 사망률(2008~2011년). 피스먼과 왕의 2012년 논문에서 인용했다. ⓒ유원섭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저자들은 기업이 전직 고위 공무원을 기업의 대표나 고위 임원으로 임명함으로써 광산업 및 화학물질 제조업과 같이 유해 산업 분야에서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수십 개의 관공서 인·허가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으며, 관련 지방 관료에게 기업의 지분을 제공함으로써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일단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는 기업이 안전 보건을 위반하더라도 그로 인해 기업이 문을 닫게 되는 가능성을 낮추며, 심지어 보다 강력한 정치적 연관을 통해 기업 감시를 전혀 실시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저자들은 기업의 정치적 유착과 함께 ‘사망 할당량(death quota)’ 정책이 노동자 사망률에 끼친 영향도 함께 분석하였다. ‘사망 할당량’이란 2004년 이후 중국 중앙 정부가 산업 안전의 성과 향상을 위해 각 성 및 직할시에 노동자 사망자 수를 할당하고 각 성과 직할시는 다시 기초자치단체에 사망자 수를 할당하는 제도이다.

중앙 정부의 ‘사망 할당량’ 기준 충족을 위해 일부 성과 해당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안전 없이는 승진도 없다(no safety, no promotion)”는 정책을 채택하고 ‘사망 할당량’을 충족시켜야만 안전 보건 관련 관료와 지방 관료의 승진을 허용하였다. 2005년 광둥성이 가장 먼저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2011년 중반까지 전체 31개 성 및 직할시 중 모두 11개가 채택하였다.

분석 결과, 해당 정책을 채택한 성 또는 직할시의 근로자 사망률은 이를 채택하지 않은 지역에 비해 더 낮았으며, 정치적 유착이 있는 기업의 경우에도 사망률 감소 효과는 동일하게 발생하였다. 이는 사업장 안전을 승진이라는 강력한 유인 동기와 결부시킨 결과, 기업의 규제 위반을 감독하는 해당 관료의 감독 수준이 강화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중국의 사례를 통해 기업의 정치적 유착이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노동자의 재해 사망 증가와 같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에 대한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부패한 각종 인사들로 온 뉴스가 도배되는 요즘,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참고 자료

Fisman R., Wang, Y.X., 2012. The mortality cost of political connections. Working paper, Columbia University and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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