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의 전염병이 또 다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며칠 갑자기 유명해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이야기다. 일요일 오전까지 15명의 환자가 생겼고 이는 대부분 중동 국가들보다 많은 숫자라고 한다.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사태를 총괄한다. 얼마나 위험한가? 잠복기를 고려할 때 이번 주 중반이 고비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더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대유행’이나 ‘대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함께 말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객관적 사실만으로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매일 환자가 불어나고 지금도 120여 명이 격리 중이라고 하니 누군들 불안하지 않을까. 정부는 ‘괴담’을 강력 단속한다고 경고하지만, 그것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반응이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할 일이 아니라 불안의 원인을 없애야 한다.
우선, 이번 일만 놓고 보면 보건당국이 터무니없이 엉터리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초기 대응이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비판받을 부분이다. 1차 감염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 환자와 접촉한(따라서 전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더 꼼꼼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후 보건당국이 한 일은 대체로 현재의 지식과 기술, 실력 수준에서 크게 흠잡기 어렵다. 1차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이 신고 없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해외로 출국한 경우도 있었지만, 정부의 힘만으로 전파를 모두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는, 생활하는 개인들이 전파의 주체인 한, 정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비판을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만 있으면 꼭 같은 표현의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오지 않는가. 사스와 조류독감이 마찬가지였고, 성격은 다르지만 식중독이나 다른 전염병이 유행할 때도 비슷하다. “안이한 대응” “방역에 허점” “무능한 방역 당국” “사실 파악도 못해” 등의 비판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기술과 전문성의 능력이 나아지는데도 비슷한 상황과 비판이 되풀이되는 것 자체를 성찰해야 한다. 이번 일도 잠잠해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다시 태평한 상태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반성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반성에 기초해 실천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을 또 만날 것이다.
우선, 정부와 전문가들에 요청한다. 대중과 대중의 반응을 보는 관점을 수정하시라.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방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무지와 오해 때문에 지나친 공포가 생긴다고 여론과 대중을 원망할 일이 아니다. ‘관리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론으로만 갖고 있을 것인가.
전염병은 이른바 ‘보호자주의’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보통 사람들의 정보나 지식이 전문가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데다 질병의 경과가 빠르다. 메르스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은 더 그렇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 정보를 가진 정부나 전문가가 일반 사람들을 대신해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사람들은 ‘보호자’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
이런 질병과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보호자주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중은 무조건 보호자를 따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따를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이 존재할 뿐 아니라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그러니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으려면 다시 점검해야 할 일이 많다. 여러 과제가 있는 가운데에 우리는 ‘신뢰’ 구축을 첫 손가락에 꼽으려 한다. 정부, 좁게는 보건과 방역 당국이 대중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사태와 불안, 그리고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보호자주의의 패러다임 안에서도 그것이 작동하려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에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다(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닌데다 일관되고 치밀해야 하니, 제대로 된 계획과 좋은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길게 설명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니,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오늘날의 신뢰 수준을 얻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영어로는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이고 흔히 ‘CDC’라고 줄여 부른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신뢰를 만들어가는 첫 번째 과정이자 기본 토대가 ‘의사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동시에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공포와 괴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뿐 아니라, 전파와 확산을 방지하는 데에도 제대로 된 소통이 강조되어야 한다.
원론에는 동의하겠지만, 총론만 가지고는 모자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국 CDC의 자료에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한다 (바로가기). 포함된 자료의 18쪽에 나와 있는 내용을 번역했다 (바로가기)
좋은 소통은 양쪽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사실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 이상이며, 어떤 결정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것 이상이다.
소통은 양쪽이 모두 참여하는 교환의 과정이다. 결정된 사항은 단순히 통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내용을 성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그 소통은 언어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적절해야 한다.
공중보건을 위한 투명한 소통이 갖추어야 할 대강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⓵ 불확실성을 인정하라.
⓶ 추적에 대한 정보를 가급적 신속하게 제공하라.
⓷ 인내와 유연성을 유지하도록 권고하라.
⓸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라.
⓹ 현실에서 가능한 실천 방법을 제시하라.
⓺ 지역사회를 포기하지 말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말라.
메르스 때문에 묻힌 주한 미군의 탄저균 사건만 봐도, 이런 요구사항들은 지금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자료에서는 기본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투명성조차 많이 아쉽다. 특히 일반 시민과 대중을 관리와 통제 대상이 아닌 협력자(파트너)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앞으로 축적해야 할 좋은 역사의 주춧돌이 놓인다. 일단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고 보자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실천이 신뢰 구축과 이에 기초한 협력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한 가지 첨언하자면,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태세는 압도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있다(한국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정치’와 ‘사회’를 보태지 않으면 크게 모자란다. 이 관점에서 메르스 확산을 다시 보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