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메르스 이후, 더 많은 대안을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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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다. 메르스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진단과 처방이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진다. 벌써부터 지겹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리 유쾌한 것도 아니니 그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적 충격을 어찌 무심하게 넘길 수 있으랴, 좀 시끄럽고 복잡해도 견뎌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정확하고 끈질긴 평가가 필요하다. 한 주 전의 논평을 통해 ‘메르스 대란 시민평가단’을 제안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6월 29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여러 평가와 ‘백서’가 또한 어지럽게 나타날 것이나, 그 모든 이해관계와 권력의 불균형을 뛰어넘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

과정과 상세함으로 말하면, 카트리나 사태에 대한 미국 의회의 평가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들은 2005년 9월부터 2006년 2월까지 9차례의 공청회를 열고 50만 쪽 이상의 서류를 검토했다. 진단과 대안은 <주도의 실패(A Failure of Initiative)>라는 이름의 (600쪽에 가까운) 보고서에 집약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바로가기).

 

평가가 정확하지 않으면 처방도 주먹구구가 되기 쉽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그런 평가와 대안조차 없었던 때가 대부분이다. 이번에도 대강의 평가와 요식 행위에 가까운 조치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 가운데서도 조직 개편을 만능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경계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세월호 사태가 결국 ‘국민안전처’ 신설로 귀결된 것을 보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질병관리본부의 조직 확대나 보건복지부의 조직 개편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다.

 

또 다른 ‘선호 품목’ 한 가지는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있던 법을 고치는 것이다. 조직을 바꾸는 것도 법을 고쳐야 하지만, 이것 말고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국회의원들이 단연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만큼, 입법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정기 국회 때에 정점에 이를 것이다.

때에 따라 조직과 법이 뒷받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언하건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직과 법만 가지고는 지금 한창 말하는 그 중요하고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판의 말을 이리 저리 옮기는 식의 조직 바꾸기나 하나마나한 선언을 담은 법률로 무엇이 의미 있게 바뀔 리 만무하다.

 

누구에게나 또 어떤 대안으로나 정치적 기회인 것은 틀림없다. 반드시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회의 창’이 아니면 어찌 한 발 더 나갈 수 있으며, 어떻게 숙원의 대안을 실현시킬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 대안의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 어떤 대안이라도 정치적 지지를 얻어야 경쟁에서 이기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로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만, 정부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경쟁이라는 것이 딜레마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낼 대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현실, 그것은 대안의 채택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바로 국가라는 것, 즉 국가권력의 힘을 말한다. 그러나 지레 비관할 필요는 없으니, 국가의 무능과 무력이 이보다 생생하게 드러날 수 없는 때다. 경쟁할 수 있는 대안을 따로 내기에 이보다 유리한 환경이 다시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는 당장 어떤 한두 가지 구체적 대안을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더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진 이후에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대안을 만들어가고 선택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은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이 원칙은 그 자체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대안의 권력관계를 갱신한다는 의의가 크다.

 

첫째,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대안을 주장하고 논의해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절감한 것과 같이, 새로운 전염병과 그에 대한 대응은 자연과학과 의학의 영역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사회, 자연이 개입되고 만나며 서로 변화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전문가와 전문 관료의 시각만 가지고는 폭 넓은 범위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창출하기 어렵다. 혹시 그런 것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의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홍보와 교육을 말해봐야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번에 가장 크게 문제를 드러낸 리더십에 이르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매뉴얼을 잘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고 전담조직과 책임자를 정해 놓는다고 작동할 것도 아니다. 필요한 리더십이 관료적, 전문가적 리더십이 아니라 시민적 리더십인 한, 참여하고 논쟁하는 대안의 과정과 결과가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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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서로 다른 관점에서 대안의 논의와 대안 그 자체를 조직화하자. 시민의 관점에서 평가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로운 대안도 역시 조직화되어야 한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대안이 조직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 노동자라는 시각에서도 조직적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대안을 조직하는 것은 이해관계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차원을 넘는다. 집단적 대안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져야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가 드러나고 또한 균형이 바로잡힐 수 있다. 학교의 운영자와 학교의 보건담당자는 서로 다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지방자치단체 또한 그들 스스로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셋째, 어떤 대안이든 결국 국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권력이 성공과 실패의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대안은 국가를 상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능하고 둔감해도 국가권력의 등에서 내릴 것이 아니라 “다시 올라타는 새로운 방식들을 창조하고, 자원을 통제”해야 한다.

 

마지막은 실용적인 것으로, 조직과 법률보다는 예산 중심의 대안을 고안할 것을 널리 제안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관행대로 따라가면 조직과 법률의 한계를 넘기 어렵다. 조직은 달라진다 해도 제2의 국민안전처에 머물 것이고, 법률은 모호한 선언이 아니면 비현실적 규제와 의무로 가득할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역학조사관 증원, 공공병원의 기능, 인력, 시설 개선, 민간 병원의 (여러 가지) 개선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까. 질병관리본부가 확대되거나 보건복지부에 보건담당 차관이 신설되면 저절로 그리 될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대안의 범위를 적어도 예산까지 확장해야 한다. 대안으로서의 예산은 곧 대안으로서의 사업, 프로그램, 정책을 뜻한다. 새로운 예산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프로그램, 정책이 있어야 한다. 민간병원의 감염 관리를 개선하기로 한다면, ‘병원감염관리과’를 신설하는 것보다 병원감염 관리 예산을 먼저 대안으로 만들자는 뜻이다.

 

그 모든 원리를 넘어 대안을 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말한다. 대안의 권력관계가 국가와 정부에 유리하게 크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증언한 ‘국가의 부재’를 습관적이고 안이한 대안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 갖가지 대안을 만들고 백가쟁명의 논의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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