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최저 임금과 공중보건
최저 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가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은 2015년 3월 기준 전체 근로자의 12.4%(232만6000명)가 최저 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최저 임금 미만 근로자 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관리 감독이 이러한 현상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저 임금 미만 근로자 문제와 함께, 내년도 최저 임금 인상 수준을 두고 이해당사자 간의 상이한 입장과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의 활동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8일 최저임금심의위원회는 12차례의 회의 끝에 2016년 최저 임금 수준을 2015년보다 8.1% 오른 시급 6030원(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 급여 환산 126만270원)으로 의결하였다. 그러나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27명 중 근로자위원 9명과 공익·사용자 위원 2명이 최저 임금 수준에 불만을 표시하며 투표에 불참하였다.
여러 차례의 절충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위원들이 제시한 최저 임금 수준(8100원)과 사용자위원들이 제시한 최저 임금 수준(5715원)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최저 임금에 대한 서로의 입장과 기대 수준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서로가 만족하는 수준에서 최저 임금 수준을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 임금 인상은 근로 빈곤층에게 보다 많은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경제적인 조건을 향상시키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최저 임금 인상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즉, 최저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이차적으로 사용주가 인력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노동 시간 단축, 임금 이외 부가 급여 축소 등의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저 임금 인상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긍정적인 효과보다 더 커서 결국 최저 임금 인상이 사회적인 순편익을 오히려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최저 임금 인상 반대론자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3월 전국 중소기업 429개소를 대상으로 “최저 임금이 고율 인상될 경우 대응책”을 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 축소 29.9%, 감원 25.5% 등 고용을 축소하겠다는 응답이 55.4%에 달했고 임금을 축소하겠다는 응답은 7.2%, 심지어 사업을 종료하겠다는 응답은 14.5%였다.
최저 임금 수준은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최저 임금 수준이 낮을수록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본인 부담금으로 인한 상대적 부담이 커져 필요할 때 적절한 의료 서비스 이용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경우 ‘오바마 케어 법안(2014년 1월 시행)’ 이전 시기에는 건강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고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건강 보험 가입 및 건강 보험 급여 수준을 임의로 보장하였다. 따라서 최저 임금을 인상할 경우 이로 인한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급여와 함께 제공하는 건강 보험을 더 저렴하고 보장성이 낮은 건강보험 상품으로 변경하거나 더 이상 건강 보험을 제공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였다. 과연 그러하였을까?
미국 건강연구협회(Health Research Associates) 켈리 맥캐리어는 캘리포니아 대학 프레드릭 짐머만 등과 공동으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미국의 최저 임금 수준 변화가 저임금 근로자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고자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자들은 ‘건강 위험 요인 감시 체계(Behavioral Risk Factor Surveillance System)’ 자료의 설문 문항 중 ‘건강 보험 가입여부’와 ‘지난 1년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의사 진료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 여부’를 통해 보건의료 접근성을 측정하였다. 그리고 각 주정부 단위 최저 임금 수준은 연방 정부의 최저 임금 기준과 주정부의 최저 임금 기준을 비교하여 더 높은 기준을 해당 주정부 지역에서 널리 통용되는 최저 임금으로 정의하였다.
연구 결과, 최저 임금 수준 증가는 근로자의 건강 보험 가입 여부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즉, 최저 임금 인상으로 우려했던 부정적인 영향 중 건강 보험 가입율의 의미 있는 감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최저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경제적 부담 때문에 의사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감소하여 최저 임금 수준 향상은 근로자의 보건의료 접근성을 의미 있게 향상시켰다. 즉, 연구 대상이 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최저 임금 수준 인상은 보건의료 접근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 없이 근로자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건강 보장 제도는 국민의 건강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13년 기준 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80%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친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인상(또는 최저 임금 미만 근로자의 감소)은 근로 빈곤층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 향상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지역 가입자 중 6개월 이상 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사람의 비율이 20%(2013년 152만 세대), 그 체납액은 약 2조 원에 이르고, 비정규직의 국민건강보험 가입률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저 임금 인상은 국민건강보험 체납자 감소에도 일부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 시간을 일해 밥 한 끼 사먹기에도 빠듯한 지금의 최저 임금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Kelly P. McCarrier, Frederick J. Zimmerman, James D. Ralston, Diane P. Martin. 2011. Associations Between Minimum Wage Policy and Access to Health Care: Evidence From the Behavioral Risk Factor Surveillance System, 1996–2007.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1, 359-367.
유원섭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