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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거대한 공룡 다루기: 제약산업에서 공익과 사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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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공룡 다루기: 제약산업에서 공익과 사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는가: 전 세계 보건의료 체계의 일그러진 초상화>

(재키로 지음, 김홍옥 옮김, 궁리, 2008)

 

김 선 (연구소 영 펠로우, 서울대 보건대학원)

 

 

 

 

 

거대 제약회사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 책이 한동안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었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폴 방키뭉 지음, 김미선 옮김, 남희섭 감수, 서해문집, 2003), <몸 사냥꾼>(소니아 샤 지음, 정해영 옮김, 마티, 2006)[1], <질병 판매학>(레이 모이니헌, 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알마, 2006),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마르시아 안젤 지음, 강병철 옮김, 청년의사, 2007), <제약회사는 어떻게 거대한 공룡이 되었는가>(재키로 지음, 김홍옥 옮김, 궁리, 2008)까지. 관심을 가진 이라면 한 권쯤 읽어봤음 직하다. 각 책마다 특색이 있지만, <공룡…>이 돋보이는 이유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그러한 문제를 보건의료체계의 관점에서 조망했다는 점이다. <big pharma: exposing the global healthcare agenda>라는 원제를 살펴보면 이 책의 관점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제약산업에서 일어나는 공익과 사익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2004년 영국하원의 건강위원회는 제약업계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서, “보건부가 한편으로 제약업계를 후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주된 구매자 역할을 하는 기이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보건부는 “(정부 부처를) 분리하는 것은 건강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경제적 동기사이에 불필요한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문제란 다름 아니라 건강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경제적 동기간에 긴장이 결여된 데 있다는 사실이 차츰 분명해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질문하지 않은 탓에 어느 누구도 아는 것이 없고, 상업적 이해와 국민건강상의 이해는 같은 것이라는 가정은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p11-12).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과 보건산업정책을 함께 다루고 있다. 정부 부처 분리(내지는 역할 이관)는 별도의 논제이니 차치하더라도, 보건의료체계를 두고 벌어지는 공익과 사익의 충돌은 우리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의료민영화, otc 의약품 슈퍼판매 등의 이슈에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대립하고, 결국 보건복지부가 입장을 선회하여 적극적으로 민영화 내지는 시장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논리에는, 저자의 말마따나 상업적 이해와 국민건강상의 이해는 같은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있었다.

 

정말 그런가? 보건의료체계에서 상업적 이해와 국민건강상의 이해는 같은가? 저자는 제약산업의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컨대 제약업계(특히 미국의 제약업계)의 마케팅 전략을 할리우드 전략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영화계의 속편, 특수효과, 마케팅 비용의 증가는 제약업계의 모방 의약품 생산, 의약품의 고급화 전략, 마케팅 비용의 증가와 정확히 대비된다는 것이다. 제약업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절묘한 기대관리(expectation-management)를 통해 나머지 국가들이 의약품 가격 제한을 폐지하고 그 수준을 거의 미국과 엇비슷하게 끌어올리도록 할 속셈으로 그 나라에 무역대표를 보내라고 미국정부를 설득하기까지 한다면서, 영화계보다도 더 대담하다고 지적한다(p40-42). 저자는 제약회사의 상업적 이해와 국민건강상의 이해가 일치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인간은 신약이 끊임없이 공급되지 않아도 너끈하게 살아남을 수 있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기업은 신약이 끊임없이 공급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p39)면서, “일반대중들을 피치 못할 위험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시장 자체의 생리”(p24)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약산업을 포함한 보건의료체계 전반에서 지나치게 민간이 중심이 되어있고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이 매우 취약하다. 여기서 공공성은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데, 예컨대 최근 추진되고 있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보면, 기존 법률이 공공의료·공립의료기관이 국민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일체의 활동으로 정의한 데 반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재정의하고, 정부는 국·공립병원의 양적 확대보다는 필수 보건의료 제공 기능에 주목하는 대신, 수익성 부족으로 공급이 부족한 필수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설립주체에 따른 공공/민간의 구분 없이 가장 효율적인 체계를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전병율 2011). 즉 공공성이 소유 주체(정부)에 의해 규정되기도, 추구하는 가치(보편성 내지는 형평성)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공공 기관의 확충이나 민간 기관의 억제가 쉽지 않음을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인 개선안인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행정력이 있다면, 민간을 활용한 보건의료의 공공성 제고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제약산업의 예를 들면, 글리벡이나 푸제온의 사례처럼 독점력을 가진 제약회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약가를 요구하거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공급을 거부한다 던지, 타미플루의 사례처럼 국민적인 요구가 있어도, 정부가 거대 제약회사(내지는 그들이 속해있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강제실시나 병행수입과 같은 선택지들을 포기하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수익성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민간제약회사, 민간의료공급자들의 도덕성에만 기대는 것은 안이하거나 무책임하다.

 

보건의료체계, 특히 제약산업의 공공성 확충을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공룡을 다루기 위해서는 공룡이 꼼짝 못 할 만한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 이 때 공공 기관의 역할은 그 자체로서, 또 민간 기관을 견제 또는 견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 제약회사의 역할이 의약품을 연구·개발(임상시험을 포함하여)하는 데서 시작해 제조, 유통, 마케팅 등으로 이어진다고 했을 때, 그 모든 역할 또는 일부를 수행할 국영/공공 제약회사를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민간 기관을 사 들이든, 민간 기관의 소유권 일부를 점유하든, 아예 공공 기관을 새로 짓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운영에 있어서 공공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담아내는 장치가 될 것이다.

 

저자는 왜 우리는 수세기 동안 수많은 현자들이 던져온 질문, 충만하고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오로지 이윤에만 사로잡혀 있는 제약회사가 독차지하도록 내버려두었는가?”라고 질문한다(p13).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의약품의 공공성에 대한 주장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을지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전병율 (2011). 질병관리 및 공공보건 정책 방향. 공공보건정책관.

 



[1] 2007년에 <인체사냥>이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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