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한국이라면 쿠르디가 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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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이주 아동의 건강권

지난 9월 초, 터키 해안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며, 전쟁의 비극과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또 그간 시리아 난민 수용에 비판적이던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난민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꼬마 아일란’이 던진 충격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 대한 애도의 물결과 함께, 나아가 한국 역시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난민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이 한국 사회의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심지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난민 아동’에 대한 기사와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 발의’와 관련해 부정적인 여론마저 일었다는 점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2월 기준, 난민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난민 아동’을 포함하여 합법 체류 기간 만료로 인해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한 19세 미만의 아동 수는 6000여 명에 이른다. 통계로 잡히지 않는 미등록 아동까지 포함하면 현재 2만 명 내외가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주 아동 교육권 실태 조사>(국가인권위원회 펴냄, 2010년)).

미등록 무국적 아동의 경우, 한국에서는 최소한의 생존권과 건강권에 대한 보장마저 받을 수 없다. 그들은 미등록 이주민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국적을 갖지도 못하며, 평생 존재가 부정된 채로 살아야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미등록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아동들은 미국 시민권자이다. 따라서 적어도 국가의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는 미국의 상황이 낫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주 아동들이 갖는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 마리아 잘렌스키 교수 팀이 올해(2015년) 8월, <소아과(학)지(Academic Pediatric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주아동들은 의료이용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건강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자료: Trends in Disparities in Low-Income Children’s Health Insurance Coverage and Access to Care by Family Immigration Status).

마리아 교수 팀은 ‘국가 아동 건강 조사(National Survey of Children’s Health)’ 자료를 이용해 연방 정부 빈곤선(Fedral poverty level) 200% 미만 저소득 가정의 8만3612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 및 가족의 이주민 지위에 따른 의료 보험 보장률, 의료 접근성 그리고 건강 결과를 비교 분석하였다.

아동 및 가족의 이주민 지위는 3가지 범주로 나누어 확인했는데, 비이주민 부모의 시민권자 아동(부모와 아동 모두 미국에서 태어남), 최소한 한 부모가 이주민인 시민권자 아동(아동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중 최소한 한명은 외국에서 태어남), 그리고 이주 아동(외국에서 태어난 아동)으로 구분하였다.

‘의료 보험 보장률(Health Insurance Coverage)’은 조사 시점에 가입되어 있는 의료 보험이 있는지, 메디케이드(Medicaid)나 아동 의료 보험 프로그램(CHIP)과 같은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고 있는지(5년 미만 거주 미등록 이주 아동은 공공 부조 대상 아님), 지난 12개월 동안 의료 보험에 지속적으로 가입했는지의 여부로 측정하였다. ‘의료 접근성’은 개인적인 주치의 개념의 단골의사나 간호사가 있는지, 지난 12개월 동안 예방적 처치를 받은 적이 있는지, 지난 12개월 동안 미충족 의료는 없었는지를 통해 측정하였다.

분석 결과, 의료 보험 보장률과 의료 접근성 모두에서 이주 아동들이 비이주 아동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강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비이주민 부모를 둔 시민권자 아동은 의료 보험 보장률이 91.4%인 반면 이주 아동의 경우 53.8%였고, 의료 보험 지속 가입률 역시 82.1%를 보인 비이주민 부모의 시민권자 아동에 비해 이주 아동은 45.3%밖에 되지 않았다. 미등록 이주민인 부모들이 정부 기관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하고 꺼려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이주 아동과 이주 아동 간의 격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감소하여 2003년에 비해 2007년에, 2007년보다는 2011년~2012년에 비이주 아동들의 의료 보험 보장률과 의료 접근성, 건강 결과가 훨씬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주 아동들의 의료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기존의 정책적 노력들이 축적되면서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의료 및 건강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그런 측면에서, 미국 오바마 정부가 추진 중인 ‘저가의료법안(Affordable Care Act)’ 역시 의료 접근성 제고 및 건강 불평등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 의료 이용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열악하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64조에서는 가입자의 요건을 출입국관리법 제31조에 따른 외국인 등록을 한 자로 제한하고 있어, 미등록 이주 아동의 경우 현행 법령상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는 유엔아동권리협약상 사회 보험 가입에 대한 국가의 책무와도 배치된다. 의료 이용 비용의 100%를 모두 그들 호주머니에서 직접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의료 이용을 할 수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 얼마나 될까?

미등록 이주민들을 위해 그나마 존재하는 정책들의 경우에도 이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영유아 예방 접종의 경우, 보건소에 가면 1회 접종 평균 비용 본인 부담금 5000원만 내면 미등록 이주 아동이어도 접종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아는 미등록 이주 부모는 거의 없고 보건소 역시 이러한 업무를 이행한 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꿈이자 희망이라고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들이 선택할 수도 없었던 부모의 조건에 따라 배제당하고 불이익을 받는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사회일까? 정의로운 사회는 내 아이도 다른 아이도,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아동에게까지 예외적인 경우를 추려내고, 배제하고, 낙인찍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단지 예외적인 ‘한 아이’를 위해 슬퍼하고 동정하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최소한 18세 미만 아동 청소년에게는 부모의 조건 등 어떠한 단서 조항도 없이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할 것이다.

서상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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