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하 ‘TPP’)이 타결되었다. 한국에서는 이 협정에 왜 빠졌는지가 더 큰 뉴스다. 하룻밤 사이에 생긴 일도 아니건만, 전혀 모르고 있다가 사고라고 난 것처럼 시끄럽다.
추가 가입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도 말이 많다. 미국과 일본 중심의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부터,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이 실속이 더 크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는 기업인 단체(대한상공회의소) 대표의 말이 오히려 돋보일 정도다.
TPP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다시 확인한다. 그동안 FTA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지만, TPP를 대하는 자세도 이전과 다른 것이 없다. TPP가 발효될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니, 앞으로도 비슷한 시비가 계속될 터. 과거 논의에서 한 발걸음이나 나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무역 자유화는 옳고 좋다는 이념적 ‘선동’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여러 번의 FTA 논의를 이끌어 온 동력이 시장, 세계화, 경쟁과 경쟁력, 규제완화 등이 아니었던가. 한국판 자유지상주의!
국익의 논리까지 더해지면 무역 자유화는 거의 신앙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백을 강요하는 질문은 다르지 않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이것이 아니면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 쇄국으로 망한 대원군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냐는 익숙한 위협.
과연 자유무역과 FTA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인가. 국익으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이익은 일관성이 없다. 한국은 2004년 1월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최근의 중국까지, 50개 나라 이상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몇 개 나라, 세계경제영토의 몇 퍼센트, 하는 관료주의적 성과지표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1년 유럽연합(EU)과 맺은 FTA는 말 그대로 손해다(지금까지는). 유럽연합과의 무역수지는 1998년 이후 계속 흑자였으나, 2012년 적자로 바뀌어 2014년 사상 최고치인 107억 달러를 기록했다(국제무역연구원 트레이드 브리프 바로가기). 이때는 또 장기 효과라는 편리한 말이 동원된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이 문제는 애당초 정답을 알기 어렵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효과가 나타나고, 그나마 그 결과는 온갖 변수가 한꺼번에 작용한 것이다. 목적이나 목표를 예상하면 그것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도 적중한다. 몇 개 나라, 몇 퍼센트. 진짜 이익은 명확하지 않고 관료의 물신화된 성과만 남았으니, 소용없는 이념의 선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유무역이 국내의 불평등을 새로 만들거나 심화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출을 통해 얻는 것이 있으면 내놓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다. 손익의 총량(국익이자 성과, 효과)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 이익과 손해의 주체는 늘 엇갈린다.
지금까지 농업을 희생해 제조업의 이익을 도모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불균등 분포를 애써 숨긴 총량의 논리로 농업을 내주었으니, 경과와 결과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14년 체결된 중국과 뉴질랜드와의 FTA가 가장 최근의 사례라는 점만 적어둔다(관련 <서리풀 논평>).
TPP의 이익과 손해, 이에 따른 불평등 구조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용만 회장이 했다는 이야기는 단체의 이익에 충실하다.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큰 상황에서 기계와 부품, 자동차 시장 등에서 일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연합뉴스 바로가기).
전경련이 아닌 상공회의소의 대표가 TPP 참여를 걱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유무역의 확대는 산업 분야에 따른 불평등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불평등도 키운다. 수직분업의 구조가 자유화(세계화)되면 국내 중소기업과 중소자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관련 기사 바로가기). 많은 수가 상공회의소의 회원이다.
TPP는 모든 것을 더욱 상품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건강과 공중보건, 의료기술, 의약품이 일차적인 대상이다. FTA를 논의할 때부터 계속되어 온 시비인 만큼, 이 또한 생소한 논란은 아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벌써 일 년도 전에 <건강과 대안>이 번역해 내놓은 TPP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삶과 죽음의 문제, 보석보다 비싼 의약품” 바로가기).
최종 합의사항은 공표되지 않았지만, 보건 분야에서 TPP는 한미 FTA보다 더 심각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치료 방법의 특허를 인정하고, 바이오신약의 자료 독점권 기간이 연장되며, 작은 변화를 통한 특허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 등이다.
게다가 추가로 비용이 든다. TPP에 새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미국이 보기에 미흡한 조치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 의료 ‘시장’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FTA와 TPP를 넘어 한 가지 논의를 새로 보태야 한다. 최근까지 자유무역과 무역 자유화를 대하는 우리의 위상이 ‘피해자’였다면 이제 ‘가해자’로 옮겨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위치가 달라지면 FTA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
TPP에 참여하지 못한 한국이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협정으로 거론된 것이 있으니, 바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이다.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16개 나라가 참여하는 것으로 중국은 물론 일본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협정과 국가 구성이 상당히 다르다.
FTA의 일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 협정만의 특별한 내용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국의 입장과 이에 대한 다른 나라의 대응이다. 한국 정부가 2014년 10월에 만든 지식재산권에 대한 협상 초안이 유출되었는데(바로가기), 그동안 미국이나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이 제기한 것과 비슷하다. 가혹한 조건으로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여러 관련 당사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익숙한 것이다(바로가기).
다시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FTA는 중립이 아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도 말하지 않았던가. TPP는 “자유무역을 위한 것이 아니라…영향력 있는 기업들의 로비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자유무역이 침략과 가해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FTA가 다른 의미의 재앙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고삐를 놓아버린 FTA의 광풍 속에서 수출과 교역에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현실은 당혹스럽다. FTA, TPP, RCEP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은 개발독재 이후의 경제정책, 그리고 그 결과(촘촘하게 짜인 완고한 현실)를 핑계로 한 일종의 협박이다. 여기서 모든 대안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만다.
적어도 당분간은 현실이 될 만한 ‘단절적’ 대안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꿈꾸지만 당장은 인간의 얼굴을 한 대외 경제에 힘을 기울일 수수밖에 없다. 현실과 대안이 ‘공생’하고 작은 실천과 큰 전망이 공존하는 이행기 전략이 불가피하다.
FTA, TPP, RCEP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목표와 이익, 피해는 정치화되어야 한다. RCEP에 이르면, 목표와 이익, 피해의 범위가 국내를 넘어 국제화되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