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동물실험실 폐렴과 메르스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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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교의 동물생명과학대학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0월 19일이었다. 그 사이 수십 명의 환자가 생겨 제2의 메르스 사태가 될까 걱정이 많았다. 2주가 좀 더 지난 지금, 더 번지지 않고 마무리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남은 문제는 아직 원인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환자의 유전자와 혈청항체검사를 했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음성이고 다른 감염병일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화학물질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나 잘 들어맞지 않는다. 끝내 ‘괴질’로 남을 수도 있다.

방역 당국이 어떻게 대응했고 그 결과가 어떤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 늘어났다. 이번 일만 놓고 보면, 겉으로는 큰 잘못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원인을 못 찾았다는 것이 걸리지만, 어떤 질병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급한 불은 꺼졌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겉보다는 속, 어떤 대응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갔는가 하는 점이다. 보고와 결정의 흐름을 추정하면 간단해도 이 정도는 거치지 않았을까. 환자를 진단한 병원 → 신고를 받은 보건소 → 보건소의 보고를 받은 질병관리본부 → 보건복지부 → ??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정보가 충분치 못하다. 다만, 메르스 사태 때 학습한 것이 이번 대응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의식하지 못한 채 그럴 수도 있다). 지식이 늘고 훈련이 되었으니 과거보다는 빠르고 체계적이었을 것이다. 엄청난 비용을 치렀으니 개선되는 것이 마땅하다.

 

경험에서 배우는 것에 좋은 면만 있을까, 상상력을 제약하는 쪽이면 경험은 오히려 한계로 작용한다. 메르스가 재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시 감염병이 발생하더라도 메르스란 보장이 없는데, 집단 수준에서 보건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은 감염병 말고도 많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감염병일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험실의 ‘바이오해저드’를 원인으로 의심한다는데(한겨레신문 관련 기사),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처음부터 달라진다.

다른 원인이면(그런 것이 의심되면) 대응 시스템은 그것에 맞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생긴 기관이 할 일, 병원이 해야 할 일, 보건소가 하는 일이 메르스와 다르다. 질병관리본부가 의견을 물을 전문가가 따로 있고, 어떤 전문가가 역학조사관이 되어야 할지 다시 정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까도 같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실험실 폐렴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다시 고민하는 것은 답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공중보건 위기(사고, 질병, 감염병)가 나타날까를 생각해보라. 100명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수만 명이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원인과 다양한 경과를 누구도 정확하게 점칠 수 없다. 메르스와 실험실 사고는 교훈일 뿐, 대응 시스템과 대책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어떤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나 작동했든, 여러 가능성을 모두 포함한 전반적인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진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번에도 역학조사관이 동원되었지만 그것만 해도 그렇다. 감염병을 다루는 역학조사관도 그렇게 모자란다는데, 그사이 다른 원인을 다루는 전문가가 보완되었을 리 없다.

오해하지 말 것. 메르스가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좋은 시스템이 갖추어지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여러 분야의 여러 사람이 오래 걸려 만들어야 하는 것이 시스템이라면, 벌써 새로운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것이 있다면 졸속에 부실한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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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이번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합적이다. 한두 가지 원인에 대한 사안별 대처가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스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고 단편적인 미봉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나마 비슷한 것이 9월에 발표한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이지만, 그대로 믿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시스템은 그만두고라도, 내년도 예산안만으로도 ‘개편’이나 ‘방안’을 신뢰할 수 없다. 예산부터 이런 식이다. 신종감염병 예산이 올해 34억 원에서 내년에 560억 원으로 늘어난다고 했지만(1547% 증액!), 512억 원은 유효기간이 끝난 항바이러스제를 바꾸는 비용이라고 한다(관련 기사 ). 역학조사관 충원은 아예 예산도 없다. 시스템이라면 정부조직, 인력, 예산, 리더십, 다른 정책과 다른 시스템 개편을 모두 포함해야 하는데, 그 어디에도 고민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관료주의적 미봉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지 않다. 여론 때문에 예산 몇 푼이 늘어나거나 역학조사관 항목이 되살아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시스템”이 멈춘 상태에서 무슨 시스템이 만들어지겠는가. 망가진 시스템이란 한 마디로 국가 수준의 우선순위와 지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시스템을 말한다.

감염병이든 공중보건위기든, 또는 방역체계든, 국가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리더십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을 맡은 담당 분야 관료나 부처가 가진 권한 밖의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예산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정책과의 조화나 협력, 다른 부처와의 조정은 장관이나 차관, 질병관리본부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정부가 내놓은 건강과 보건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고 메르스 이후에 더 분명해졌다. 공중보건 위기나 신종 감염병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수준, 초점은 “돈이 되는 의료”에 모인다. 장관은 원격의료 전문가에 차관은 경제부처 출신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는지 보건복지부의 보건산업정책국장 자리에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을 앉혔다(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럴 힘이 없다!). 이 마당에 누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국가방역체계’에 돈과 에너지를 쓰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동물실험실에서 생긴 집단폐렴이 일깨운 교훈은 명확하다. 공중보건 위기대응체계, 방역체계, 감염병 관리체계, 또는 다른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메르스에 ‘꽂힌’ 좁은 대책이 아니라 다른 위기의 가능성까지 열어둔, 그야말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제기했다.

 

희망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전체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도 그렇게 쉽게 지나가고 말았는데, 겨우(!) 몇십 명의 폐렴으로 ‘위기의 정치’가 되살아날까. 다만, 메르스와 폐렴을 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정치의 문제로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다시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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