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벼락’을 맞는 꿈이 다시 등장했다. 국내 한 제약회사가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발표가 출발이다. 계약액이 몇 조 단위로 큰 규모니, ‘대박’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실제 돈은 언제 어떤 조건으로 받는지 궁금하다). 사회와 언론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해당 제약회사의 주가는 올해만 700% 가깝게 올랐다고 한다.
기술이 그 정도라면, 우리 사회의 건강 역량 면에서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흔쾌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신약기술 수출과 세무조사가 같이 뉴스에 떴지만,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주식 값이 폭등하면서 회사 소유주가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는 것도 우연이거나 회사에서 성과가 난 결과로 생각하고 싶다. 신약이 그렇게 떠들썩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우선 잘 이해되지 않는 것 한 가지부터. 모든 언론 기사가 받아쓴 것처럼 같은데다. 낙관 일변도다. 자세하게 들여다봐도 직접 취재한 것은 없고 회사 홍보자료와 구분되지 않는다. 기사만 봐서는 회사 말이 정말 맞는지, 위험은 없이 온통 장밋빛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다못해 계약 상대방 회사에 확인해봤다는 기사도 없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 아닌가. 받아쓰기.
교훈을 얻을 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97년 4월 18일의 <매일경제신문> 기사부터.
“한국신약개발진흥회는 최근 개최된 정책토론회에서 △OO제약의 안트라사이클린 항암제,….등 5개가 국산 신약후보군이라고 밝혔다. 이들 신약후보 물질은 현재 임상시험단계에 있는 것으로 성공확률은 20∼33% 상태이며 약 2천억 원의 현재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신약’의 신화쓰기는 그 이전에 시작된 것이다. <경향신문> 1989년 3월 23일 기사도 보자.
“…세계 최초로 신약 항생제 KR | 10664를 개발한 것은 외국의 물질특허권 허용이후 기술예속화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쾌거로 평가된다….앞으로 4조원 규모의 세계 항생제 시장의 9%(3천 6백억원)를 점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며 외국 제약회사들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기술료만도 3백 5십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렇게 뉴스에 등장한 그 많던 신약과 신약 후보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이라는 곳에서 종합한 국내 ‘신약개발 현황’에 따르면 개발 신약 허가를 받은 제품은 1999년 이후 지금까지 25종에 지나지 않는다(바로가기). 신약 개발이 성공할 확률은 “1만분의 1∼2”에 지나지 않는다니, 자칫하면 ‘뻥’이 되기 쉽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다른가?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고 하지 않는가. 기술개발 초기에 뜬구름 잡기로 예측하는 것에 비하면 최소한의 실체가 있는 셈이다. 회사가 발표한 경제 가치야, 나중에라도 그 제약사의 계약금 수익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면 금방 알 일이다.
이번에는 다른지, 또 하나의 거품인지는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하고. 그것이 명확하지 않은 지금은 신약 개발의 정치와 경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약, 계약금과 ‘대박’, 제약 산업의 가능성이 시끄럽지만, 그것은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고 건강과 보건은 더구나 해당 사항이 없다. 성장 동력과 부가가치, 경제성이 신약 담론의 중심에 있고, 그나마 실체도 없는 이데올로기이자 ‘통치술’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정부의 행동이 그것을 말한다. 수출 대박 소식을 듣고 벌써부터 숟가락을 얹으려는 곳이 차고 넘치는 것부터 그렇다. 보건복지부는 신약기술 수출 뒤에 이만큼 지원했다는 자랑부터 내놨다(정부의 브리핑 바로 가기). 장관은 열 일 제치고 제약단체와 간담회를 갖기로 했단다. 모종의 ‘통치’를 위한 강력한 메시지다.
이쯤 되면 보건복지부는 조역이고 통치 차원에서 직접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한 인터넷 뉴스매체가 전한 소식으로는 벌써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 청와대의 미래전략수석과 과학기술비서관, 미래창조과학부 생명기술과장 등이 바이오업계와 간담회를 했다고 한다(바로가기).
그들의 대화 내용은 예상했던 바를 그대로 보여준다. 바이오 전문펀드나 기술개발투자 지원이야 늘 그렇다 치고, 이것이 왜 빠질까 했다. 규제완화, 그것도 ‘생명윤리법 규제완화’ 후속조치를 건의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6일 ′바이오헬스산업 규제개혁 및 활성화방안′을 내놓았으니(바로가기), 이런 손발은 착착 잘도 맞는다. 신약과 규제 완화를 연결시켜 경제 살리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보수언론까지 나섰다(동아일보 사설 바로가기). 기업과 정부, 언론(학계도 보태야 할 것이다)이 함께 뭉치는 신약 ‘체제’가 만들어지는 중인가 싶다.
정부가 이러니, 당분간 신약 이데올로기(신약 그 자체가 아니라)가 어떤 역할을 할지 훤히 보인다. 하나쯤만 비슷한 사례가 더 생기면 광풍이 일지도 모른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치경제는 너무 먼 이야기라 하더라도, 삶과 일상이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시, 이윤과 경제성장을 위해 내놓고 희생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
우선 규제완화의 압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앞서 나온 생명윤리법은 물론이고,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규제 장치들이 없어지거나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서리풀 논평> “신의료기술의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참조. ). 내친 김에, 신약뿐 아니라 약의 모든 것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 장담한다. 정부의 국정기조, 통치원리와 맞으니 힘의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규제의 성격, 그리고 이해당사자 사이의 권력 관계 때문에라도 더욱 그렇다. 규제받는 쪽(기업이나 병원, 의사)의 불편은 명확한 반면 규제 효과는 잠재적이다. 이해당사자도 한쪽은 명확하지만, 다른 쪽은 불특정 다수다. 힘을 겨룰 겨를도 없이 한쪽이 밀리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살리도마이드나 바이옥스와 같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드문 경우에 갖다 붙이는 비약이라고 하지 말라. 규제란 그런 것이다. 한 과정만 완화해도 다른 곳까지 직접 영향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제도적 규제를 풀면 심리와 문화도 달라진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이 어디 제도(선박에 대한 규제 완화)만의 문제였던가.
신약의 또 다른 정치경제는 의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이다. 신약이 산업이 되는 순간, 경쟁력을 빼고 가치를 말하기 어렵다. 한국과 같이 해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더하다. 국제 경쟁력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고 남는다. 이번 일로 국내 제약사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키워야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신약과 경쟁력은 연구개발과 연결되어 있다. 그 많은 영세 제약사가 무슨 힘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겠는가. 재원이 관건이면, 이미 “건강보험 약값 보장 = 제약사 수익 =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프레임이 굳건하다. 약값과 건강보험 재정이 재원인데, 건강보험 약값을 낮춰 수익을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바로가기).
앞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약의 가격을 낮추려고 할 때 제약사가 어떤 소리를 할지 뻔하다. 약값 인하가 ‘애국심’까지 건드릴지도 모른다. 건강보험이 당면한 도전은 단지 제약사가 가진 경쟁력, 연구개발 투자, 약가와의 관련성을 가리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건강보험의 가치는 전복되고 경제에 종속된다.
몇 개의 신약은 정말 일을 낼지도 모른다. 한두 개 제약기업은 기술이전이 아니라 이른바 ‘블록버스터’로 세계시장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한참 뒤라도,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다. 다른 사회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면 공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 사례 또는 에피소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나라 전체의 핵심 산업이 되고 미래 경제를 책임질 기둥이 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는 한국의 신약과 그 산업이 그리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근거를 명시할 수 없지만, 새삼스러운 판단도 아니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경제적 ‘선동’이 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신약을 빌미 삼아 치우친 사회경제 정책을 더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도나기 쉬운 약속어음을 내밀면서 필수 규제를 풀고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한다면, 가장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