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자선냄비의 진실, 당신의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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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아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닙니다

 

연말이다. 익숙한 구세군 자선냄비의 등장과 더불어, 연말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가 바로 아픈 아이들의 모습을 TV 화면에 가득 담거나 거리마다 아픈 아이들 사진을 걸어 두고 치료비를 모금하는 모습이다.

모금의 선의와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모금된 금액으로 과연 제대로 된 치료를 제 때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지, 가엾고 불쌍한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모든 아이들이 동정을 통해서가 아닌 마땅한 권리로서 의료 이용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음에도, 비급여 항목의 높은 비중, 비싼 약가 등의 문제로 말미암아 보장성 수준이 낮고, 이로 인해 여전히 의료비는 가계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의료비 부담은 치료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고, 빈곤화로 이어지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련 자료 : 의료 안전망의 재구성과 정책 과제,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부담감과 불안감으로 많은 이들이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하는데, 연령별 민간 의료 보험 가입 현황을 보면, 소아·청소년의 경우, 가입률이 전체 평균인 74%보다 높고, 특히 10세 미만 소아의 가입률은 85%로 가장 높다. (☞관련 기사 : “건강보험 흑자? 애들은 병원비 없어 죽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아동의 의료비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적 부담의 영역으로 전가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료비 부담은 아동의 실질적인 의료 이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최근 미국 해즈브로 어린이 병원(Hasbro children’s hospital) 응급의학손상예방센터의 마크 존프릴로(Mark R. Jonfrillo) 연구 팀은 외상성 뇌손상 및 척수 손상으로 인한 아동의 병원비가 가구 소득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하였다. (☞관련 자료 : Socioeconomic Status and Hospitalization Costs for Children with Brain and Spinal Cord Injury)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심각한 뇌 손상 및 척수 손상을 입어 급성기 병원 43개에 입원한 19세 미만 아동 1061명에 대해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진행한 결과, 가구 소득과 의료비 지출액 간의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다소 의외의 결과로, 연구팀은 아동의 손상 발생에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격차가 존재한다(취약하고 가난한 아동일수록 손상발생률이 높고, 심각한 손상도 많으며, 손상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을 뿐 아니라 손상 후의 기능 회복 등의 결과도 좋지 않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들을 근거로, 연간 소득이 낮은 지역에 사는 소득이 낮은 가구의 아동일수록 심각한 손상을 많이 입어 의료비 지출이 더 높을 것이리라 예상하고 가설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본 연구가 치명적으로 심각한 손상인 뇌손상 및 척수손상을 입은 아동들만을 대상으로 했고, 사회경제적 지위 중 단지 ‘소득’에만 초점을 맞추어, 인종/민족, 부모의 교육 수준 및 직업 등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재활병원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급성기 병원만을 고려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팀은 가구 소득과 의료비의 관련성이 주진단명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는데, 이는 뇌 손상 및 척수 손상과 같이 치명적이고 심각한 진단이 아닌, 다소 덜 심각한 손상일 경우에 비용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치료를 포기해 의료비 지출이 낮아질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 있다. 손상의 심각성이 아닌 의료비 부담의 측면에서, 본 연구 내용과 결과를 다시 생각해보면, 심각한 급성기 손상 치료 영역은 치료비가 많이 들고, 이러한 손상 자체가 아동의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잠재적인 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의료비 부담 수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파산 위험도 높아져, 아동의 손상이 장애로 남아 입원이 장기화되거나 재활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동의 치료를 포기할 가능성은 늘어날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한국에서도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라 의료 이용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아동·청소년보다는 성인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현재로서는 아동·청소년의 의료 이용 불평등을 여러 정황으로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희귀 난치성 질환, 암 등의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들, 저체중아를 출산하여 양육 중인 부모들이 모여 정보 공유를 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온통 의료비 걱정인 것을 볼 수 있다. 질병이나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 공유만큼이나 의료비에 대한 상담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 개인으로 보면, 아동·청소년기에 의료비로 허덕이는 사이 그 개인과 가족은 파산에 이를 수 있을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정한 치료를 받으면 잘 성장할 수 있는 아동이 의료비 때문에 적정 시기를 놓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을 장애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전생애 주기별 1인당 의료비 비중을 보면, 19세 이하 아동·청소년기에 지출하는 의료비가 여자는 전 생애 의료비의 9.2%, 남자는 12.7% 에 불과하다. (☞관련 자료 : 우리나라 생애 의료비 분포 추정) 대부분의 의료비는 65세 이후의 고령층이 지출하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로 보면, 아동·청소년기의 의료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국가가 나서서 하려고만 하면 아동·청소년의 의료비 부담은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비를 팔다>(김정환 옮김, 모멘토 펴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마더 테레사는 말기 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녀 자신은 심장 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받았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이 아이러니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짐작하지 못한 채 그녀는 환자의 대답을 전했다. “그렇다면 그 입맞춤을 제발 멈추라고 말해주세요.”

너무도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극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마더 테레사에게 바라온 바는, 그녀가 저러한 형이상학적 포옹을 좀 삼가고 실제 고통에 더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처럼, 아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자비가 아니라, 의료비를 걱정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들의 마땅한 권리로서의 시스템 마련이다.

 

서상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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