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영리 병원을 고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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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 병원을 고집하는 이유

보건복지부가 국내 첫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승인했다. 제주도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지만 요식행위처럼 보인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국내 최초로 투자 개방형 외국 병원의 국내 설립을 승인했다.”

엄청난 관심에 비하면 병원은 초라하다. 겨우(!) 47병상(지상 3층, 지하 1층).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를 두고 피부 관리와 미용 성형, 건강 검진을 한다고 한다. 조금 큰 동네 병원이라고 할까. 우리에게 익숙한 ‘스케일’로 보면 병원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의료 산업화가 목을 매는 경제 효과는? 의사 9명, 간호사 28명을 포함해 직원 134명으로 제주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들어오는 돈(투자)은 모두 합해 778억 원, 땅값과 건설비가 대부분이다. 유행이라는 어지간한 부동산 투자만도 못하다(그러고 보니 자본의 성격도 의심스럽다.)

영리 병원의 효과는 의료 산업화, 영리화, 상업화를 방어하는 모든 논리와 어긋난다. 투자도, 일자리도, 의료 관광도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이든 이 병원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헛다리짚기다.

경제 당국과 보건복지부, 제주도라고 왜 그걸 모를까. 정말 관심 있는 것, 목표로 하는 것은 그 너머다. 사회학자 토머스 머튼의 말을 살짝 뒤집어 ‘의도하는 결과’를 보자.

영리 병원 허용이 몰고 올 가장 큰 결과는 단연 ‘물꼬 효과’다. 한번 틈을 내기가 어려워 그렇지, 일단 무엇이라도 사례가 생기면 훨씬 쉽다.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미 경험한 바다. 중국과 맺는 FTA가 미국과 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적어 관심에서 사라졌던가. 유감스러운,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단 영리 병원이 허용되면, 세세한(그러나 중요한) 기준을 바꾸고 규제를 풀어도 언론에 기사 한 줄 없이 지나갈 것이다. 개설된 외국계 영리 병원이 어떻게든 큰 문제없이(!) 운영되게 수많은 조치를 추가할 터. 그래도 그 누구도 지금처럼 관심을 쏟기 어렵다. 그 후는 일사천리다.

사소한 것에서 출발해 무뎌지면 그다음은 큰 구조가 흔들린다. 자본이 국외인가 국내인가를 가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 더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병원이든 국민건강보험이든 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은 물꼬가 빠른 속도로 둑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이런 물꼬 효과에 힘을 보태는 것이 엉뚱한 형평성 논리다. 어떤 한 장소에 영리 병원이 허용되고 운영되면, 수많은 ‘상대적 박탈’이 반드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영리 병원에 허용한 그 모든 유리한 것들은 독점될 수 없다. 이어서 반드시 내국인 ‘역차별’ 논리가 등장할 것이다.

영리 병원도 형평성을 주장할 수 있다. 다른 의료 기관과 마찬가지로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보고 진료비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국민건강보험 없이 치료할 수 있는 환자가 많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플래그십 효과’가 위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최고급 상점을 열어 소비자의 눈을 현혹하는 바로 그 효과를 말한다. 온갖 지원을 등에 업고, 의도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의료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새로운 의료 ‘소비’의 기준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화려한 쇼윈도에 보이는 ‘명품’. 다른 상품과 그 소비는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지나친 걱정일까? 이 정부의 실력으로 그렇게 정교하게 앞을 내다볼 리 없다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별것 아닌 일로 과장한다는 일부 의견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우리도 이런 시나리오가 지나친 걱정으로 판명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이 정부가 단지 4층 동네 병원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제주도가 정치적, 사회적 부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 대통령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시작은 한참 전부터였다.

결국, 가장 그럴싸한 설명,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은 이렇다.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 관료가 합작해서 한국 보건의료 전체를 흔들겠다는 의도다. 그 동요가 어느 쪽인지는 뻔하다.

일단 영리 병원이 허용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꽃놀이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영리 병원이 잘 되면(어떤 의미로든) 보란 듯이 내세울 것이고, 실패하면(어떤 의미로든) 반대 때문에 생긴 한계와 장애를 탓할 것이다.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더 자유로운 시장이 필요하다.”

성공이든 실패든, 일단 시작된 영리 병원은 날개를 얻게 된다. 더 많은 특혜와 더 작은 규제.


가혹한 삶의 조건이 추가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평범한 서민의 삶은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인가. 영리 병원이 정말 잘 된다고 치자. 일자리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니 놔두고, 투자가 늘어나고 의료 관광이 확대된다면, 그리고 누군가는 더 고급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그 누구에게 이런 혜택이 돌아가는가?

일부 혜택이 있다 해도 희생과 손해는 다른 이의 몫이다. 영리 병원의 논리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다. 더 많은 이윤! 어떤 자본과 투자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 혁신은 해당 사항이 없다면, 이윤의 원천은 단지 누군가의 주머니일 뿐이다.

제주도의 그 병원이야 중국인과 일부 부자를 위한 것이라고 치자. 물꼬 효과와 형평성 논리, 플래그십 효과는 영리와 이윤의 생활세계를 전체 사회로 확산시킨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공적 건강 보호 체계의 동요.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홀쭉한 주머니를 통째로 내놓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그 어떤 영리 병원도 반대한다. 그 병원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통과했다니 이제 마지막 남은 정치적 결정, 제주도가 불허 결정을 하기 바란다. 왜 역사적 공모에 이름을 올리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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