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연명의료법’에 대한 기대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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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산고 끝에 ‘연명의료’에 대한 제도가 마련되었다. 1월 8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긴 이름의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줄여서 ’연명의료법‘이라고 부르자. 법의 내용은 금방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번은 읽어 보자고 권한다. 법이 만들어진 경과와 법안 내용은 국회의 ’의안정보시스템‘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 읽기 어렵다면 언론이 보도한 요약이나 핵심정리도 괜찮다(라포르시안 관련기사 , 한국일보 관련기사).

법이 만들어졌으니 이미 지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법이 공포되고 1년 6개월이 지난 후부터 시행되게 되어 있고 일부 조항은 2년이 지나야 한다. 2018년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법이니, 본론에 해당하는 논의는 이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선, 이 법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요소를 인정하고 환영한다.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은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새로운 법과 제도가 이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간 점이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삶과 죽음을 규정하는 데에 현대 의학이 깊이 개입되어 있고,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의료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현상이다. 이제 누구나 병원에서 죽고, 그것도 치료받는 도중에 죽음을 맞는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의료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게 되었고, 그마저 ‘반생산적(counterproductive)’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정도가 더 심했다.

역설적이지만, 이 법은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의료화’함으로써 비인간적 의료화를 줄이려 한다. 변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지금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쓸모없는 의료비가 많이 든다든가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겪는 고통이 크다든가 하는 문제는 제쳐 놓자. 당사자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삶을 정리하고 마감하는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면, 약간은 ‘탈의료화’된 죽음, 그리하여 조금은 더 인간화된 죽음의 가능성이 열렸다.

이번에 통과된 법에서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들 의료행위는 현대 의학의 진보인 동시에, 의학적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영화와 드라마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보라). 새로운 법이 왜곡된 상징을 제거함으로써 죽음을 인간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죽음인가가 삶 자체라면, 죽음을 둘러싼 결정에 시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법이 정한 결정 규정, 과정을 두고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통과된 법에서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대상은 ‘임종과정’으로 되어 있고, 이는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법 제2조).

규율하고 처벌하는 법률이 되기에는 모호하다. ‘가능성’과 ‘회복’과 ‘악화’, ‘임박’은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법에서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판단한다고 정해 놓았으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말끔하지 않다. 얼마든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임종과정인가 아닌가 하는 잣대를 통과한 이후에도 누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가가 남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니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당사자가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결정하고 표시했을 때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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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런 것이 없는 경우. 환자가 그럴 뜻이 있었지만 서류를 남기지 않았을 때, 또는 환자의 뜻을 모를 때가 그런 경우다. 법에서는 가족과 의사가 결정하도록 정해놓았지만, 스스로 결정할 때에 비해 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에서 보듯, 가족과 전문가의 의사 결정이 본인을 완전하게 대신할 수 없다.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시비는 더 커질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법이 말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의학적 기준에 따른 것이다.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 하더라도, 남은 생명을 더 연장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누가 재단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당사자라 하더라도 ‘자기결정’의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는 마당에, 본인이 아니라 제3자가 그것을 결정한다면 더욱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 판결을 생각하면, 이 법은 불완전하지만 사회적 성과다. 법이 실질적 논의를 밀고 갈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진정한 진보는 논의와 결정, 그리고 실천을 어떻게 해 나가는가에 달렸다.

 

이 시점에서 강조할 것은 임종의료를 둘러싼 가치와 그것에 대한 판단이 가치중립적이 아니고 사회적 요인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치료비 부담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의 결정이 영향을 받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결정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개입한다면, 이를 ‘자기결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장 구체적인 정책도 보완되어야 한다. 누구나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으려면 법이 다룬 또 하나의 영역,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정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연명의료와 호스피스는 둘로 나눌 수 없을 정도다. 호스피스와 완화의료가 어떤가에 따라 연명의료(예를 들어 항암제 투여)의 의미부터 크게 달라진다.

 

연명의료 논의는 사람의 죽음, 따라서 삶 그 자체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는 것은 빈부와 귀천을 가릴 수 없는 인권이다. 의료 현실, 의료비 지출, 사회적 비용, 법과 행정 등은 모두 부차적인 고려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 통과된 것이 ‘좋은 죽음의 권리’를 논의하고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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