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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과정 못 받은 어린이, 초등 6학년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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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어린이 조기 보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킨다

 

최근 2016년도 누리 과정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중앙 정부와 교육청이 대립하고 있다. 갈등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누리 과정이 중단될 경우 양질의 보육 및 교육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는 아이들이 가장 걱정된다.

누리 과정이란 만 3~5세 어린이들의 보육과 교육 기회 보장을 위해 전국의 어느 어린이집 또는 어느 유치원을 다녀도 공통의 보육·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2012년 3월부터 ‘5세 누리 과정’을 처음 도입하였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2013년에는 만 3~4세로도 확대하면서, 소득과 관계없이 해당 연령의 자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 유아 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누리 과정 사업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생애 초기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동에 대한 체계적인 돌봄은 학업 성적이 낮거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더 높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아동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따라서 누리 과정이 중단될 경우 상대적으로 이들 불우한 아동이 더 많은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가운데 아동 보육 서비스가 이후 아동의 학업 성취도에서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연구가 <소아과학회지>라는 국제 저널에 지난 달 발표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의 줄리 로린 박사 팀은 캐나다 퀘벡 주에서 시행하는 어린이 보육 및 교육 서비스의 효과성을 확인하고자, 퀘벡 주의 아동 발달 추적 연구 자료를 활용하여 출생 이후부터 만 5세 이전까지의 어린이 보육 서비스가 만 12세인 초등학교 6학년 시기의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1997년부터 1998년 사이에 출생한 아동 2120명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추적 조사하였으며, 어린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의 읽기, 쓰기, 수학 과목 시험 성적(100분위 성적)으로 확인하였다. (☞관련 자료 : Child Care Services, Socioeconomic Inequalities, and Academic Performance)

연구자들은 보육 서비스의 강도(주당 돌봄 서비스 이용 시간)와 보육 서비스 유형(보육 서비스 전문 센터 이용 여부), 보육 서비스 이용 시작 시점(얼마나 일찍 보육 서비스를 이용하는지)이 어린이의 학업 성취도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관성이 어린이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하였다.

이때 보육 서비스 관련 특성 이외에도 조사 대상 어린이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고려되었는데, 임신 연령, 어린이의 성별, 신생아위험평가점수, 부모의 교육 수준 및 소득, 직업, 부모 역할, 가족 관계, 부모의 정신 건강, 어린이의 인지 능력, 어린이의 친구 관계, 가정환경 등 출생부터 초등학교 입학 이전까지 아이와 부모, 가족의 주요 특성을 반영하는 총 438개 항목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다.

분석 결과, 취약 계층 어린이들(조사 대상 어린이의 25.9%)의 학업 성취도는 일반 계층 어린이들에 비해 대체로 낮게 나타났지만, 고강도 보육 서비스를 받거나 전문 보육 센터를 조기에 이용한 경우 그 차이가 줄어 일반 계층 아동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낮은 수준의 점수를 보였다. 

취약 계층 어린이들의 학업 성취도는 그들이 받은 보육 서비스의 강도, 보육 서비스 유형, 보육 서비스 이용 시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 주당 35시간 넘게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보육 서비스 형태에 관계없이 그보다 적은 시간을 이용한 어린이들보다 읽기, 쓰기, 수학 과목 성적 모두 크게 높았다. 

또 전문 보육 센터를 조기에 이용한 경우에도 학업 성취도가 높았는데, 전문 보육 센터의 경우 훈련된 전문 인력이 체계적인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일반 계층 어린이들(조사 대상자의 74.1%)의 학업 성취도는 보육 서비스 강도, 보육 서비스 유형, 보육 서비스 이용 시작 시점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그림 1]).

▲ [그림 ] 사회 경제적 지위별 보육 서비스 이용 형태에 따른 학업 성취도(과목별 백분위 점수).

이러한 결과는 취약 계층 아동에 대한 적극적 보육 지원이 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개선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공정한 출발과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들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캐나다와 미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육 서비스에 대한 예산 삭감이 사회적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였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수저 색깔이 자신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현 시대, 공정한 출발이 가능하려면 보육 서비스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확대가 필수다. 현재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누리 과정 예산 편성 문제로 인해 어린이와 부모들이 겪을 피해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사회적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킬 수 있다. 부디 이 문제가 조속히 잘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유원섭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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