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메르스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 누리집에 공개된 보고서만 500쪽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이다 (감사원 보고서). 제대로 보기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조사할 일이 많았다는 뜻일 터.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잘못된 일의 책임자를 찾고 책임을 묻는 것은 더 그렇다.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질병관리본부장이 모든 책임을 졌다. 징계를 받을 다른 공무원도 모두 실무자다.
한참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책임을 둘러싼 투쟁의 뻔한 결과. 세월호가 그랬고, 메르스에서도 진작부터 예상되었던 바다(관련 서리풀 논평.바로가기1, 바로가기2). 용한 점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감사원이 ‘책임의 정치’를 둘러싼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건소 직원까지 징계하라고 했지만, 장관은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장관의 사퇴, 새로운 공직 취임과 감사결과 발표는 시점도 절묘하다. 그뿐만 아니다. 당시 기자회견에 총리, 부총리가 나섰던 것은 홍보용 보여주기라 해도, 이들을 비롯한 최고 권력층이 실제 정책 결정에 간여했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들은 책임과 징계는커녕 감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감사원 감사에 무얼 기대하느냐는 소리가 나오지만, 이젠 이런 비판조차 새삼스럽다. 과거는 물론이고 최근에도 비슷한 시비가 여럿이다. 지난 정권이 저질렀던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을 이제야 감사한 것, 그리고 그 결과는 기억에도 생생하다. ‘책임의 정치’는 감사원의 본래 업무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하지만 행정과 기술, 실무를 탓하는 것으로 ‘책임 묻기’는 끝나지 않는다.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는 죄를 법률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으로 나누었다. 책임을 묻는 자리에 왜 죄를 말하나 반문할 수 있지만, 책임과 죄는 동전의 양면이다(야스퍼스의 맥락은 독일과 2차 대전, 유대인 학살).
일본 사람 가라타니 고진은 야스퍼스의 생각을 받아 책임과 죄를 이렇게 연결했다. “원인을 묻는 한 책임은 나오지 않으며, 책임을 물을 때는 많든 적든 ‘형이상학적’인 것”이다(<윤리 21>, 송태욱 옮김, 사회평론 펴냄). 그가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메르스 감사에도 해당하는 통찰이 아닌가. 감사원 감사는 일부러 미시적 원인에 집중하여 나머지 책임을 숨겼다.
책임을 전환함으로써 (야스퍼스의 분류를 따르면) ‘정치’와 ‘도덕’은 안전해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법률’은 더 불안정해졌고 그 피해는 대중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법률의 지배를 받는 공무원, 메르스와 같은 일을 일선에서 처리해야 할 실무자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감사원이 질병관리본부장의 해임을 요구한 이유에는 이런 것이 포함되어 있다.
“메르스 확산을 신속히 저지하는 데 추적 역학조사 방식의 방역대책이 인력부족 등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당시의 현장 상황을 장관에게 제대로 보고하거나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병원명 등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보고서 439쪽)
보고하기 전에는 장관이 인력 부족도 정보공개 필요성도 몰랐다는 소리 아닌가. 법률적 책임도 따져야 하지만, 실제 상황이 그랬다고 치자. 결론은 보고 부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감사의 본질이 이렇다면 이런 책임 묻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한 가지 시나리오. 공무원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고’하는 것, 그리고 그 증거를 남기는 데(에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세월호 사건에서 구조 책임자들이 보고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법률적 책임조차 더 좁아져 행정적 책임만 남는다.
감사원의 감사가 이런 것이라면, 고치라고 다시 감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녁을 잘못 정한 것이다. 법률적 책임도 제대로 물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정치적, 도덕적 책임은 한참 밖에 있다. 다른 경로를 택해야 한다.
어떤 대안이 있는가? 우리는 ‘시민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제 그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본다. 2015년 6월 29일의 <서리풀 논평>에서 제기한 주장은 아직 유효하다(바로가기).
정부가 주체가 되는 ‘셀프’ 평가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평가를 하겠다고 나선 세월호 사건이 반면교사다. 정보는 은폐되고 평가는 억압될 것이다. 마땅히 대통령의 직무수행까지 포함해야 하나, 그러자고 하면 결과는 뻔하다. 정치권의 지형과 실력, 당정청의 관계로 볼 때 국회에 기대를 걸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정부가 진행할 평가에 민간의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참여에 기초한 평가를 따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메르스 대란 시민평가단’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감사원만 탓하고 있을 수 없다. 제대로 책임을 묻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