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동네 병원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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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퀴즈 하나. 다음 두 뉴스에 같이 등장하는 말은?

 

“의료보험제도 실시 이후 보험가입자들이 의원급을 외면하고 종합병원으로만 몰려들어 큰 혼란을 빚자 대한의학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이와 같은 부작용을 의료계 자율적으로 시정키로 하고 「의료전달체계연구소위원회」를 구성, 앞으로 의원급에서는 원칙적으로 응급 및 외래환자만 취급하고 병원급에서는 입원환자만을 취급토록 한다는 조정원칙을 세웠다.” (동아일보 1978년 6월 14일)

“제대로 안내를 받지 못한 환자들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퍼날랐다. 환자가 다닥다닥 붙은 병실 환경, 가족이 모이는 병문안 문화, 대형병원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려들게 한 의료전달체계 모두 이번 메르스 사태를 키운 원흉으로 지목됐다. 결국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못 돼 메르스 감염자 수는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연합뉴스 2015년 6월 18일 바로가기)

 

정답(또는 그 가운데 하나)은 ‘의료전달체계’. 30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뛰어넘어 같은 말이 또 나왔다. 같은 ‘문제’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의 시간 감각으로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닌데, 끈질기다. 병으로 치면 고질병이라고나 할까.

더 들어가기 이전에 우선 의료전달체계라는 말부터. 단어 하나하나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의료, 전달, 체계,…세 마디 모두 익숙하고 알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셋을 합해 놓으면 ‘악명 높은’ 개념이자 제도로 바뀐다. 내용이 어려우니 의사소통도 쉽지 않다.

 

우리는 이 말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의료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전달이 무엇인지, 누가 주고 누가 받는 것인지 모호하다. 환자를 짐이나 서류처럼 주고받는 것도 아닌데, 환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전달해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굳이 비슷한 이름을 계속 써야 한다면 ‘의료이용체계’라는 말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어떤 병은 어떤 병의원을 먼저 가고, 거기서 해결되지 않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진(또는 합의한) 경로를 지키지 않으면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등등. 말하자면, 의료를 ‘이용’하는 순서와 경로에 규칙을 잡은 것이 의료이용체계가 가리키는 바다(이 글에서는 그래도 익숙한 의료전달체계라는 말을 그대로 쓴다).

 

말 바꾸기부터 시작했지만, 쉽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개념이야 전문가가 해결한다 하더라도, 그 복잡한 의료이용이 현장에서 체계를 갖추고 질서가 생기게 하는 것(“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더 어렵다. 오죽하면 1977년 의료보험(지금은 건강보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시작되면서 제기된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까.

정부가 용감하게(!) 이 고질병에 손을 대겠다고 나섰다(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바로가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의료전달체계가 (바로 그) 메르스 사태를 일으킨 한 가지 핵심 원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메르스의 진단과 처방은 오늘 주제가 아니다. 오늘의 주제, 의료전달체계가 다시 정부의 행동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초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공권력이 나섰으니 무엇이라도 변화가 있을 것인가.

 

일단 발동은 걸린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7월까지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하고, 한 쪽 당사자인 의사협회, 병원협회도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국회와 학계, 언론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대로 간다면, 적어도 의료계 안에서는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온갖 주장이 얽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혁’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는 명확하게 해둔다. 우리도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그리고 긴 시간 범위로 판단할 때 전체 시민의 행복과 편익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이익과 손해를 가늠한 것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말하기는 이르다. 의원은 입원 환자를 볼 수 없게, 대학병원은 외래 환자를 볼 수 없게 할 것인가? 3백 병상은 되어야 입원 진료를 하는 병원이 될 수 있게 하면?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주치의제도를 할 것인가? 몇 가지 대표 질문만 해도 짧게 말할 수 있는 단답형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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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짐작할 수 없으나 앞으로 이런 ‘대안’들까지 다룰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은 출발선에서 그리 멀리 오지 못했으니, 우선 두 가지 원론적 입장을 명토 박아 둔다. 우리의 다짐이자 논의 참여자들에게 향한 요청이다.

 

첫째, 시민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반영되어야 한다. 우선 장애물부터 말하면, 말과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전달체계라는 말도 어렵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내용을 이해하기는 더 어렵다. 폐암을 진단하는 데에 첨단 기법이 새로 개발되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로, 정보와 지식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자.

관점과 이해관계에서는 ‘어떻게’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 의료전달체계는 왜 ‘개선’되고 ‘정비’되어야 하는가? 의원이나 병원의 경쟁이 심하고 경영이 어려워서? 국가적으로 낭비가 심하고 비효율적이어서? 농어촌 지역의 분만이나 응급의료가 문제여서? 선진국 수준의 의료체계를 위해서?

의료전달체계는 걸리지 않은 문제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다. 이 이유 모두와 관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하나하나를 골고루 고려해야 한다. 다만, 보통의 국민과 시민에게 무엇이 좋아지고 도움이 되는지가 판단하는 첫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의료전달체계도 한 가지 수단이자 도구임을 잊지 말 일이다.

 

둘째는 논의와 결정 과정. 이는 민주적 실천에 기초하여 더 사회화되고 정치화되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는데다, 여러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극단적으로 맞부딪치는 갈등과 투쟁의 장이 될 공산이 크다. 모든 이의 경제적 이해가 무겁게 걸려 있는데, 피할 도리가 없다. 과거와 같은 접근으로는 예정된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 명확하다.

양보와 상호이해, 타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전문가 윤리, 애국심은 더욱 거리가 멀다. 정치적 경쟁과 사회적 숙고만이 갈등과 투쟁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 다시, 시민 참여에 토대를 둔, 그리하여 민주적 공공성을 원리로 한 과정을 요구한다. 아마도 지루하고 고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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