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경제만 좋아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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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사회정책과 건강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주관적 건강 평가 수준에서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 15세 이상 한국인의 35.1%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좋다’고 평가하여 OECD 평균인 69.2%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관련 자료 : The Health Status and Health Care Use of Koreans: A Glance Through OECD Staistics)

주관적 건강 상태뿐만이 아니다. 사회의 전반적 삶의 질을 반영하는 지표들 중, 자살률과 노동 시간과 같은 부정적인 지표에서는 최상위를, 행복도와 같은 긍정적인 지표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한다는 사실은 ‘헬조선’의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OECD 평균보다도 높은데, 이는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이 불행하고 좋지 못한 건강 상태로 오래 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네 일상적 삶의 조건들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반영하며,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나 불완전하게 작동하고 있는 사회 보장 체계 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사회과학과 의학(Social Science & Medicine)>이라는 국제 학술 잡지에는 바로 이러한 경제 침체와 사회 정책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영국 리버풀 대학의 벤 바르 교수 팀은 영국 잉글랜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약 10년 간 지속된 경기 침체와 그와 동시에 진행된 복지 개혁이 정신 건강의 불평등 경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주목하였다. (☞관련 자료 : Trends in mental health inequalities in England during a period of recession, austerity and welfare reform 2004 to 2013)

영국에서는 2008년부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하고 실업이 증가하면서 정신 질환 유병률과 자살률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경제가 회복되고 고용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정신 건강 수준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는데, 연구팀은 이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연구 팀은 ‘분기별 노동력 조사(Quarterly Labour Force Survey)’ 자료를 이용하여 잉글랜드 지역의 생산 가능 인구 가운데 정신 건강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파악하였으며, 이때 정신 건강 문제는 우울증, 신경증, 불안, 정신 질환, 공포증, 공황 장애 혹은 기타 신경 질환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로 정의하였다.

분석 결과, 우선 정신 건강 문제 보고 비율이 높은 집단은 교육 수준이 낮으며 노동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여성 중 교육 수준이 낮은 집단은 높은 집단에 비해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질 확률이 1.29%포인트, 남성은 1.36%포인트 높았으며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 집단은 참여하고 있는 집단보다 10~15%포인트 높았다. 즉, 복합적인 취약성을 가진 집단에서 정신건강 역시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잉글랜드 지역민들의 정신 건강 수준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와 2009년 이후가 그 경향성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앞의 기간 동안 정신 건강 문제의 발병률은 약간 증가하기는 하나 비교적 완만하고 안정된 추세를 보인 반면, 2009년 이후에는 더 가파르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각 경제 지표의 영향력을 살펴보니, 실업률이 1%포인트 높아질 때마다 정신 건강 문제 발병률은 0.15%포인트, 주급 임금이 10파운드 하락할 때마다 0.03%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업과 임금 하락으로는 정신질환 유병률 증가의 일부(약 36%) 밖에 설명이 되지 않고, 특히 2009년 이후로는 실업률이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정신 건강 문제의 증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요인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면, 과연 어떠한 요인들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킨 것일까? 연구 팀에서는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우선 첫 번째로 불안정한 고용의 증가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즉, 영국에서는 2011년 이후 고용이 증가했으나 이러한 증가는 주로 시간제 일자리, 호출형 근로 계약(zero hours contracts) 및 자영업을 포함하는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 증가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정신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노동 시장 미참여자들에게서 관찰된 정신 건강 문제의 증가 현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데, 그런 측면에서 두 번째 설명은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2010년 이후 시행된 복지 개혁이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으로, 이 시기 영국에서는 복지 수당을 받기 위해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해야 했고, 직업 훈련을 받고 무급의 현장 실습에 참여해야하는 등 수급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동시에 미디어에서는 복지 수급권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보도가 증가해 왔고, 수급권자에 대한 오명이 확대되면서 잠재적으로 이들에 대한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복지 수급권자의 대다수가 연구에서 나타난 정신 건강 취약 집단, 즉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질 확률이 높은 집단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은 보다 타당성을 갖는다.

영국의 사례에 한정되어 살펴보았으나 한국에서도 복지 정책의 변화가 취약 계층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이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저성과자 해고와 주 60시간제 도입, 수습 기간 4년 등을 포함한 노동 개혁과 누리과정 예산 지원 중단, 장애인 연금 삭감과 같은 복지 수당 감축 등은 취약 계층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이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장기간 경기 침체 상황에서 정신 건강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회 정책이 특히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 장치로서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경기만 회복된다고 해서 우리가 더욱 행복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영국의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유념해야할 것이다.

송리라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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