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누리과정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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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사달이 났다. 중앙 정부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교육 공통프로그램) 예산을 시도 교육청에 미루면서 보육 대란이 현실이 되었다. 어떤 시도는 아예 예산이 없고, 그나마 나은 데라고 해야 일부를 마련했을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대통령과 예산 당국은 당장 태도를 바꿔야 한다. 누가 봐도 중앙 정부의 억지에서 출발한 사태다. 국가사업(누리과정)에서 사업만 넘기고 예산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이야기인가. 교육 교부금을 이전했느니, 지방재정법 규정이 어떻다느니, 이런 말을 옮기고 논박하는 것도 부끄럽다. 2012년 이후 같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해답은 명백하다.

여당은 교육청과 교육감이 정치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것은 정부, 여당이 받아야 할 몫이다. 제대로 논리를 갖추지 않은 채 노골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면, 기꺼이 비싼 비용을 치르며 감수하겠다는 태도 아닌가. 누리과정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첫째, 복지를 완전히(!) 재정 문제로 바꿔 놓았다. 누리과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복지는 ‘돈 먹는 하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공적으로 연대하는 사회적 협동이자 실천으로서의 보육과 교육은 없다. 돈이 드는 개인 서비스일 뿐이다. 그 돈을 누가 내는지만 중요하니, 복지는 돈이요 곧 부담이다!

정부와 예산 당국은 누리과정 논란이 복지재정의 산 교육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복지를, 그리고 복지 확대를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똑똑하게 보라.” 설마 이럴까 싶지만, 끝장까지 몰고 가서 생생한 교훈을 원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둘째, 복지 영역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노골적으로 유도한다. 정부와 여당은 교육청이 누리과정에 쓸 충분한 예산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거짓말’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연합뉴스 기사 바로가기). 예산 총액만 보면 무슨 돈이든 있긴 할 것이다. 게다가 교육 예산의 70%는 중앙 정부에서 나가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라지 않는가. 그 돈이 그 돈이니 돌려서 누리과정에 쓰라는 소리다. 언뜻 들으면, 그동안은 쌓아놓았던 돈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천만의 말씀. 교육 사업이나 교육환경 개선에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중앙 정부도 모르지 않을 터, 돌려쓰라는 소리다. 정부는 예산 운영을 개선하면 된다고도 주장하지만, 그것 역시 정도가 아니다(실무 문제를 비교적 균형 있게 보도한 기사 한 가지를 참고할 수 있다, 기사 바로가기).

중앙 정부는 내부 조정과 효율화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말이 좋다. 예산 총량 안에서 보육 예산을 지출하라는 것이라면, 그 조정은 다른 데에 쓰는 예산(교육)은 줄이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가능한지는 제쳐 놓자. 서로 다른 용도의 예산을 두고 다툴 때 자원배분의 정치가 작동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이나 보육과 같은 사회 서비스에서 자원배분은 정치 그 자체다. 어떻게 대상을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재정을 누가 부담하는가에 따라, 이해관계는 나뉘고 새로 만들어진다(관련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지금처럼 중앙 정부가 계속 버티면 보육과 교육의 갈등은 피할 수 없고, 결국 복지를 둘러싼 분할 통치가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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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교육 자치에 대한 공격. 누리과정 논란을 통해 교육청과 교육감은 유례없이 큰 정치적 관심을 받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 효과는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 자칫 교육 자치가 문제라는 생각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

근거가 희미하고 앞뒤 연결도 잘 안 되지만, 현실 정치가 언제는 그렇지 않았던가. 시비가 있고 책임을 혼란스럽게 다투는 일에서는 흔히 정치의 비효율이 공격을 받는다. 교육청과 교육감의 ‘정치성’은 교육의 ‘비정치성’을 명분 삼아 더욱 격렬한 비난 대상이 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육 자치를 무력화하겠다는 시도가 심상치 않다. 처음부터 이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겠지만, 정치는 역시 역동적인 것. “교육은 비정치적”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주장이 이 일을 계기로 더 힘을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에 강조점이 있든,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복지 정치를 가볍게 볼 수 없다. 복지 재정의 어려움, 그리고 복지와 부담의 이해관계는 누리과정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 소득보장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곧 닥칠 건강보험의 재정 폭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나아가 노동과 일자리를 둘러싼 지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정화(화폐화), 선별, 탈정치화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복지를 배제하려는 역설적 복지 정치가 상황을 독점하게 둘 것인가. 가장 중요한 저항의 힘은, 다시 역설적이게도, ‘대항’ 복지 정치와 그 이념에서 나온다고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고 누리과정 논란의 한복판에서, 대안의 바탕이 될 “무엇이 가치이고 무엇이 수단인가”를 묻는다.

누리과정과 그 재정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앞으로 연달아 등장할 복지와 복지 재정 논란은 또 어떤가. 재정은 좋은 삶과 사회로 가는 수단이자 방법, 즉 하나의 유력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적 토대를 무시하지 못하지만, 수단이 본질을 삼키게 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단(어떻게)보다 가치(무엇을, 왜)를 먼저 묻자. 그리고 수단은 가치에 봉사해야 한다는 본분에 충실하게. 이것이 정부와 여당, 그리고 모든 현실 정치세력을 압박할 새로운 복지 정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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