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다. 이번이 ‘국회’의원 선거라는데, 2년 전 ‘지방’선거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이 나뉘고 공천이 시끄러운 것이야 잠깐이고, 이제 형형색색 옷을 나눠 입은 후보자가 나를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중이다.
강력한 기시감. 2년 전, 시장, 군수, 구청장 뽑을 때와 하나도 차이가 없다. 아직도(!) 모든 약속은 이 동네에 무얼 짓고 부수고, 아니면 금방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진보’ 후보라고 자처하는 후보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민의 요구에 ‘생활밀착형’ 공약이라고 치장하지만, 그저 일차적 욕망에 충실하게 부응할 뿐이다. 바라기는, 그 욕망을 부추기지만 않아도 좀 낫겠다 싶다. 노골적 사례가 워낙 많지만 두 가지만 예로 든다. 특별히 더 심한 것이 아니라 쉽게 눈에 띄는 것을 골랐다.
“제가 전관예우를 발휘해서 확실한 예산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중략)… “제가 비록 경제부총리는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전관예우라고, 제가 친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의원은 ‘전관예우’를 활용한 예산폭탄론을 들어 “여기는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데 돈 없이 뭐가 되겠나”(기사 바로가기)
“4일 현재까지… 대학병원 유치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들이 확인된 것만 12명에 이른다. 여기에 시장 혹은 시의원, 시의원 예비후보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17명이 대학병원 유치를 거론했다…(중략)…만약 이들의 공약이 모두 실현된다면 충북 제천을 필두로 충남 서산・흥성, 세종시, 경기 파주・평택・양주・김포, 전남 광양・여수・순천, 경남 김해 등 총 12곳 이상에 대학병원급 대형병원이 들어서게 된다.”(기사 바로가기)
우선,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이런 것인가 싶어 한숨부터 나온다.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표성이란 ‘국가적’ 사안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가. 중고등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할 때 농촌지역의 국회의원은 마땅히 농민을 대표해야 한다. 청년실업, 비정규노동이 많은 지역의 대표자면, 노동정책, 고용정책에 대해 지역구민의 요구를 대표하는 것이 맞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지역의 이익, 그것도 예산을 따오겠다는 ‘브로커’ 역할 이상을 찾을 수 없다. 지방정부의 서울사무소 소장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도 아니면 비즈니스에 나선 지역의 개발업자처럼 보인다. 재래시장을 새로 고치고, 쓰레기처리장을 어디로 옮긴다는 약속이 태반이다. 이번 선거가 시장을 뽑는 선거였던가, 영 혼란스럽다.
대표성의 정체도 문제지만, 그 약속이 한결같이 1960년대 모델이라는 것이 답답하다. 1960년대가 아니라 더 멀리 건국 시기의 것인지도 모른다. 도로, 다리, 공단, 인터체인지, 의과대학과 병원,…무슨 개발에 신설, 확장, 정비가 다른 약속을 압도한다. 선의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지역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 토건사업은 경제와 경기를 명분으로 내건다. 지금 역을 짓고 고속전철을 유치하겠다는 것도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가 아니지 않은가.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모자라니 여기라도 희망을 거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정말 도움이 될까? 백 걸음을 양보해 ‘토건’ 공약이 ‘전통적’ 경제라도 일으킬까? 안타깝게도 답은 부정적이다. 사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실패’다. 국회의원 선거는 아니었지만, 4대강 사업이 그랬고 아라뱃길이 그렇다. 그 장밋빛 공약의 참담한 결과란.
“건설 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0.3~0.4%의 성장 기여도를 보이고 있다”…(중략)…”지방 예산의 32%를 건설 예산으로 쓰는 것이 지자체의 현실”…(중략)…”국고보조금 지방비 매칭제도의 경우 국회의원들에 의해 악용되는 측면도 크다”며 “자신의 지역구에 전시행정 업적을 만들려고 불필요한 도로예산 등 토건 예산을 따오면 그에 맞춰 지방비 분담을 하느라고 정작 절실한 복지사업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기사 바로가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 경제, 그리고 사회를 왜곡하고 방해한다. 지방정부의 토건 예산 때문에 복지사업을 못 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눈앞의(내 임기 안에 효과가 나야 하면) 토목경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새로운 경제 모델은 제대로 이야기하는 곳도 드물다.
경제 살리기, 경기 활성화, 개발, 공단 유치, 의대 신설,…주민의 절박한 요구를 상징과 바람, 분위기로 눙치는 것은 곤란하다. 산부인과가 없어 분만도 안전하게 못 하는 지역, 응급환자가 생겨도 제대로 이송도 못 하는 지역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동의한다면, 문제는 해결 방법이다. 그것이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도시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의대(병원)를 짓는 것인가?
이것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공약 때문에 다른 방도를 궁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거’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한탕주의’에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꼴이다.
이 모든 것은 당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지역구를 나눠 한 사람씩만 뽑는 선거니, 그럴지도 모른다. 구조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이번 총선이 끝나는 대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더 근본은 그냥 두더라도, 비례대표를 크게 늘리고, 소선거구제를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
당장 선거에서는 주민의 요구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몇십 년째 비슷한 개발 공약과 구닥다리 경제를 말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아야 한다. 시장 후보인지 국회의원인지 잘 알 수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참여의 대안이 있는가? 특히 오늘의 주제에 대해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소수 정당인 녹색당의 목소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바로가기). 사실 이 당의 총선공약집 제목이 “성장 중독 탈출 행복이 우선이다”인데다, 핵심 의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토건예산 상한제 및 연도별 감축제를 도입하여 녹지축 회복과 재자연화를 추진하겠다. 화학물질관리 및 지역사회알권리법을 제정하여 환경사고 없는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 (공약 바로가기)
이 당의 입장에 모두 동의하는가 아닌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주장의 초점은 모든 정당과 후보자가 “경제와 성장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좀 더 압축해 말하면, 모든 정치세력이 새로운 경제와 성장모델을 구상하고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장 없는 번영’은 필요한가? 그리고 가능한가?
이번 총선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그 어떤 정당, 어떤 후보라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정당과 후보가 그런 공약의 결과를 의식할 정도가 되어야, 크고 작은 정당이 모두 바뀌고 정치가 바뀐다. 그리 되어야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