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1차 의료를 강화하면 건강 불평등이 개선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2016년 공중보건의사 제도 운영 지침>을 발표했다. 운영 지침에 따르면, 그 동안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 지역 보건소에 2명 이내 배치되었던 공중보건의사 인력이 올해부터 1명 이내로 축소되고, 2017년부터는 아예 배치되지 않을 예정이다. 도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의사 인력이 적은 지역도 공중보건의사 인력 축소 대상이다. 보건복지부는 그 동안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낮은 지역 주민을 위해 공중보건의사를 배치하여 운영하던 보건지소도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지역별 의사 인력 격차는 여전히 크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서울은 2.8명으로 세종 1.2명, 경북 1.3명보다 2배 더 많고,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 광역시 지역은 2.2명인 반면 강원, 충남, 충북, 경남, 전남 지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인력은 1.7명 미만 수준이었다. (☞관련 기사 : 인구당 의사 수 지역별 편차…경북이 서울의 절반도 안 돼)
공중보건의사 인력 감소 문제는 의료 취약 지역의 의료 접근성을 보다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2010년 5,179명이던 공중보건의사 인력은 2015년 6월 기준 3,632명으로 30% 감소하였는데, 36개 의과 대학이 과거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에서 다시 6년제 의과대학 체제로 전환되어 의사 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하는 2020년 이후에나 공중보건의사 인력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 인력의 지역 간 불균형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라는 국영 의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2003년 영국 정부는 보편적인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 강화를 통해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2010년까지 지역별 1차 진료 의사 인력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로 하였다. 구체적으로 영국 정부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과 중심의 지불 보상 제도, 의사 인력이 적은 지역에 대한 1차 의료 담당 의사 인력 공급, 만성 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1차 의료 지침 개발과 같은 정책을 시행하였다.
요크 대학교의 아사리아 교수 팀은 바로 이러한 영국 정부의 노력이 1차 의료에 대한 접근성과 질, 건강 결과에 미친 영향을 지역별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2016년 1월 학술지 <역학과 지역 사회 보건(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에 보고하였다. (☞관련 자료 : How a universal health system reduces inequalities: lessons from England)
연구자들이 평가를 위해 활용한 지표는 지역별 1차 의료 공급 정도를 평가하는 인구 대비 의사 수(General Practitioner, 영국의 1차 의료 전담 의사), 1차 의료의 질 평가를 위한 16개 지표들의 합산 점수(0~100점), 천식과 당뇨병 등 1차 의료를 통해 잘 관리하면 입원 치료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만성 질환이지만 응급 및 입원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의 비율, 75세 미만 심혈관 질환 사망률 등 총 4개 지표였다. 연구자들은 2004년과 2011년의 잉글랜드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이들 지표들의 변화를 분석하여 영국 정부의 정책 효과를 평가하였다.
연구 결과, 건강 불평등 개선을 위한 영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의사 1인당 주민 수의 평균이 2004년 1,814명에서 2011년 1,689명으로 7%포인트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1차 의료 의사 수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증가하여 지역별 의사 수 격차는 크게 감소하였다. 또 1차 의료 서비스에 대한 질 평가 점수는 2004년 76.9점에서 2011년 86.3점으로 12.3%포인트 증가하였으며, 예방 가능한 입원과 75세 미만 심혈관 질환 사망률 또한 각각 10.9%포인트, 21.2%포인트 감소하였다.
다시 말해, 영국 정부가 건강 불평등 개선을 위해 1차 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결과, 전반적으로 주민들의 1차 의료 서비스 접근성, 1차 의료의 질 및 주민들의 건강 수준이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격차도 크게 감소한 것이다. 다만, 예방 가능한 입원과 사망률과 같이 정책의 효과가 나타는데 좀 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표들에서는 상대적으로 개선의 효과가 적었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 10일, 보건복지부는 지역 간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 및 건강 수준 격차 해소 등을 위한 정책을 포함하는 <2016~2020년 공공 보건의료 기본 계획>을 발표하였다. 계획 중에는 분만 취약지, 응급 의료 취약지 등 의료 취약지 지원 강화 방안과 더불어 1차 의료 취약지에 의료인들 간의 원격 의료 제공 체계를 구축하고, 의료 취약 지역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사를 우선적으로 배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의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의료 취약지의 1차 의료 접근성이 나아지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더 심각한 점은 의료 취약지 주민의 건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속적으로 책임지는 1차 의료의 역할을 여전히 한시적으로 근무하고 떠나게 되는 공중보건의사에게 기대고, 의사 인력 확보 대신 원격 의료로 대치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을 개선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전향적인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유원섭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