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건강 민주주의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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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민주주의를 합시다

최 용 준(건강정책연구센터, 한림대)

 

지난 6월 2일, 정부는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제3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ealth Plan 2020, 이하 건강계획)을 심의, 의결하였습니다. 이 건강계획은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국가가 수립하는 계획, 즉 ‘국가’ 계획입니다. 정부는 향후 십 년 동안 이 계획을 바탕으로 국민의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건강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여러 정책을 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종합’ 계획입니다.

 

십 년 동안 추진할 ‘국가 종합’ 계획이니만큼 계획서는 83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며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2008년 9월부터 일 년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20 총괄 전략 수립을 위한 정책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전문가들과 관계 공무원들이 건강계획 수립 과정에 관여하였습니다. 내로라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세부 실행 계획 작업을 위한 분과위원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의견 수렴에 응한 학회만도 무려 80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정부가 주어진 여건 아래서 건강계획 수립에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번 건강계획에서는 민주주의가 실종되었습니다.

 

의문이 들 것입니다. 건강계획에 무슨 민주주의? 사실 민주주의만큼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 참뜻을 두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는 개념도 없을 것입니다.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정수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정당들이 다양한 집단의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고 공정한 규칙 아래 경쟁하는 것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또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 이념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사회 운영 원리 내지 방식의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해석의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 문명사회의 규범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누구나, 적어도 겉으로는 누구나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민주주의의 의미를 짚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이번 건강계획 수립 과정에서 과연 민주주의적 가치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하거나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공청회가 한 번 열렸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자리에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들렸을까요? 그처럼 방대한 내용에 대한 의견 수렴을 일회성 행사로 대신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입니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 수십여 개의 학회가 자문에 응했다고 하나 과연 그 학회에 속한 수백, 수천의 회원 중 건강계획에 관하여 들어본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건강과 보건의료 문제를 연구한다는 학자나 연구자들조차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국가 종합 계획’이 과연 온전한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요?

 

6월 2일 건강계획 심의, 의결 후 정부나 관계 기관이 보인 태도도 문제입니다. 어렵사리 수립한 건강계획인데 시민들은 고사하고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언론인들, 심지어 보건의료 분야 공직자들조차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건강계획을 바탕으로 정책을 펴 나가기에 앞서 건강계획 수립 사실과 존재 자체부터 알려야 할 판입니다. 정부나 관계 기관이 이런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사회의 건강,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은 보건의료라는 수단만으로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보건의료 외의 다양한 부문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보건의료 영역에 국한하더라도 보건의료 전문가들뿐 아니라 환자들과 시민들의 공동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그와 같은 협력과 공동 노력은 참여와 합리적 토론, 그에 따른 의사 결정을 바탕으로 삼을 때 꽃필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 토양을 가꾸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건강계획을 전문가들과 시민들에게 알리는 데 힘쓰고,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만들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정비하여 건강계획에 관한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 내며, 이러한 활동을 정부 조직과 공공 기관의 역할로 확립해 나가야 합니다.

 

정책의 주체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또 이런 일들은 분명 민주주의, 민주적 가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도 건강 민주주의를 합시다!”

 

 

*건강수명: 평균 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하여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기간.

**제3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전문 파일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의 정보>사전정보공표>사전정보공표자료>주요업무계획 자료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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