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한국사회가 자행하고 있는 아동에 대한 ‘제도적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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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연이은 아동 학대 사건 보도와 그에 따른 분노 여론은 2014년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 학대 처벌법)’이 제정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법 제정 후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동 학대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할 아동 학대 뉴스를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고 있다.

모든 아동이 학대받지 않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는, 그리고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가족법연구> 제30권 2호에 발표된 법학 박사 안문희의 ‘2016년 3월 14일 프랑스 아동 보호법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최근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를 보면 해당 법(아동 학대 처벌법)이 아동 학대에 대한 예방 조치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동 보호를 위한 실효성이 있는 규정인지 의문”이라며 프랑스의 아동 보호법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아동 보호에 관한 2016년 3월 14일 법’은 ‘아동 보호에 관한 2007년 3월 5일 법’이 약 10년 만에 개정된 것이다. 개정 전 아동 보호법은 아동 보호에 관한 법적 개념을 정의하고 예방의 핵심적인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위험에 처한 아동의 보호에 있어서 사법적 개입 기준을 재정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 지역 간 격차, 지역 간 공조를 위한 국가적 조정의 부재, 관련 전문가에 대한 교육의 부족, 관련 부서 간 협력의 결여, 예방책 마련의 지연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은 아동에 대한 또 다른 학대인 ‘제도적 학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아동 보호를 위한 장치로서의 실제적인 역할 수행에 미흡하다는 인식과 비판이었다.

이에 따라 개정된 2016년 3월 14일 아동 보호법은 49개의 규정,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장은 아동 보호에 있어서 국가 및 지방 간 교류의 증진, 두 번째 장은 아동 보호 기관에 위탁된 아동을 위한 조치의 안정화, 세 번째 장은 아동의 지위와 아동 보호를 위한 장기 조치와의 조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동 보호의 개념이 재정의되었다.

아동 보호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곧 아동 보호의 범위나 목적을 설정하는 것이다. 아동 보호라는 개념이 자리잡던 시기, 아동 보호는 ‘학대받거나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아동 보호는 ‘사회적 서비스나 공공 정책과 같은 사회적 폭력, 미성년 범죄, 빈곤, 사회적 또는 직업적 배제 및 차별, 학교나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불만족, 사이버 범죄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양육을 받을 수 없는 미성년자가 처한 모든 상황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2016년 3월 14일 아동 보호법은 △ 첫째, 아동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하고 △ 둘째, 아동의 육체적, 감정적 및 사회적 발달을 지원하며 △ 셋째, 아동의 건강, 안전, 윤리 및 교육을 보장하는 것을 아동 보호의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아동 보호의 대상을 ’18세 미만인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위태로운 어려움에 직면한 21세 미만의 성년인 자’까지 확대해, 성년으로서 완전히 자립하지 못하고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젊은 성년자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아동이 단지 연령이 18세가 되었다고 해서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거나 보호가 불필요한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21세 미만의 성년자에게도 성년 이후의 3년 정도의 기간을 통해 국가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아동 보호의 원래 목적에 부합한다”고 평가하며, “만 18세 미만인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의 ‘아동 복지법’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한다.

둘째, 예방적 조치(행정적 개입)를 강화함으로써 아동 보호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프랑스의 아동 보호를 위한 정책은 크게 행정적 개입과 사법적 개입으로 나뉜다. 행정적 개입은 일차적, 원칙적 조치로, 사법적 개입은 보충적, 사후적 조치로 규정된다. 아동을 위한 지역심의회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지역심의회의 예방적 조치(행정적 개입) 수행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법적 개입에 앞서 사전적, 예방적 차원의 문제 해결이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아동 보호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저자는 “행정적 개입을 통한 아동 보호 조치는 사전적, 예방적 조치로 아동에게 사법적 개입이 이루어지기 전에, 다시 말해 아동이 위험에 처해지기 전에 아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가 아동의 보호를 위해 어떠한 사전적, 예방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최근, 납부 능력이 없는 아동 청소년에게까지 국민건강보험료 납부 독촉장을 보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몰상식한 행태가 알려졌다. 행정적 개입을 통해 사전적, 예방적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국가가 아동을 ‘제도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건강보험료 납부 능력 없는 초등학생에게 독촉장 보낸 건강보험공단초등학생에게 건보료 부과 독촉한 공단에 비난 쏟아져)

아동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취약한 집단이다. 국가와 사회는 아동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 아동에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고, 부모가 내지 못한 보험료를 연대 납부할 의무를 지우며, 체납 독촉 고지서까지 발송하는 행위는 명백한 ‘제도적 학대’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에게 공적 건강보험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건강보험의 취지와 ‘사회적 연대’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사후적, 사법적 수단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정적 개입을 통한 사전적, 예방적 장치가 있기는 한 것인가? 건강보험처럼, 아동의 건강을 위한 예방적 정책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도적 학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심하게 살펴보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서상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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