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이 표현한 대로 “공중보건의 위기”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다.
어디 이 뿐인가.
콜레라가 발생하자 바로 ‘후진국형’ 질병이란 말이 붙었다. 이런 ‘명명’은 마땅치 않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후진(後進)’국은 잘못된 용어다. 정확하지도 않다. 도대체 무엇이 후진적이란 말인가? 어떤 나라나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부터 드러낼까 걱정스럽다.
어느 나라에서든 콜레라가 생길 수 있다. C형 간염, 결핵, 지카 바이러스 감염도 마찬가지다. 소득이 높다고 해서, 또는 공중보건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아예 모든 감염병이 사라질 수는 없다. 공항과 항구에서 외래 전염병을 모두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후진국임을 나타내는 징후는 오히려 질병 발생 이후다. 공중보건 문제가 생겼을 때, 당장 어떻게 대응하고 그 후에 무엇을 고쳐 새로 준비하는가를 보면 선진과 후진의 실마리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말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핵심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어떤 모양인가. 손닿는 대로 몇 가지를 추려도 이렇다.
질본은 추가 환자 발생에 대비해 ‘콜레라 대책반’을 편성하는 한편 거제시와 함께 거제시보건소에 현장대응반을 설치하고 시도‧시군구 담당자와 24시간 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질타와 일벌백계, 대책반, 현장점검, 24시간 비상대기, “만전을 기하다”….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참으로 익숙한 전통적 대응 방식이다. 언론보도의 뒤안길을 생각하라. 대부분은 보이기 위한 것(이른바 ‘전시 행정’)일 뿐,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이런 것을 ‘후진국형’이라 불러야 한다.
작년 이후 공중보건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실력을 시험했다. 메르스만도 아니다. 지카 바이러스, 어느 대학의 실험실 폐렴, 가습기 살균제 사건, C형 간염, 결핵,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등이 이어졌다(모두 공중보건 또는 그와 관련된 문제다).
더하고 덜한 것은 있지만, 어느 사회에서든 생길 수 있고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자 사고, 질병이다. 종류와 특성, 강도만 다르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반응 시스템. 하나가 아니라 종합으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작년 이후 공중보건 시스템이 나아진 바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전이 없다고 말하는 하나의 상징. 공중보건 위기의 컨트롤타워조차 정비되지 않았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 대표로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관리센터장이 콜레라 발생과 대책을 브리핑했는데, 그는 행정고시 출신의 행정 공무원이다. 공무원 경험으로도 복지자원, 장애인정책, 한의약정책을 다룬 경력이 대부분인 데다, 현직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대국민 브리핑에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공중보건체계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범위를 넓히면 더하다. 메르스 이후 국가 방역체계를 새로 만든다고 했지만, 정말 ‘국가체계인지, 아니면 메르스 대응체계 또는 신종 감염병 체계인지 의심스럽다. 다음과 같은 언론 보도를 보면, 그마저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감염 예방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감염 의심환자 선별 절차를 마련했다. 응급의료센터에 음압격리 195병상, 일반 339병상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대부분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정도라도 제대로 되면 이번에 문제가 된 콜레라와 C형 간염을 막는 데에 도움이 될까? 아니다, 과녁은 곳곳을 옮겨 다닌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떠오른다(‘신종’ 감염병!). 그 어떤 국가대책도 메르스용, 지카 바이러스용, 또는 결핵용에 그쳐서는 콜레라에는 무용지물이다. 폭염 피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국가 시스템을 강조한다. 심장으로부터 모세혈관에 이르기까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길 것이 틀림없다. 시스템이 없으면, 또는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질타와 일벌배계, 비상대비태세, 24시간 근무, 대책반, 연막 소독을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작년 11월 <서리풀 논평>에서 주장한 바를 그대로 되풀이해야 하겠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이번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합적이다. 한두 가지 원인에 대한 사안별 대처가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스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고 단편적인 미봉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관료주의적 미봉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지 않다. 여론 때문에 예산 몇 푼이 늘어나거나 역학조사관 항목이 되살아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시스템”이 멈춘 상태에서 무슨 시스템이 만들어지겠는가. 망가진 시스템이란 한 마디로 국가 수준의 우선순위와 지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시스템을 말한다.
감염병이든 공중보건위기든, 또는 방역체계든, 국가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리더십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을 맡은 담당 분야 관료나 부처가 가진 권한 밖의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예산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정책과의 조화나 협력, 다른 부처와의 조정은 장관이나 차관, 질병관리본부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지금 정부가 내놓은 건강과 보건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고 메르스 이후에 더 분명해졌다. 공중보건 위기나 신종 감염병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수준, 초점은 “돈이 되는 의료”에 모인다. 장관은 원격의료 전문가에 차관은 경제부처 출신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는지 보건복지부의 보건산업정책국장 자리에 산업통산자원부 출신을 앉혔다(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럴 힘이 없다!). 이 마당에 누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국가방역체계’에 돈과 에너지를 쓰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그 사이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답답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