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지금 장차관과 비서관들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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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황당함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직접 고백한 일만 하더라도 상식을 한참 벗어나지만, 의심을 받는 일 대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24시간 밀착 체크했던 청와대 초대 의무실장도 최순실 담당의사로 대통령 자문의가 된 김상만 씨를 알지 못하며, 김 씨가 작성한 의무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김 씨가 자문의가 됐다는 것도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며 “진료를 하러 오지 않아 일면식도 없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국가 2급 비밀이라는 대통령의 건강관리가 이런 식이면, 다른 일, 예를 들어 국방과 외교인들 제정신이었을까. 무기 로비스트 누구를 만났느니 베트남 대사가 어떻게 발탁되었느니 하는 일을 보면, 이게 국가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공공은 그만두고라도, 여염집 가장만도 못한 작고 작은 사인의 의식과 행동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했는가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 한 가지가 그 사이 그 많은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 사정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적 연결망이야 끼리끼리 모였으니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치자. 공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을 그 많은 정치인, 관료, 교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적극 가담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을 탐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라, 대통령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정을 어지럽혔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통령이 ‘국정‘을 ‘사정’ 또는 ‘가정’으로 망가뜨리는 과정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이다. 대통령직은 그 어떤 자리보다 국가적, 공적 직위이므로 완전히 숨을 수 없다. 또한, 온갖 자질구레한 일부터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일을 보고 들은 사람들, 또 좋건 싫건 개입한 사람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가장 이상한 사람들은 관료들이다. 특히 고위관료들은 충분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나는 모른다 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고치기는커녕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과 결정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들어오는 것을 모두 보았을 텐데, 다들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있었던 정도를 넘어 사사롭게 결정된 정책을 수행하느라 앞장선 공무원도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정책에 동의해서 또는 신념으로 그랬다고 믿지 않는다. 상당수 정책은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관료의 ‘영혼 없음’을 핑계 삼아 앞장서거나 밀어붙였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익숙한(!) 해명을 믿으란 말인가.

 

“보건복지부는 10일 최순실 씨가 다닌 것으로 확인된 차병원에 대해 정부가 각종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차병원 관련 사안은 법령과 예산 등 통상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된 것이며, 최순실 특혜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앞서 JTBC 뉴스룸 등은 지난 9일 최순실 등이 다니는 차병원에 줄기세포 연구 조건부 승인,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192억원의 국고 지원, 차병원 연구소에서 간담회 개최 등 각종 특혜를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윤소하 의원의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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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내부 고발자 한 명도 없었던 이 아득하고 아찔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관료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전제적 권력에 예속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된 결과이다.

 

첫째, 권력이 전횡하고 관료는 노예가 된 것. 이 정부가 중앙 부처 과장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을 철저하게 길들인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정유라 씨의 승마대회 성적 시비를 조사했던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을 대통령이 직접 거명하고 좌천을 지시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알려지면, 공무원은 그야말로 꼼짝도 못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의 정책 관심사를 챙기는 것이야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것이 사적인 업무와 관심에 동원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사로운 일을 챙겨 심기에 맞게 처리하라는 것은 공무원을 개인 집사나 하인으로 여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봉건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수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 관료는 왜 그리하는가. 자리를 보전하거나 출세하는 것이 지상목표라면, 그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은 5년만 지나면 바뀐다고 하지만, 그 시기에 거쳐야 할 자리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관료들은 어떤 정권에도 잘 ‘살아남아야’ 한다.

 

자리를 잃으면 생계가 문제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고위 관료의 행동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생계와는 무관한 고위 관료, 예를 들어 장차관이나 수석비서관도 그리 다르지 않다. 전제적 봉건 권력과 그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만난 결과는 참담하다.

 

둘째 이유는 정말 ‘영혼’ 그 자체의 문제다. 현대 국가에서 관료주의가 심해지면, 관료는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에 매몰되기 쉽다. 도구적 합리성은 목표에 이르는 최적의 수단, 그리고 효율성을 추구할 뿐 목표와 그것의 가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정부에서 많은 관료는 목표와 지시를 위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무리 이상하고 불합리해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결과는 성찰 없이 도구적 합리성만 추구할 때 나타난다. 흔히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공무원의 ‘영혼 없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재벌과 대기업의 간부도 이런 관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대부분 회사가 철저한 관료제 조직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가치를 생각했으면 그 많은 기업의 임원이 그렇게나 각종 부정에 연루되고 범죄의 주역 노릇을 했을 리 없다. ‘맡은’ 일을(오로지 그것만)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도구적 합리성이 자기 일의 맹목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목적과 도덕적 평가가 분리되는 것은 두 가지 과정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꼼꼼한 기능적 분업이 일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덕적 책임성이 기술적 책임성으로 대체되는 것이다(지그문트 바우만.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정일준 옮김, 새물결 펴냄). 홀로코스트에 비교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만, 이번 사태에서 관료들이 보인 태도가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권력의 예속에서 어떻게 놓여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또 한 번 ‘기-승-전-민주주의’라고 하는 것 같지만,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구조 개편이나 선거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전면적 고양 또는 심화 없이는 어렵다.

 

도구적 합리성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모두가 말하듯이) ‘가치적’ 합리성에 기초한 비판과 성찰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 얼마나 전면적이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권력 문제와 같다. 단지 관료조직이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침투해야 관료를 포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정권에 봉사한 고위 관료들의 시각에서 보면, 두 가지 모두 지금이 어느 때보다, 적어도 지금까지보다는, ‘해방’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과거를 거스르는 해방적 실천을 하기에도 가장 좋은 때라는 뜻이다.

 

먼저, 공무원들은 일상 업무를 벗어난 정권의 ‘정치적’ 지시를 거부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은 헌정을 파괴한 것이 확실하고 그 결과 실질적으로 탄핵 당했다. ‘가치’의 측면에서 이미 탄핵당한 정권에 봉사하는 것, 그 지시를 이행하는 것은 사실상의 헌법 위반이다.

 

11월 20일에 검찰이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보탰으니, 이제는 공식적으로도 탄핵소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주어진 지시에만 충실하면, 고위 관료는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부도덕한 정권에 ‘부역’을 할 판이다. 최소한, 장관과 차관, 청와대 비서관은 바로 사퇴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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