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누구를 위한 ‘제4차 산업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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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4차 산업혁명은 정치다

 

대선 주자 몇 사람이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을 둘러싸고 티격태격했다 (기사 바로가기). 그 말싸움의 자초지종을 따질 생각은 없다. 누구 말이 맞는지 누가 더 열심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이 그 말을 입에 올리고 논쟁을 벌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제4차 산업혁명이 이미 한국 정치로 진입했다는 증거.

 

경과와 내용,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처음부터 뜬구름 같은 말과 개념이다. 누구한테 물어도 어지럽고 모호하다. 인공지능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실체가 있는 말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뒤섞어 말과 개념을 ‘만들어내는’ 중이어서다.

 

이 개념을 만들고 전도사 노릇을 한다는 클라우스 슈밥의 말을 들어도 희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에서 버티기를 하는 그분도 읽었다는 <제4차 산업혁명>(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펴냄)을 봐도 그렇다.

 

그는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는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 속도: 제1~3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제4차 산업혁명은 선형적 속도가 아닌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전개 중이다….

 

■ 범위와 깊이: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을 융합해 개개인뿐 아니라 경제, 기업, 사회를 유례없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유도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 시스템 충격: 제4차 산업혁명은 국가 간, 기업 간, 산업 간 그리고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이 막 발흥할 때도 ‘혁명’이 등장했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속도, 범위와 깊이, 시스템 충격으로 요약된다는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고유하거나 독점적인 특징이라 보기 어렵다. 최근 몇십 년간 늘 ‘혁명’이 되풀이되었고 늘 ‘유례’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의심을 넘어 확신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나 미래를 혁명으로 표현하고 개념화하는 행위는 늘 정치적이다. 정치는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는, 그리하여 특정한 미래를 만들고 구성하려는 의도적 행동을 포함한다.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바람이 바로 그렇다.

 

특히 한국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성장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성장동력, 새로운 먹거리, 국제경쟁력 등 지겹도록 익숙한 정치, 경제적 ‘주술’의 전통을 계승하려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정권이 내세웠던,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허상인,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를 이어받을 유력한 후보다. 장담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모든 대선 후보가 제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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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4차 산업혁명은 정치화된 경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사회학자 밥 제섭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의 ‘경제적 상상물(economic imaginary)’ 또는 가상의 경제적 실체다. 가상이지만 경제적 실체(또는 실재)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한 개념과 이론을 벗어나 실재하는 경제, 그리고 다양한 비경제적 활동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든다. 보건의료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실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공지능 의사(‘왓슨’)다. 인공지능을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는 것은 애초 과학과 지식의 영역이었지만, 경제적 가상으로 바뀌는 순간 수많은 사람과 돈, 시간을 ‘투자’할 대상으로 전환한다. 왓슨은 의료 ‘시장’에 진입했고 환자들은 새로운 첨단 의학기술을 ‘구매’한다 (기사 바로가기). 가상의 경제적 실체는 실재하는 경제 활동으로 진화했다.

 

범위를 넓혀도 경제적 가상에 기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는 미국 최초의 로봇 약사가 등장하고 3D 프린터로 제작된 간이 최초로 이식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기사 바로가기, 앞서 인용한 클라우스 슈밥의 책에도 내용 일부가 실려 있다). 이런 가상을 만난 한국의 정부, 기업, 대학과 연구소는 어디로 움직이고 어떤 실천을 할까?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가상은 새로운 경제를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다.

경제적 가상에는 다양한 담론적 실천들이 뒤따른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지식기반경제에는 인적자원론, 혁신, 학습체계, 지식경영 등이 따랐지만, 제4차 산업혁명에는 (비슷한 차원에서) 빅데이터, 학습, 창의성, 기술혁신 등이 빠지지 않는다(기사 바로가기). 흐트러지지 않고 되풀이하는 전통적 담론도 있으니, 투자, 시장 선점, 경쟁력, 교육 혁신, 규제 완화, 고용 유연화 등이 그렇다.

 

  1. 제4차 산업혁명은 다시 정치다

 

한국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흔히 ‘주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메가트렌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또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주체는 숨고 중립과 객관을 가장한 폭력적인 질문의 배후에는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불평등은 일차적으로 ‘누구’의 문제다.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변화를 일으킨다고 했지만, 우리는 조금 비틀어, 더 능동적으로 누구인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누가 제4차 산업혁명을 주창, 옹호, 전파, 강요하며,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질문부터 권력이 크고 작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과 정부가 제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누구’라는 질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 배후에 있는 권력관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묻지 못하는 자, 그가 바로 권력을 갖지 못한 자이다.

 

여기서 제4차 산업혁명은 어떤 혁명인가 하는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그토록 혁신(혁명)적인 디지털기술과 바이오기술은 난치성 결핵환자 치료에 활용될 수 있지만 미용 성형에도 쓰일 수 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설사병 예방에 적용될 수 있는가 하면,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신약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제4차 산업혁명의 정치와 경제를 생각하면, 여러 길 가운데에 필시 돈과 이익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크다. 그런 결과가 현실이 되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은 혁명이되, 자본과 기업, 일부 계층의 이익 혁명에 지나지 않는다면?

 

치우친 길을 가서 치우친 결과를 내면, 유리한 자가 더 유리해지는 길이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사회적 퇴행이다. 기우뚱한 이익은 상호관계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부에게만 유리한 혁명인 한, 그 혁명은 당연히 새로운 불평등, 새로운 양극화의 역(逆) 혁명이다.

 

완고한 구조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의 보편적 이익에 기여하는 산업혁명이 가능한지 낙관하기 힘들다. 다만, 우리는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개입하는가에 따라 얼마간 동요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때 정치(현실 정치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 활동으로서의 정치를 가리킨다)는 그나마 가용한 유일한 수단이다.

 

모든 대선은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동의를 만드는 개입 기회다. 이번 대선에서 모두가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동’할 것이 명확하다면, 어떤 혁명, 그리고 누구를 위한 혁명인지를 함께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 뭉뚱그려 그냥 제4차 산업혁명에 멈춘다면, 그 지루한 경제성장주의의 또 다른 판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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