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박근혜 게이트가 시작될 때부터 탄핵을 주장했다(서리풀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하야나 퇴진이 박근혜가 결심해야 하는 일인데 비해, 탄핵은 주권자(국민, 시민, 인민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가 주체가 되는, 강제이자 권력이다. 처음부터 그(그리고 그의 결심)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이 사태가 시작한 이후 우리는 한 번도 탄핵 인용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8:0이든 9:0이든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파면될 것으로 예상했다. 복잡한 법 논리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그 많은 이유 가운데 뭐가 되었든, ‘죄’는 명백하다.
무엇이 대통령의 죄인가? 헌법재판소는 ‘최소주의적’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다섯 가지 사유 가운데 한 가지(뇌물죄)는 판단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고 세 가지 사유는 탄핵이 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딱 한 가지, ‘최순실에 대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만으로 파면을 결정했다.
오늘 우리는 이 역사적 결정에 대해 물으려 한다. 이유야 무엇이든 파면되었으니 이제 충분한가? 새 대통령을 뽑을 테니 그만하면 된 것일까? 박근혜 게이트에서 탄핵은 어떤 의미인가?
2016년 12월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시작할 무렵, 우리는 탄핵을 요구하면서 그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2016년 12월 5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국정 운영의 문란, 숱한 법률 위반, 도덕적 파탄을 합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은 끝났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파탄에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도 분명하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고 실질적인 구속력이 있으려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퇴진과 직무 정지는, 중요하기는 하되 두 번째 목표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심판하고 처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퇴진과 직무 정지는 그 심판의 결과일 따름.
탄핵 선고, 그리고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심판과 처벌은 완성되었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 요소인 헌법 재판과 탄핵은 민주주의의 의의이자 근거인 시민 권력을 그대로 반영하기에 역부족이다.
탄핵 사유로 제시된 근거들이 이런 불완전함의 명백한 근거다. 특히 헌재가 탄핵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 나머지 죄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 자유의 침해,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와 직책성실 의무 위반, 이 세 가지는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잘못이 아니다? 이는 어디에 근거한 누구의 판단인가?
우리는 그것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형사법이나 공무원법과 같은 실정법을 명백하게 위반해야(또는 그 증거가 충분해야) 탄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헌법 재판이 아니라 형사 재판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특정 공무원을 찍어서 쫒아냈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비선진료를 받았고, 보답용으로 정부와 공무원을 동원했다. 이런 일을 헌법위반이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 헌법위반인가? 헌법재판소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헌법재판소는 형사법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헌법재판도 ‘재판’이다. 모든 재판관은 판,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처벌받아야 할 죄는 법률이라는 잣대에 한정할 수 없으나, 헌법 재판은 그를 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실정법의 체계와 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그것이 ‘제도로서의 탄핵’이 드러내는 명백한 한계다. 법률에 묶이는 한, 마땅히 문제 삼아야 할 엄중한 정치적, 윤리적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탄핵 심판은 하나의 정치적 매듭일 뿐, 법률적 책임을 묻는 것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뇌물죄를 비롯해 밝히고 처벌해야 할 죄가 어디 한둘인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 평가를 하는 데에 충분한 수준이란 있을 수 없다.
제도로서의 탄핵을 계기로 정치적, 윤리적 죄를 제대로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정법을 위반했는지 그 죄가 무겁고 가벼운지와 무관하게,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낱낱이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메르스 사태 때 무엇을 어떻게 파악하고 조치를 취했는가? 비선 진료(진)에 대한 보답으로 보건의료정책을 왜곡했는가?
탄핵 이후의 탄핵에서는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죄를 묻는 첫 번째 단계다. 처벌은 다음 문제, 지금은 진상을 밝히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시간! 스스로 꺼림칙하면 죄지은 자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증거를 없애고 숨길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그럴지 모르니, 빠른 행동이 필요하다.
아울러, 그동안 일의 경과와 까닭을 밝힐 곳은 청와대와 박근혜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 부처와 공무원이 ‘하수인’ 노릇을 했고, 그 덕분에 정책은 사유화되고 왜곡되었다. 개인을 넘어 제도로서의 ‘박근혜 체제’를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후 차병원그룹에 192억 원 가량의 국고를 지원하고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승인 등 차병원그룹의 숙원사업 관련 규제를 폐지하고 또한 차바이오가 임상시험 중인 알츠하이머, 뇌경색 줄기세포 치료제와 같은 상병에 임상시험 완화 조치를 취하는데 역할을 함.” (바로가기)
이 모든 관련자와 행위를 밝히지 않으면, 탄핵은 그저 박근혜 개인, 한 이상한 사람의 일탈로 끝나고 마무리될 것이다. 누가 어떤 압력을 받아 그렇게 결정했는지, 하수인들은 어떤 역할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했는지, 자세하게 밝히고 기록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 과거와 기존 권력이 증거를 찾고 진상을 밝히는 데에 적극 나설 까닭이 없다. 대통령 권한 대행, 청와대 비서진, 박근혜가 임명한 고위공직자가 스스로 나서겠는가? 검찰을 비롯한 ‘사정당국’도 마찬가지, 생존에 필요한 만큼 시늉만 할 것이다. 무엇이라 말해도, 그들은 박근혜 체제의 공모자이자 공범이다.
다시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야당조차 온전히 믿기 어렵다면, 탄핵을 이끌어낸 시민이 다시 책임을 물을 유일한 주체다. 정치적, 윤리적으로 박근혜 체제를 탄핵하기 위해서는 여론과 압력, 지지와 반대를 통해 시민이 권력을 만들고 행사해야 한다.
탄핵이 완성되는 데에 필요한 시민의 과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민의 권력을 더 크게 만들어내야 한다. 힘과 그것을 드러내는 것 자체로 물리적이며, 제도 정치와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파심에서 보태는 말. 끝까지 집요하게 죄를 물어야 한다는 것은 처벌이나 응징에 초점이 있지 않다. 어설프게 그리고 내용도 없이 통합이나 화해를 말하지 말라. 잘 배우고 기억해야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