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건강정책의 정치: ‘오바마케어’인가, ‘적정부담의료법’인가, 아니면 ‘트럼프케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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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지난 9일, ‘오바마 케어’를 대체할 ‘트럼프 케어’ 법안이 미 하원 상임위 두 곳 (세입위원회와 에너지·통상위원회)을 잇따라 통과했다. 하원 예산위원회와 전체회의까지 통과하면, 상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관련 기사: ‘트럼프 케어’ 美하원 세입위 통과… 첫 관문 넘었다).
‘오바마 케어’는 2013년 10월 시행된 ‘적정부담의료법 (Affordable Care Act, ACA)’의 다른 이름이다. 2000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은 개혁 법안이지만, 가장 큰 목표이자 성과는 건강보장 인구의 확대였다. 2010년 전 국민의 16%에 달했던 무보험자가 2015년에는 9.1%로, 무려 43%나 감소했다 (☞관련 자료: 오바마의 보건의료 개혁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 법안의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고, 취임 후 집행한 첫 번째 행정조치도 이를 위한 행정명령이었다. 이번에 하원 상임위를 통과한 ‘트럼프 케어’ 법안의 정식 명칭은 ‘미국 보건의료법 (American Health Care Act, AHCA)’이다.
AHCA는 ACA에서 △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벌금 △저소득·차상위 계층의 보험 가입을 위한 보조금 △빈곤층·장애인 대상 의료부조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 (Medicaid) 적용 확대를 위한 연방정부 지원 △재원조달을 위한 투자 소득세와 고소득층 대상 세금 등을 폐지하고, 대신에 △보험 가입자에 대한 (소득이 아닌) 나이에 따른 세액공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에 공약했던 것과는 달리 ACA의 인기 있는 조항들, 예컨대 △기존 병력을 이유로 한 보험가입 거부 금지 △개인별 보상 한계 설정 금지 △26세까지 부모의 보험에 속할 수 있게 하는 내용들은 유지되었다 (☞관련 기사: The Parts of Obamacare Republicans Will Keep, Change or Discard). 때문에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는 “오바마 케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민주당은 “부자와 보험사들만 이득을 보는 안”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관련 기사: 공화당 보수파 “오바마 케어 대체법안 약하다”).

이러한 가운데, 13일 미 의회예산국이 “(AHCA 시행 시) 10년 내 무보험자가 2400만 명 늘어나는 대신 연방예산 3370억 달러 (약 374조 원)를 절감할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메디케이드 대상자도 1400만 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분석 결과를 두고 공화당은 예산 절감 부분만을 강조하고, 민주당은 예상했던 대로라는 입장이다 (☞관련 기사: “트럼프 케어, 美무보험자 2배 늘린다”).

ACA와 AHCA를 둘러싼 논란이 뭔가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뉴욕타임스의 “공화당 법안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기사를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ACA를 대체한 AHCA 하에서 수백만 미국인의 상황이 나빠질 테지만, 일부 특별히 부유한 이들은 나아질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표).

 

표. 미국 보건의료법 (AHCA, 소위 ‘트럼프 케어’)이 미국인에 미치는 영향

출처: 뉴욕타임스, “공화당 법안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2017년 3월 12일자

 

지난 1월 트럼프 당선 직후, “오바마 케어의 폐지를 축하하던 오바마 케어 수혜자, 오바마 케어가 ACA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다”라는 글이 소셜 미디어 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해당 글은 또 다른 소셜 미디어 상에서 이루어진 세 친구의 대화를 공유했다.

“A: (‘오바마 케어’ 폐지를 위한 예산 결의안이 미 상원을 통과했다는 기사를 공유하면서) 실수를 고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 졌어!
B: ACA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마.

A: 나는 ACA가 아니라 오바마 케어를 얘기하는 거야. 나 역시 ACA를 통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고. 나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을 깔보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거든.

C: 잠깐, 너 오바마 케어 혜택을 받고 있다면서 이걸 축하하는 이유가 뭐야? 공화당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넌 보험을 잃게 될 거라고!

A: 난 오바마 케어가 아니라 ACA 혜택을 받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난 괜찮을 거야.”

이 대화는 그다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한 방송은 길을 지나는 미국인들에게 “오바마 케어와 ACA 중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느냐”고 물었을 때, 많은 이들이 “ACA는 지지하지만 오바마 케어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동일한 실험을 법 시행 전인 2013년과 시행 3년 뒤인 2017년에도 해보았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련 자료: Six of One – Obamacare vs. The Affordable Care Act).
트럼프 당선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들이 동원된 바 있지만, 트럼프의 핵심 공약과 관련된 단순한 사실관계조차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은 또 한 번 놀랍다. 하지만 최근 미국 공중보건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놀라운 결과가 아님을 설명해준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보건대학원의 Sarah E. Gollust 교수 등 연구진은 ACA 시행 초기, 곧 약 1000만 명의 무보험 미국인이 보험을 얻게 되는 동안, 지역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전달된 ACA의 내용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해당 논문: “지역 텔레비전 뉴스의 ‘적정부담의료법’ 보도: 소비자 정보보다는 정치를 강조하기”)

연구진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4월 사이에 방송된 지역 텔레비전의 저녁 뉴스 중, ACA 관련 뉴스 1569개에 대한 내용 분석을 실시했다. 뉴스의 주요 메시지를 부호화하여 자료를 수집한 뒤, 기초 통계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우선은 뉴스가 주로 다루는 내용이 (1) ACA의 정치에 관한 것인지 (예컨대 정부의 역할에 관한 불일치, 시행에 관한 정치적 불일치, 해당 법을 폐지하고 대체하기 위한 계획 등) 또는 (2) ACA를 통해 가용해질 건강보험 상품과 등록 과정에 관한 것인지 (3) 또는 두 가지의 조합인지를 확인했다.

건강보험 상품에 관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다루고 있는 경우, ① 새로운 건강보험 시장에 관한 전반적 어조 ② 해당 법과 그 효과에 관한 주요 메시지 ③ 해당 법의 이름에 관한 프레이밍 ④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적인 일화의 빈도 ⑤ 인용된 정보원을 확인했다.

분석 결과, 관련 뉴스 중 절반 정도만이 건강보험 상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나머지는 해당 법에 관한 정치적 논쟁을 다루고 있었다. ACA의 주요 정책수단인 메디케이드 확대와 보조금 지급에 관해 언급한 뉴스는 전체의 10% 미만이었다. 반면 보험등록을 위한 웹사이트의 결함은 세 배가 넘는 33%에서 다루고 있었다.

특히 건강보험 상품에 초점을 맞춘 뉴스와 정치에 초점을 맞춘 뉴스를 비교했을 때, 전자는 해당 법을 본래 이름 (Affordable Care Act 혹은 ACA)으로 부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반면, 후자는 ‘오바마 케어’로 부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뉴스의 정보원에 관한 분석 결과, 가장 많이 인용된 정보원은 오바마 대통령으로 38.9%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백악관이나 보건부 등 연방정부가 28.7%, 공화당 정치인이 22.3%, 민주당 정치인이 15.9%였다. 반면 연구를 인용한 경우는 4%도 되지 않았다.
‘오바마 케어’는 공화당이 ACA에 경멸적 낙인을 씌우기 위해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오바마 케어’ 폐지와 ‘트럼프 케어’ 도입은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그것을 눈가림했다. 백악관이 AHCA를 ‘트럼프 케어’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뉴스에 이르러서는 실소가 나올 뿐이다 (☞관련 기사: 백악관 “오바마 케어 대체 법안 트럼프 케어로 부르지 말라”).

오바마 케어/트럼프 케어 논란을 보면서, 이른바 ‘전 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 국민의 10%에 가까운 무려 400만 명이 보험료 장기체납으로 보험급여를 제한당하고 있으며, 이 중 60% 가량이 월 보험료 5만 원 미만의 생계형 체납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져 있나? (☞관련 기사: 전국민 의료보장 국가 맞나?…건강보험 사각지대 400만명 방치)

이러한 문제가 이슈화되니, ‘내수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탕감을 해주겠다는 정부는 제 정신인가? (☞관련 기사: 황교안의 경제 행보인가 정치 행보인가) 이 와중에 ‘못 받는’ 체납 보험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협박하는 건강보험공단과 경제지들은 또 어떤가? (☞관련 기사: 4대보험 체납액 ‘눈덩이’…13조 육박, 못받는 체납건보료 1천억원 넘어…미성년자 결손처분 급증)

모든 정책에는 정치가 작동하니, 건강정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문제는 현실을 눈가림하고 왜곡하는 정치를 ‘드러내는’ 것. 당면한 정책 중에는 이른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에 묻는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위한 ‘개편’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 시행 시 누구의 상황이 나아지고 누구의 상황이 나빠지는가? 건강불평등은 악화될 것인가 개선될 것인가? 사각지대에 놓인 생계형 체납자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나?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김선


  • 서지정보

Sarah E. Gollust, Laura M. Baum, Jeff Niederdeppe, Colleen L. Barry, and Erika Franklin Fowler.  (2017). Local Television News Coverage of the Affordable Care Act: Emphasizing Politics Over Consumer Information.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e-View Ahead of Print. Accepted on: Jan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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