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프레시안 서평: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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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6일 프레시안 북세션에 실린 우리 연구소 상임연구원의 서평입니다.
본문 링크: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061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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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쥐’라고 우긴들 세상이 바뀌나요?

우파로부터는 무모한 이상주의자, 빨갱이라고 비난받았다. 좌파 원칙주의자로부터는 위험한 타협주의자라고 비난받았다. 가랑잎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는 영웅 설화는커녕, 백전백승의 선거 기록도 없었다. 정치 역정 내내 갖은 시행착오와 패배를 경험했고, 심이어 버스에
치이는 교통사고, 궤양, 암이라는 개인적 수난까지 비켜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오래도록 현역으로 머물렀다. 그리고 그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그저 공상이라고만 생각하던 것을 일상생활로 바꾸어냈다. 캐나다 무상 의료의 아버지(?)라는 토미 더글러스 말이다.


론 더글러스 혼자 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들은 무상 의료 말고도 많이 있었다. 북미
대륙에서 최초로 서스캐처원에 예술진흥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차별 금지 권리장전이 제정되었으며, 최저임금제와 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다. 선주민 인디언은 우호적인 정치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시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공공 자동차 보험 회사와 국영 석유 기업이 만들어졌다. 무상 의료 ‘메디케어 프로그램’은 그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인간
해방의 여러 과제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영향력이 컸던 하나였을 뿐이다. 그는 ‘위험한’ 상상을 현실로 옮기고, ‘급진적’이라고
딱지 붙은 일들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이
주에서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는 한때는 급진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이 정책들이 사실상 전혀 급진적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들은 그저 우리 시대의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상식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치
였을 뿐입니다.”

▲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데이브 마고쉬 지음, 김주연 옮김, 낮은산 펴냄). ©낮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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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국내에 소개된 토미 더글러스의 평전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김주연 옮김, 낮은산 펴냄)은 매우 건조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교과서 스타일이다. 분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무덤덤하게 기술된 타국의 정치인 평전에 나는
몰입했고, 당대의 상황을 현재 이곳과 동일시했다.

누군가 어떤 음악, 책, 영화에서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떨림을
경험한다면, 이는 대개 그것이 개인의 특별한 추억이나 현재의 처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이 배경으로 펼쳐졌던 인생의 어느 한 대목이 자동 재생되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말하자면, 하필 선거가 목전이고,
책 속에 그려진 역사를 통해 내가 속한 진보신당의 사연 많은 생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급진적
진보주의자로서 그의 정치적 행보, 그가 속한 CCF-NDP(신민당)가 걸었던 길은 험난하고 고독했다. 자본주의 망망대해에서,
노동자·농민, 권력이 없는 자들의 편에 일관되게 선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행이었다.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든 아니든 간에, 어차피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사방의 반대자들은 강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를테면 무상의료 도입에
반대한 것은 서스캐처원 의사들만이 아니었다. 캐나다 전역의 의사들,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국경 너머
미국의 기득권 계층도 열렬한 반대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 미국 의사회가 캐나다 의사들의 파업을 심정적으로, 더 중요하게는
물질적으로도 지원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적 반대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선거 때만 되면
보수주의 정당마저 CCF-NDP와 유사한 공약을 남발했다. 최소한 선거 때는 ‘복지’ 공약으로 저들과 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소수 정당으로서, 존재를 인정받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과제였다. 그나마 몇 명 안 되는 당내 유력 정치인들이 변심하여
그나마 좀 낫고 힘이 있는 자유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보수당-자유당 양당이 박빙으로 승부하는 선거전에서는 표를
갉아먹는 분열 세력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수권 정당이 되어 절박한 대중적 요구들을 하나씩 실현시켜 나갔더니,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살아남았다. 1933년 창당된 CCF는 1961년 CCF-NDP로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렀고, 심지어 현재 연방의회의 3분의 1을
차지한 제1야당이다. 80년 역사에 타협, 변절, 후퇴가 왜 없었을까마는, 자본주의의 교두보 북미 대륙에서 끊임없이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온 그들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나도 이런 걸 바랐었다. 처음에는 민주노동당이, 이후에는 진보신당이 이렇게 오래오래 살아남아 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더글러스는 당 대회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의 관심은 그저 표나 얻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모습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회는 인간의 안녕과 복지를 중시하는 원칙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그저 표나 얻는 것이 유일한 관심은 아니라는 말, 한국 사회에서라면 가당치도 않다.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오늘 밤 제가 어떤 단추를 눌러 100만 명의 당원이 생기게 할 수 있다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지 잘 모른다면, 저는 그 단추를 누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은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결국 당선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지 않느냐는 실용주의적 정치
공학, 이명박만 아니라면 혹은 박근혜만 물리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용납된다는 ‘닥치고’ 정치 문화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철딱서니 없는’ 발언이다.

토미 더글러스는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에서만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교수형을 당할 것인지 총살을 당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라고.

토미 더글러스의 그 유명한 마우스랜드 우화(☞바로 보기)
서, 쥐들은 검은색, 흰색, 심지어 연립정부(coalition)라고 반은 검고 반은 하얀 고양이, 점박이 고양이까지 다채롭게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고양이도 결코 쥐들의 편은 아니었고 쥐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문제는 고양이의 색깔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양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실은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조금 더 착한 고양이를 우리 대표로 세우자고 목청을 높인다. 그 착한 고양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의료 민영화도, 강정 마을 해군기지도 훨씬 ‘착하게’ 추진했었단다. 시민 쥐를 사찰하는 것은 악당
짓이지만, 노동조합 쥐들을 감시한 것은 고양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정당한 감찰 업무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천하의 토미
더글러스가 살아온다 한 들, 그에게는 분열주의자, 좌익소아병 환자라는 딱지만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미 더글러스라는 정치인, 캐나다 CCF-NDP의 굴곡 많은 역사는 공화당-민주당 양당의 주고받기로 점철된 미국 사회의 정치
지형에 대비해 우리가 진보 정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보다 인간다운 사회로의 변화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착한
고양이를 우리의 대표로 뽑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어느 날 단추를 한번 누르면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낡은 사회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하지만 끈질기게, 급진적인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가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하다. 토미 더글러스는 이야기했다.

“나의 친구들, 용기를 갖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다.”

좀처럼 2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지지율, 한 장짜리 선거 공보물, 언론에서의 존재감 실종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리고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급진적 개혁은 역사적으로 시기상조가 아닌 적이 없었고, 내가
기꺼이 지지해 줄 만큼 수준 높은 진보 정당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캐나다에서 무상
의료가 성공하고 좌파 정당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토미 더글러스라는 걸출한 지도자 때문이 아니라, 차악을 위해 원칙을
유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했던 캐나다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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