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일자리’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따로 설치하고 수석비서관 자리도 만들었으니 ‘최우선’이란 말이 빈말은 아닐 터. 대통령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설치했다니 적어도 그 관심은 느낄 만하다.
정부는 우선 돈(추가경정예산)을 들여 공공부문과 사회서비스 분야에 직접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추경예산은 11조 2천억 원 규모. 공무원 1만 2천 명을 포함해 공공부문 7만 1천 개, 민간부문 3만 9천 개 등 약 1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국회에서 티격태격하느라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예상대로(!) 정책 아이디어는 새롭지 않다. 일자리가 더 나올 곳은 공공부문과 보건을 비롯한 사회서비스뿐이라는 오랜 논의 그대로다.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전폭적인 재정 투입이 예고됐다. 정부는 직접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 2000억원 가운데 1500억원을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에 투입해 2만4000명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중략)…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보육, 보건, 요양, 사회복지 등에 집중돼 있다. 보조교사(4000명), 대체교사(1000명), 치매관리(5100명), 노인돌봄서비스(600명), 아동안전지킴이(3100명), 산림재해일자리(4000명) 등의 분야에서 인력이 확대된다.”(기사 바로가기)
새로 만들겠다는 일자리는 누가 봐도 상식적이다. 꼭 이 정부와 이 정책이 아니라도 오래전부터 사람이 더 필요한 분야고 일이라 했다. 좋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노인 인구와 저출산 등 사회가 변화하는 방향을 보더라도 늘려야 하는 일자리다.
일자리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접어두자. 다만,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시장)의 역할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겠다. 시장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역이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한국처럼 공공이 허약하고 정부가 작은 곳에서는 더더구나.
문제는 ‘시장 원리’의 현실성과 실천 방안이다. 누구든 시장이 작동할 대안이 있으면 내놓으라. 우리는 (구체적인 방법은 둘째 치고) 일자리 창출에 공공부문이 ‘마중물’ 노릇을 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
이제부터가 오늘 <논평>의 본론. 우리는 ‘돌봄 노동’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과 이상 어느 쪽도 무시할 수 없으니, 공공과 민간 두 쪽 모두에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오해를 피하고자 보태면, 새로운 일자리에 방점이 있다기보다는 또 다른 삶의 영역이자 가치인 돌봄을 ‘정상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왜 ‘정상’을 말하는가? 돌봄 노동은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왜곡되어 있다. 저질의 서비스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흔하고 일상적이다. 양질과 저질을 따질 수 없는, 아예 질의 부재(不在)도 드물지 않다. 병원과 요양시설은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새 정부의 일자리 우선 정책은, 그런 점에서 돌봄 노동을 정상화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정치적, 사회적 기회다.
첫 번째로 돌봄 노동을 정상화해야 하는 공간이자 작업장은 병원이다.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악명이 높다. 제법 널리 알려졌고 여러 차례 지적되었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없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병원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해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전체 취업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2010년 45.1시간에서 2015년 43.6시간으로 줄어들었지만,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46.4시간에서 49.8시간으로 늘어났다. 2017년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7시간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대한민국의 간호사들은 밥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의 극심한 인력부족과 엄청난 업무량 때문에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백의의 전사가 되고 있다….임신조차 순번을 정해야 하는 임신순번제도 모자라 사직조차도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사직순번제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기사 바로가기)
이런 환경에서 시민과 환자의 ‘건강 보호’는 차라리 운에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 환자들이 느낄 수 있는 불편과 불만은(예를 들어 친절), 어쩌면 가볍고 말초적인 문제다. 환자의 건강과 회복, 생명이 직접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전문가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병원에 버금가게, 또는 병원 이상으로 좋은 돌봄 노동 일자리가 늘어나야 할 곳이 장기요양시설 등 노인 돌봄 서비스다. 모두 알고 짐작하는 대로, 이런 일자리는 수는 많지만 불안정하고 보상이 적다. 품위 있는 일자리가 아닌 데다, 이른바 ‘저고용(underemployment)’.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노인돌봄 서비스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지난해 말 기준 약 40만명이다….(중략)…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곧 노인돌봄의 질을 뜻하지만, 현장은 “보호사가 남아나지 않을 만큼” 열악하다. 시간제 근로를 하는 방문 요양보호사는 지난해 한 달 평균 76시간을 일하고 57만원을 임금으로 받았다. 그나마 올해 환자당 하루 근무시간이 3시간으로 줄면서 임금도 20% 줄었다.“ (기사 바로가기)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돌봄 노동의 질은 오로지 노동자의 선의와 노력, 그리하여 감정노동과 과로, 소진에 기대해야 한다. 도저히 ‘양질’이 나올 수 없는 조건에서 현장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돌봄 노동은 사회화했지만, 책임은 여전히 개인에게 있다.
돌봄 서비스는 특성상 행정이나 규제로 질을 강제하기 어렵고 환자나 가족이 감시자나 소비자 노릇을 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최소한의 질을 보장하는 방법은 일할 사람을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이니,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임을 강조한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만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동네 병원(의원)이나 보건소, 방문보건이나 방문간호, 정신보건센터, 학교와 직장의 건강관리에도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건강과 안전, 삶의 질과 관련된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는 모두 사람이 모자란다. 그냥 괜히 해보자는 일이면 ‘효율화’의 대상이겠지만, 이런 일 대부분이 시대가 요구하는 필수 과제라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얼마 전 문제 한 가지.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된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이 비틀거리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도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서리풀 논평> 2017년 5월 29일. 바로가기).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려 해도, 그곳에는 장애인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당연하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일자리에는 돈이 든다. 피할 수 없는 숙제라면, 누가 낼 것인가가 진짜 문제다. 정부 예산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 부분일 뿐, 민간부문과 시장이 움직이게 돈이 돌아야 한다. 보건과 의료, 장기요양 등 돌봄과 관련된 일자리는 민간 의존도가 더 심하지 않은가.
핵심 재원이 사회화, 공공화되어 있는 것이 이 분야 민간부문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다. 좋은 돌봄 노동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의료급여, 기초생활보장, 국민연금 등의 재원을 활용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일자리는 돌봄을 정상화하는 것과 표리관계에 있다는 것.
정치로는, 정교한 디자인과 실행이 필요하다. 돈이 더 들 때는(예를 들어 건강보험료를 인상할 때는) 그 돈을 내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돈값’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돌봄 노동을 둘러싼 ‘삼각 정치’는 일자리 – 서비스 질 향상 – 재정으로 이어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분발할 것을 기대한다.